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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4호] 2017.07.03

폭력을 부르는 승리의 세리머니는?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인터넷뉴스부 기자 qq@chosun.com 

▲ 지난 5월 21일 일본 사이타마스타디움 제주유나이티드와 우라와 레즈의 경기.
#1. 2017년 5월 21일 일본 사이타마스타디움
   
   한국의 ‘제주유나이티드’와 일본의 ‘우라와 레즈’의 2017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은 3-0으로 우라와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제주에서 열린 1차전에서 제주가 2-0으로 이기면서 8강 진출의 기대감을 높였지만 원정에서 0-2로 패하며 연장에 돌입했고, 결국 연장 후반 9분 결승골을 내주며 패배했다.
   
   하지만 제주는 단순한 패배 이상의 상처를 입었다. 종료 직전 양 팀 선수의 충돌이 발생한 책임까지 지게 된 것이다. 경기 종료 후에는, 결승골 당시 다소 큰 동작으로 골 세리머니를 했던 우라와의 수비수 마키노 도모아키를 권한진이 추격하는 장면도 방송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마키노는 로커룸으로 도망갔고, 이 장면을 일본 현지 언론은 ‘공포의 술래잡기’라 표현하며 반감을 드러냈다. 경기 후 조성환 제주 감독은 “우라와 선수가 제주의 벤치 앞에서 자극적인 행동을 했다”면서 “패자도, 승자도 매너가 필요하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시 일본 선수는 ‘3-0으로 이겼다’는 의미의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환호성을 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2. 2017년 5월 3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AT&T파크
   
   홈팀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타석에 들어선 외야수 브라이스 하퍼는 이날 원정경기에서 투수 헌터 스트릭랜드가 던진 공에 오른쪽 고관절을 맞았다. 격분한 하퍼는 마운드에 올라 주먹을 날렸고 스트릭랜드도 맞서 싸우며 순식간 난투극이 벌어졌다. 흥분한 양 팀 동료들까지 벤치클리어링에 가세했다.
   
   스트릭랜드는 2014년 디비전시리즈에서 하퍼가 홈런 2개를 치고 벌인 세리머니에 앙심을 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퍼는 “3년 전 일로 아직도 나에게 앙심을 품고 빈볼을 던졌다니 이해할 수 없다. 스트릭랜드가 지난 2년간 계속 화가 나 있었다는 말인가. 문제가 있었다면 내게 먼저 말로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위의 국내외 사례에서 보듯 스포츠 세계에서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는 선수들의 세리머니는 종종 상대방의 심기를 건드려 폭력 사태로 치닫기까지 한다. 각 종목별로 ‘환희’의 세리머니가 어떤 경우에 ‘악몽’으로 변하는지, 갖가지 세리머니에 ‘금기’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 지난 5월 30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워싱턴 내셔널스의 경기.

   축구
   
   축구는 세리머니 ‘후유증’이 가장 높은 종목이다. 90분 경기 동안 터지는 골 수가 다른 종목에 비해 현격하게 적은 데다가, 좁게는 지역 대결, 넓게는 국가 대결이라 해당 집단의 ‘자존심’을 걸고 격돌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 한국 간의 국제축구연맹 U-20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전반 42분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던 백승호가 손가락으로 긴 사각형을 만들어 보이며 우쭐대는 표정을 지었던 것이 아르헨티나 측을 자극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3월 본선 조 추첨식 때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가 한국과 같은 조에 아르헨티나가 배정되자 만족한다는 듯 야릇한 미소를 지었던 장면을 패러디한 거 아니냐고 아르헨티나 현지 언론은 흥분했다. 백승호는 경기 직후 “마라도나를 의식한 세리머니가 아니다. 감히 마라도나를 조롱할 위치도 아니다. 그러다 아르헨티나 사람들한테 맞아 죽는다”고 토로했다.
   
