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억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처음 생겨났을 때 드넓은 우주에는 수소와 헬륨만 있었다. 다른 원소는 없었다.

1834년 영국왕 윌리엄 4세가 로열&에인션트 골프 클럽(R&A)을 결성해 최초의 골프 규칙을 제정할 때 단 두 가지 기본정신을 원칙으로 삼았다. “볼은 놓여 있는 상태 그대로, 거리는 이익 보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지난 3월 2일 LPGA(미국여자프로골프) 톱 랭커 렉시 톰슨(22·미국)이 저지른 사상 초유 ‘4벌타 사건’은 ‘거리 이익을 보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에 위배됐기 때문이다.

두 가지 원칙은 세월이 흐르며 엄청난 ‘세포분열’을 일으켜 자그마한 책자를 엮을 만큼 복잡해졌다. 그러나 거리를 이익 봐서 안 된다는 넓은 의미의 오소(誤所·wrong place) 플레이와 어떤 경우든 공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룰은 ‘불변의 페널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3월 6일 PGA(미국남자프로골프)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 개막을 앞두고 ‘미국 골프의 큰 형님’인 필 미켈슨이 인터뷰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일부 PGA투어 선수가 그린에서 7㎝까지 공을 홀 쪽으로 옮겨 놓고 친다.” 렉시 톰슨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관행처럼 계속된 프로골퍼들의 나쁜 버릇이 우연찮게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양심선언이다. 미켈슨은 또 “몇몇 PGA 선수들은 마크에서 2~3인치(5.1~7.6㎝) 앞에 공을 놓고 태연히 플레이한다”고 ‘불편한 진실’을 드러냈다. 한국 프로무대도 다르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증언도 이어서 나왔다.

한국·미국 등 프로들의 양심 불량 플레이는 △고의로 마크를 2~3차례 반복하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 △공에 닿을 듯 말 듯 마크하고, 놓을 땐 1~2㎝ 정도 가볍게 앞으로 이동 △한 번에 태연히 6~7㎝ 이상 볼 옮기기 △톰슨처럼 공 뒤가 아니라 옆에서 마크하며 리플레이스 땐 앞으로 공을 놓아 고의적으로 거리 이익 보기 등이 있다.

아마추어는 그린에서의 규칙 위반 사례가 훨씬 많다. 보기 드물지만 공 앞에 마크를 하는 ‘해괴한 골퍼’도 있다. 한 홀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라 18홀 동안 밥 먹듯이 룰을 어긴다. 한 라운드에서 속이는 거리가 1인당 50㎝ 안팎이다. 오죽하면 지구상의 골퍼들이 하루에 공을 슬쩍 옮기는 총 길이가 ‘태평양을 건너는 거리만큼 된다’(서울~LA, 약 9500㎞)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까.

골프 룰이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 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시대 흐름을 반영해 최근 골프 규칙의 대폭 수정을 예고했다. 주요 내용은 ‘△벙커에서 장애물을 터치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그린에서 우연히 공이나 볼 마커를 움직여도 페널티가 없다 △공을 식별하기 위해 자유롭게 들어서 확인할 수 있다 △최대 타수 한계를 설정해 더블보기 또는 트리플보기 등 기준에 따라 홀 아웃을 못 해도 다음 홀로 이동한다 △음악을 듣거나 방송을 볼 수도 있다’이다.

내년 말까지 확정해 2019년 1월부터 시행한다고 하니 1년8개월만 지나면 룰의 족쇄에서 웬만큼 벗어나 편안하게 플레이할 수 있지 않을까.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전 스포츠조선 부국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