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세계 1위인 유소연(27)의 슬럼프가 길어지고 있다. 유소연은 지난 7월 31일 끝난 LPGA 투어 아버딘 에셋 스코티시 오픈에서 공동 23위를 기록하더니 일주일 뒤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메이저)에서는 공동 43위로 미끄러졌다. 경쟁자인 렉시 톰슨(미국)과 아리야 주타누간(태국)의 동반 부진으로 8주째 랭킹 1위를 유지하고는 있으나 톰슨이나 주타누간이 조만간 우승을 추가하면 2위로 떨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유소연의 슬럼프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부친의 세금 체납 사건 때문이다. 부친이 체납액 3억여원을 16년 만인 지난 7월 4일 완납했으나 그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에게 욕설을 하고 위협적인 문자를 보내는 등 물의를 일으켰다. 급기야 유소연이 이튿날 소속사를 통해 공식사과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고 이에 상처를 받은 유소연이 이후 열린 대회에서 좋은 스코어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8월 7일 브리티시 오픈에서 정상에 오른 김인경. 그는 2012년 나비스코 챔피언십(현재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30㎝짜리 퍼팅을 놓친 악몽을 이겨내며 메이저 첫 우승 트로피를 번쩍 들어올렸다. 지난 5년간 김인경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본인이 잊을 만하면 언론이나 주위에서 ‘툭 쳐도 들어가는 30㎝ 미스’를 지적해 우승의 발목을 잡곤 했다. 오죽하면 그녀가 2014년 인도네시아의 한 단식원을 찾아 13일간 금식하며 명상의 시간을 가졌을까. 이처럼 깊은 트라우마는 프로 골퍼들의 기록을 송두리째 앗아간다. 골프는 대표적인 멘탈 스포츠이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동반자의 매너 없는 말 한마디에 영향받아 18홀 내내 샷이 흔들린다. 프로 세계에는 없는 이른바 ‘구치 겐세이(입심 훼방)’가 문제다. 퍼팅 전 “골프 역사 300년에 짧아서 들어간 적 한 번도 없어”라고 한마디 던져 홀컵을 훌쩍 지나가게 하는 건 애교에 가깝다. 워터해저드 앞에서 쩔쩔매는 동반자에게 “날씨도 더운데, 물에 한번 들어갔다 나와야지”라며 공이 물에 빠지길 부추기는 건 나쁜 매너에 속한다. 티샷 전 “어, 배꼽 나온 것 같은데. 티박스를 벗어나면 2벌타야”라며 신경을 거슬리게 해 미스샷을 유도하는 건 동반자가 아니라 원수에 가깝다. 이때 다시 티 위치를 확인하면 제대로 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심적으로 무너졌으므로 동반자를 탓해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사람이 그리 예민하고 옹졸해서 사회생활 바르게 하겠나”라는 엉뚱한 핀잔이 돌아온다.

이와 반대로 워터해저드 앞에서 걱정하는 동반자에게 “심호흡을 한 번 더 해. 그리고 그린 오버한다는 기분으로 길게 치면 물은 충분히 건너가”라든지 “핀 뒤는 심한 내리막이야. 살짝 건드리기만 해서 핀에 붙여봐”라고 근심을 덜어주면 힘을 얻게 된다.

유머러스한 입담은 라운드의 활력소가 될 수 있지만, 지나친 입심 훼방은 상대방을 일시에 무너뜨린다. 날씨가 더워 짜증이 나는 요즘엔 입으로 골프 치는 일을 삼가고 골프의 품격을 지키자.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전 스포츠조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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