지난 8월 12일 열린 시카고 컵스 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경기. 시카고 컵스의 좌익수 크리스 코글란(왼쪽)이 7회에 점수를 낸 뒤 맷 시저와 기뻐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8월 12일 열린 시카고 컵스 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경기. 시카고 컵스의 좌익수 크리스 코글란(왼쪽)이 7회에 점수를 낸 뒤 맷 시저와 기뻐하고 있다. ⓒphoto 연합

프로스포츠는 팬들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모든 프로 팀의 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팀과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이들의 승리와 우승을 염원한다.

여기서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약 당신이 응원하는 팀이 부진하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가고 올해 안 되면 내년이 있으니까라는 기대감도 점점 퇴색해간다.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응원 팀이 무려 100년이 넘도록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연 이 팀은 프로 팀의 가치를 가지고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평생을 살아도 우승 문턱에 가보지 못한 팀에 언제까지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며 팬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주인공은 가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 메이저리그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시카고 컵스. 메이저리그 원년(元年)으로 보는 1876년 창단된 오리지널 메이저리그 멤버이다. 이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19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한제국 시절이다. 그 전해인 1907년과 1908년 월드시리즈 2연패를 한 이후 시카고 컵스는 107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우승에 도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1908년 우승 이후 7번의 월드시리즈 진출이 있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나마 우승의 문턱에라도 도달했던 마지막 월드시리즈 진출도 우리가 일제에서 광복된 1945년이 마지막 기회였다. 물론 이들이 우승을 향한 노력을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꾸준히 노력하고 구단주도 바꿔가며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1945년 이후 이들이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39년이 흐른 1984년이었다. 그 이후 6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만들었지만 역시 월드시리즈 문턱에 다다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에는 유명한 3대 저주가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블랙삭스 스캔들의 저주’, 그리고 시카고 컵스의 ‘염소의 저주’가 그것이다. ‘밤비노의 저주’는 1910년 후반 보스턴의 간판선수였던 베이브 루스를 구단주가 뉴욕 양키스에 현금 트레이드를 했고, 이를 저주한 루스 때문에 그 이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함을 말한다. 이 저주는 보스턴의 2004년 우승으로 무려 86년 만에 풀렸다.

화이트삭스의 ‘블랙삭스 스캔들의 저주’는 일명 ‘조 잭슨의 저주’라고도 일컬어지는데 1919년 월드시리즈에 오른 화이트삭스의 선수 8명이 도박사에 매수되어 승부 조작에 가담하며 상대팀 신시내티 레즈에 패한 사건이다. 하지만 이듬해 이 조작은 들통이 나게 되고 여기에 연루된 8명 선수 모두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에서 최고의 스타였던 잭슨은 문맹(文盲)이었고 도박사의 세 치 혀만 믿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며 억울하게 야구를 떠나게 된 것이 저주의 시작이었다. 결국 화이트삭스도 1917년 우승 이후 무려 88년 만인 2005년 마침내 정상의 자리에 오르며 저주를 풀어냈다. 결국 이 3대 저주 중 아직 풀리지 않고 있는 저주는 컵스의 ‘염소의 저주’가 유일하다.

‘염소의 저주’의 시작은 컵스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진출 연도인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 ‘빌리 고트 타번’이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빌리 사이어니스라는 사람이 애완 염소를 데리고 경기장에 입장했다. 하지만 다른 관중들이 염소 냄새가 역겹다고 항의했고 구단은 그를 강제 퇴장시켰다. 이에 격분한 그는 ‘컵스는 절대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부었고 우연치고는 너무 황당하게도 그 이후 한 번도 월드시리즈 우승은 물론이고 그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3대 저주 중 유일하게 풀리지 않은 ‘염소의 저주’를 풀기 위해 컵스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심지어 1984년과 1989년 1994년, 그리고 1998년 빌리 사이어니스의 조카 샘과 과거 그 염소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염소를 함께 초청하여 저주를 풀어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네 번의 시도에서 모두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의 파업으로 포스트시즌이 취소된 1994년을 제외한 세 번의 경우는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을 했다는 점이다.

염소의 저주를 풀어라

2003년에는 당시 지구 라이벌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홈구장 미닛메이드파크에 컵스 팬들이 염소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고 당연히 이를 저지당했다. 이 일로 이제 자신들의 저주를 휴스턴에 떠넘겼다고 자신했지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3승2패의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을 당하고 말았다. 당시 6차전에서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아웃 카운트 5개를 남겨놓고 좌익수 모이세스 알루가 잡을 수 있었던 파울 플라이를 팬이 낚아채면서 결국 이것이 화근이 되어 역전을 허용하며 다시 ‘염소의 저주’가 회자된 것이다.

결국 별별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저주를 풀지 못하자 2004년 보스턴의 저주를 풀었던 당시 단장 테오 엡스타인을 신임 사장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팀을 재정비하여 작년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분위기를 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는 1980년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백 투 더 퓨처 2’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스포츠 연감에 2015년 시카고 컵스가 우승한다는 당시의 예언까지 동원하며 팬들이 열정을 불살랐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시즌 전부터 컵스는 대다수의 전문가들로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지목이 되었다. 실제로 말로만 그쳤던 과거와는 다르게 시즌 초부터 선두를 질주하며 8월 15일 현재, 73승42패라는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 팀으로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오승환이 소속된 지구 2위 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보다 무려 13경기나 앞서며 47경기가 남은 정규 시즌 지구 우승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2016시즌이 과연 108년에 걸친 대를 이은 저주를 풀고 시카고 컵스가 월드시리즈 정상에 다시 설 수 있을지가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최대 관심사다. 과연 빌리의 염소는 이제 컵스에 자비를 베풀지 지켜보자.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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