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2463호] 2017.06.26

‘갓틸리케’에서 ‘수틀리케’로 추락하기까지

임경업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up@chosun.com 

▲ 지난 6월 14일 카타르전에서 2 대 3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 photo 뉴시스
1년 전, 그는 ‘신’이라 불렸다. 그의 이름과 갓(god·신)을 합성해, 축구팬들은 그를 ‘갓틸리케’라 부르며 추앙했다. 실용적인 축구로 한국 대표팀을 변화시켰다며, 정약용의 호를 따 ‘다산(茶山) 선생’이라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쓸쓸히 한국을 떠나게 됐다. 이름을 딴 별명은 ‘슈팅영개’ ‘수틀리케(‘수틀리다’는 뜻)’가 됐고, 떠나는 그에게 보내는 박수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지난 6월 15일 경질된 울리 슈틸리케(63) 전 축구대표팀 감독 이야기다.
   
   축구협회는 6월 15일 파주NFC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슈틸리케 감독과 상호 합의에 따라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표현은 합의에 의한 계약 종료지만 성적과 경기력 부진으로 인한 사실상 경질이다. 지난 6월 14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중동의 약체 카타르에 당한 2 대 3 원정패 이후 내린 조치다. 한국이 카타르에 진 건 33년 만이었다.
   
   
   진짜 시험대에서 무너진 한국
   
   슈틸리케호(號)의 부진은 단순히 이 한 경기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은 최종예선 원정경기에선 1무3패로 한 번도 이기지 못했고, 중국에 0 대 1 충격의 원정패를 당했다. 한국은 최종 예선에서 8경기 4승1무3패(승점 13)로 조 2위에 머물러 조 3위 우즈베키스탄에 승점 1점 차로 추격당하고 있다. 조 2위까지 직행하는 월드컵 본선마저 위태로운 상태다. 한때 모두의 존경을 받았던 슈틸리케 전 감독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침몰했을까.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선임됐다. 브라질월드컵 충격의 1무2패 조별리그 탈락 이후 ‘한국 축구 위기론’이 나왔을 때다. 현역 시절 독일 국가대표 미드필더, 세계 최고 명문 구단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주전 선수였던 슈틸리케는 선수들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세계적인 스타 선수였다.
   
   그는 빠르게 대표팀을 정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 그해 8월 동아시안컵 우승을 했다. 프로 2부리그에서 뛰었던 이정협 등을 기용해 용병술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6월 스페인과의 평가전 패배(1 대 6)까지 A매치 16경기 무패, 10경기 연속 무실점 행진 기록도 썼다.
   
   그동안 팀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선수들도 슈틸리케 감독을 따랐다. 별다른 전술 변화가 없어도 선수들 스스로 경기장에서 해법을 찾았고, 여론도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바뀌었다. 2016년 9월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슈틸리케호는 그간 미얀마, 라오스, 쿠웨이트 등 아시아의 약체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뒀다. 하지만 이런 팀들과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맞붙는 팀은 차원이 다르다. 한국과 같은 A조에 속한 이란은 아시아 최강팀, 우즈베키스탄은 다크호스다. ‘축구굴기’를 외치는 중국,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대대적 투자를 한 카타르도 있다. 이 나라들이 월드컵 본선 진출 꿈을 위해 최고의 전력과 전술로 무장하고, 죽기 살기로 덤비는 판이 바로 월드컵 최종예선이다.
   
   되짚어 보면 슈틸리케 전 감독이 이끌었던 대표팀이 강팀을 상대로 좋은 경기력을 선보인 적은 드물었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평가받는 코스타리카와 이란에 모두 패했고, 호주와는 1승1패를 주고받았다. 일본, 북한과는 무승부를 거뒀다. 체코에 2 대 1 승리, 부임 첫 경기였던 파라과이전 2 대 0 승리 정도가 강팀을 상대로 따낸 승리의 전부다. 그래서 축구계에선 “슈틸리케 감독이 강팀을 상대로도 과연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부호가 항상 따라다녔고, 강팀을 상대로는 계속 약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무대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내려왔다.
   
   
   위기에 약했던 지도자
   
   모든 감독은 위기를 맞는다. 주축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상대의 전술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하느냐가 감독의 역량과 자질을 결정한다. 슈틸리케는 위기에 약했다.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대표팀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파열음이 나왔다. 주장 기성용이 “코칭스태프들이 변해야 한다”고 했고, 구자철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지금 하진 않겠다”고 했다. 선수가 감독과 코치를 향해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은 그만큼 팀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작 슈틸리케는 패배에 무책임했다. 이란전 패배(0 대 1) 이후 “우리에겐 카타르의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어서 졌다”고 했다. 감독이 다른 팀 선수를 언급하면서, 선수들을 질책하는 건 금기시된다. 손흥민이 “다른 나라 선수랑 비교하는 건 좀…”이라며 섭섭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감독을 향한 선수들의 신뢰는 날이 갈수록 떨어졌고, 리더십이 무너지자 팀의 경기력도 흔들렸다.
   
   전술 변화가 없는 것도 부진의 원인이었다. 플랜A는 있지만, 플랜 B는 없었다. 처음 부임했을 때 모든 감독은 전술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 부임 초반엔 이런 변화가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상대팀도 한국의 전술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대응법을 들고나온다. 손에 든 패가 읽힌 상황에서 슈틸리케는 제대로 된 변화를 주지 못했다. 중국전 패배 당시 중국 기자들이 “한국의 후반 교체는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였다”고 할 정도였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은 항상 지적됐던 대표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했다. 전술 변화를 묻는 기자들한테 슈틸리케 전 감독은 “그럼 어떤 전술을 들고나와야 하는지 내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처음부터 슈틸리케가 검증되지 않은 지도자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감독(2006~2008년)을 맡은 경험이 있지만, 이후 대표팀을 이끈 경험이 없다. 프로팀 경력도 카타르 프로리그가 대부분이고, 그곳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던 지도자다. 한국 대표팀을 맡을 정도의 커리어와 지도력을 인정받은 감독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슈틸리케라는 감독에게 모험을 걸었고, 그 모험이 실패한 모양새가 됐다.
   
   이제 월드컵 최종예선은 2경기를 남겨뒀다. 이란과의 홈경기, 우즈베키스탄 원정경기로 가장 까다로운 경기다. 월드컵까지는 1년여가 남았다. 슈틸리케는 떠났고, 위기에 처한 대표팀을 구해내는 일은 한국 축구의 몫이 됐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도 한국 축구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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