   그 직후인 6월 4일에는 우루과이팀에서 문제가 터졌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의 U-20월드컵 8강에서 우루과이의 페데리코 발베르데가 팀이 1-2로 밀리던 후반 5분 동점골을 터뜨린 후 한국 관객들에게는 낯선 양쪽 검지로 눈가를 잡아당기는 세리머니를 한 것이다. 이는 통상적으로 아시아인을 조롱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경기 후 발베르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종차별적 세리머니가 아니라 친구를 위한 개인적 세리머니였다. 내가 의도한 바는 인종차별이 아니다. 죄송하다”라고, 모국어인 스페인어 대신 한국어로 신속하게 사과했다. 일이 커지는 걸 적극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축구선수들이 골을 넣었을 때는 중계 카메라가 있는 코너킥 지점으로 단체로 미끄러진다. 또 자기 진영으로 돌아갈 때 어시스트를 한 동료 선수에게 감사의 표시를 한다. 성호를 긋거나(가톨릭 국가 선수들) 기도를 올리는(박주영) 종교적 세리머니도 흔히 볼 수 있다. 프로팀 선수들은 상의를 벗고 마구 흔들며 달리거나(호날두), 덤블링을 하며 득점의 환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세다. 신혼이면 반지에 입을 맞추는(안정환) 세리머니를, 아이가 태어난 직후면 젖병 세리머니를 하며 가족들과 기쁨을 나눈다.
   
   하지만 세계 축구계에는 선수들 사이에 통용되는 여러 ‘불문율’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부득이한 상황으로 볼을 고의로 아웃시켰을 때에는 볼을 점유했던 팀에 돌려줘라” 같은 경우가 그렇다. 자기 팀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져 있을 때 경기를 중단시키기 위해 볼을 밖으로 차내면, 상대팀이 공격 대신 볼을 넘겨주는 장면은 K리그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에티켓’의 차원이라 종종 무시되기도 한다. 1999년 잉글랜드 FA컵에서 아스날과 셰필드 경기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셰필드의 선수가 부상 치료를 위해 공을 걷어냈지만, 아스날은 소유권을 셰필드에 돌려주지 않고 플레이, 골을 넣으며 승리했다. 경기는 아스날의 2-1 승리로 끝났지만, 아스날의 감독 벵거는 재경기를 제안했고 두 팀은 재경기를 치렀다.
   
   스포츠 일반 관객들은 모르지만, 선수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불문율에는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을 때 과한 세리머니는 안 된다”가 있다. 이는 축구뿐 아니라 야구와 농구에서도 역시 관행으로 인정한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바르셀로나는 셀타비고를 상대로 6-1로 승리했는데, 경기 직후 이 불문율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3-1로 앞서나가던 바르셀로나가 페널티킥을 얻었고 키커로 메시가 등장했다. 메시는 페널티킥을 직접 슈팅으로 연결하지 않았고 옆으로 살짝 굴려 뒤에 달려오는 수아레즈가 골을 넣어 해트트릭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FIFA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골이었지만 셀타비고 선수들은 항의했고, 스페인 언론 역시 메시와 수아레즈를 질타했다.
   
   이런 축구계 불문율이 세리머니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향 팀을 능욕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이다. ‘고향 팀’이란 자신이 원래 소속됐던 팀, 즉 커리어를 시작했거나 자신의 값어치가 극대화될 수 있게 만들어준 팀을 말한다. 이에 따라 고향 팀을 상대로 만나 골을 기록했을 때 아예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다거나, 고향 팀과 지역 라이벌이거나 전통적으로 적대적이었던 팀으로는 이적을 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다.
   
   손흥민은 2013년 11월 레버쿠젠 소속으로 독일 무대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을 때 세리머니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이날 상대는 함부르크SV였고, 세 번째 골을 넣었을 때 손흥민은 손가락 3개를 펼쳐 보이며 키스하는 세리머니를 보였다. 문제는 함부르크SV가 바로 손흥민이 독일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팀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능력을 높게 산 레버쿠젠은 손흥민을 영입했고, 두 팀은 같은 분데스리가 소속으로 맞대결을 피할 수 없었다. 이날 그의 세리머니는 바로 이 불문율을 어긴 것이었다.
   
   따라서 이날 손흥민의 키스 세리머니는 함부르크 팬들의 원성을 ‘자초한’ 행위였던 것이다. 포르투갈이 낳은 스타 루이스 피구는 바르셀로나에서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이적 후 코너킥을 차기 위해 코너 플래그 앞에 설 때마다 동전, 물병 등 잡동사니 세례를 받아야 했다.
   
