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김태균이 지난 5월 16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 5회 초 좌전안타를 치며 아시아 최고 기록인 70경기 연속출루에 성공하고 있다. ⓒphoto 연합
한화 이글스 김태균이 지난 5월 16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 5회 초 좌전안타를 치며 아시아 최고 기록인 70경기 연속출루에 성공하고 있다. ⓒphoto 연합

‘하루라도 출루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프로야구 한화의 김태균(35)은 요즘 이런 말을 마음에 새기고 경기에 나설지도 모른다. 빈말이 아니다. 지난해 8월 7일 NC전을 시작으로 매 경기 1루 베이스에 출근 도장을 찍은 김태균은 6월 1일 현재 연속 출루 기록을 84게임으로 늘렸다.

국내 프로야구 기록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김태균 이전에 KBO 최다 연속 출루 기록 보유자는 롯데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펠릭스 호세(도미니카공화국·63경기)였다. 김태균은 ‘천재 타자’ 스즈키 이치로(44·현 마이애미 말린스)가 일본 프로야구 시절인 1994년 세웠던 69경기 연속 출루 기록도 넘었다. 야구 팬들은 엄청난 출루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그에게 ‘출루 장인(匠人)’ ‘김출루’ 같은 별명을 붙여줬다.

홈플레이트에서 1루까지의 거리는 27.432m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는 이 거리를 안전하게 완주해야 선수는 득점 기회를 갖게 된다. 1995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MLB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투수 코치 레오 마조니는 “1루는 훔칠 수 없다”고 말했다. 상대가 아무리 발이 빨라 도루에 능해도 1루 출루만 막으면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단 의미였다.

현대 야구에서 출루율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머니볼’ 이론으로 유명한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부사장은 출루율 높은 타자들을 수집해 팀을 변화시키며 빅리그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메이저리거 추신수가 2013 시즌 후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을 터뜨리며 텍사스 레인저스로 둥지를 옮긴 것도 그의 출루 ‘본능’ 덕분이었다. 추신수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유니폼을 입었던 2013년 내셔널리그 출루율 2위(0.423)에 오르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출루 머신으로 우뚝 섰다.

김태균은 현재 KBO 무대에서 출루를 가장 잘하는 선수다. 일단 경기에 나서면 안타를 치든, 볼넷을 거르든,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몸에 맞는 공을 얻어서라도 출루하고 있다. 최근 몇 년만 보면 김태균의 출루 능력에 도전할 경쟁자 자체가 없다. 그는 일본 무대에서 복귀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5시즌 동안 ‘출루율왕’ 타이틀을 4번(2015년엔 에릭 테임스에 이어 2위)이나 거머쥐었다. 통산 출루율은 0.432로, 다섯 번 타석에 서면 두 번 이상은 1루 베이스를 밟는 수준이다.

김태균이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건 그의 두 가지 탁월한 능력 때문이다. 먼저 출중한 선구안(選球眼)이다. 김태균은 투수가 던진 공을 적극적으로 타격하지 않고 멀뚱히 지켜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공은 대부분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난다. 나쁜 공을 거르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볼넷으로 출루하는 경우가 많다. 김태균은 지난해 리그 전체에서 가장 많은 볼넷(108개)을 기록했고, 올 시즌에도 5월 22일 현재 공동 10위(18개)에 올라 있다.

MLB 테드 윌리엄스의 84게임 기록

독특한 타격 자세도 그의 선구안과 시너지를 낸다. 김태균은 보통 타자들과 달리 타격할 때 이른바 레그킥(leg kick·앞다리를 들었다 놓는 것)을 하지 않는다. 다리를 고정한 상태에서 날아오는 공을 최대한 끝까지 지켜보기 때문에 나쁜 공에 쉽게 방망이가 나가지 않는 것이다.

김태균의 또 다른 별명은 ‘김똑딱’이다. 팀의 중심 타선에 서면서도 장타가 아니라 짧은 안타를 자주 쳐서 붙은 꼬리표다. 반대로 공을 맞히는 이른바 ‘콘택트’ 능력은 어떤 교타자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의미이다. 5월 22일까지 김태균의 타율은 0.406이다. 지난 4월 말 부상으로 팀을 떠나 있어서 규정 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4할 넘는 타격을 올릴 정도로 그는 맞히는 데 있어서 탁월함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김태균 스스로 홈런 대신 단타로 출루를 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 그는 “(좋은) 흐름이 끊기는 것을 싫어한다. 타선 연결이 잘 이뤄지고 있다면 (욕심을 부리기보다) 기회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 가지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출루 기록을 세웠다는 점에서도 김태균을 높게 평가할 만하다. 일본 출루 기록을 세운 이치로와 달리 그는 발이 느린 타자다. 김태균의 KBO 통산 도루는 25개로, 매 시즌 1~2개를 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느린 발은 ‘내야 안타’ 생산력 하락으로 연결된다. 같은 내야 땅볼을 치고도 준족(駿足)이라면 1루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발로 만들어낸 안타’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출루를 하는 셈이다.

야구에선 높은 타순의 타자가 낮은 타순보다 더 많은 타석 기회를 얻는다. 그만큼 출루 기회도 많다. 이치로도 일본 기록을 세울 당시인 1994시즌엔 리드오프(1번 타자)로 경기에 나섰다. 반면 주로 3~5번 타순에 배치되는 김태균은 1~2번 타자들에 비해 적은 타석에서도 많은 출루를 기록하고 있다. 한 야구 전문가는 “만약 김태균이 1번 타자로 경기에 나선다면 지금의 출루 기록이 훨씬 오래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오랜 기간 동안 기록을 이어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결국 성실함이다. 그런 점에서 연속 출루 기록은 김태균의 꾸준함이 만든 결실이라고 볼 수 있다. 김용달 KBO 육성위원은 “김태균은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4월 오른쪽 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으로 팀을 떠났을 때도 배트를 놓지 않았다. 일본 요코하마 이지마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김태균은 근처 동전 배팅 연습장을 찾아가 타격 훈련을 했다. 그는 “절박했기 때문에 프로 선수가 동네 배팅장에 간다는 창피함은 없었다. 몸이 굳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독하게 준비한 김태균은 지난 5월 11일 부상 복귀전(롯데전)에서 볼넷 하나를 뽑으며 출루 기록을 이어갔다.

김태균이 넘어야 할 다음 ‘산’은 테드 윌리엄스(1918~2002)가 갖고 있는 메이저리그 최다 연속 출루 기록(84게임·1949년)이다. 미 스포츠 전문 매체 ‘블리처리포트’는 ‘깨뜨릴 수 없는(unbreakable) MLB 기록’을 소개한 기사에서 윌리엄스의 연속 출루 기록을 2위에 올려놨다. 빅리그의 수많은 대기록 중에서도 그만큼 넘어서기 어려운 족적이란 것이다. 지난해 대만 프로야구에선 린즈셩이 109경기 연속 출루에 성공했다. 2015년 6월 20일 시작한 출루 행진은 이듬해 6월 16일에서야 멈췄다. 대만과 국내 프로야구의 수준 차를 감안하더라도 놀라온 기록이다.

‘한국산 출루 머신’ 김태균이 이 기록들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타격 페이스와 선구안이라면 불가능하다고만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개인 기록 작성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연일 출루하고 있는 김태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연속 출루 기록이) 가능했던 일입니다. 기록 자체에는 연연하지 않아요. 늘 그렇듯 저의 출루로 팀 승리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이순흥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