   이러한 불문율을 일부러 보란 듯이 무시하는 행위도 간혹 발생한다. 대표적인 선수가 토고 출신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다. 고향 팀 아스날에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 아데바요르는 아스날을 상대로 골을 기록한 후 굳이 반대편까지 달려가 아스날 팬들 앞에서 세리머니를 펼치는 기행을 보인 바 있다.
   
   참고로,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 양손을 귀 옆에 대는 세리머니는 그에게 야유하는 상대팀 팬들을 도발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따라서 상대팀과 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선수들 가운데엔 이런 포즈를 고의로 취하는 선수들이 의외로 많다.
   
   FIFA에서는 또한 세리머니 때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단속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특히 세리머니를 통해 표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의 박종우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을 꺾은 뒤 ‘독도는 우리 땅’이라 적힌 종이를 들고 세리머니를 했다가 FIFA 규정에 걸린 경우가 대표적이다.
   
   
▲ 지난 5월 23일 U-20 아르헨티나전에서의 백승호.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농구·야구·배구
   
   축구와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매 경기마다 골이 많이 터지고 스코어가 나는 농구와 야구, 배구는 세리머니도 역전의 순간처럼 극적인 순간에 국한되기 마련이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선수들은 2013년 9월 애리조나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한 뒤 애리조나의 홈구장 체이스필드 우측 담장 너머에 있는 수영장에 단체로 빠지는 세리머니를 했다. 하지만 애리조나 지역 언론과 선수들은 “다저스 선수들이 너무 무례했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을 땐 과한 세리머니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어기는 경우 충돌은 불가피하다. 얼마 전 최근 미국 프로농구(NBA)에서는 승리가 거의 확정된 팀의 선수가 경기 마무리 상황에 돌파를 해서 레이업을 넣는 모습을 보였다. 큰 점수 차로 경기가 마무리되어갈 때는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금기사항을 깬 것이다. 패배 팀 선수들은 즉시 득점한 선수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마찬가지로 야구에서 큰 점수 차가 나 있는 9이닝인 상황에서는 도루를 하지 않는다. “백기를 든 패자에게 총질하는 꼴”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미국 프로풋볼(NFL)에서는 종교와 관련된 세리머니가 문제가 된 적도 있다. 2014년 9월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경기에서 캔자스시티의 한 선수가 터치다운에 성공한 뒤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이슬람교의 기도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심판은 ‘비신사적 행위’라며 15야드 후퇴라는 페널티를 부과했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특정 대상과 관련된 세리머니나 행위를 할 수 없다”는 NFL 규정 때문이었다. 이에 미국 내 이슬람 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논란이 일어났고 NFL은 “그의 행동은 종교적 감정 표현이었을 뿐”이라며 심판 판정이 잘못됐다고 공식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항의’ 표시의 세리머니
   
   누군가에게 항의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세리머니를 이용한 경우도 있다. NBA ‘LA 클리퍼스’ 선수들은 2014년 4월 경기를 앞두고 구단 로고가 새겨진 연습 유니폼을 일제히 벗어 바닥에 내려놓은 뒤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훈련에 임했다. 이는 당시 클리퍼스 구단주인 도널드 스털링이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흑인과 함께 다니지 마라”라고 말한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스털링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한 것이다. 이 집단 세리머니 덕분에 결국 스털링은 구단주에서 물러났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는 보기 드문 의미심장한 세리머니가 있었다. 남자 마라톤에서 2위를 한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는 당시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두 팔로 ‘X’ 자를 만들어 보였다. 메달 수여식에서 은메달을 받으면서도 같은 방법으로 X 자를 만들었다.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의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 진압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지역 출신인 릴레사는 “오로미아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강경진압에 1000명 넘게 사망하고 투옥된 것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이런 행동을 했다”고 밝혔다.
   
   권투·레슬링·태권도·유도·펜싱·탁구·테니스 등 단체경기 아닌 개인경기는 선수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는 세리머니가 대부분이다. 주로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려 기쁨을 만끽하는 수준(테니스의 로저 페더러)으로 딱히 세리머니라 부를 게 없다.
   
   수일간 경기가 진행되는 골프 경기는 유독 우승을 확정한 직후 물에 뛰어드는, 종목 고유의 세리머니가 전통처럼 이어져오고 있다. 각종 스포츠에서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는 세리머니는 분명 팬들에게는 즐거운 볼거리지만, 지켜야 할 선을 넘은 세리머니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논란을 낳으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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