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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5호] 2017.09.18

‘바람의 손자’ 이정후 최고의 무기는?

김승재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tuff@chosun.com 

photo 뉴시스
‘바람의 손자’ 이정후(19·넥센)가 프로야구 데뷔 첫해 ‘태풍’을 일으키고 있다. ‘야구 천재’ 이종범(47)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인 그는 역대 신인 한 시즌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우며 아버지의 신인 시절 활약을 넘어섰다. 이종범의 현역 시절 별명이 ‘바람의 아들’인 탓에 이정후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바람의 손자’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는 지난 9월 5일 수원 KT전에서 시즌 158번째 안타를 뽑아내며 1994년 서용빈(LG)이 세운 신인 최다 안타 기록(157개)을 갈아치웠다. 이종범이 데뷔 시즌 친 안타(133개)도 일찌감치 앞질렀다. 넥센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전 경기(133경기·이하 11일 기록 기준)에 출전 중인 이정후는 타율 0.326(506타수 165안타)에 43타점 100득점을 기록 중이다. KBO리그 역대 최강 신인 타자라고 불렸던 양준혁(1993년 삼성·130안타), 신인 ‘30-30클럽’ 박재홍(1996년 현대·142안타) 같은 전설적인 선수도 최소한 프로 첫해 안타 개수만큼은 이정후에게 한 수 접어주게 됐다. 이정후가 돌파한 시즌 158안타는 이종범도 현역 시절 단 2번밖에 넘어서지 못한 기록이다. 양상문 LG 감독은 “과거보다 선수들의 기량이 훨씬 발전한 시점에서 나온 기록이라 더 대단하다”고 극찬했다.
   
   이정후에게 신인왕은 떼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올해 KBO리그 그라운드를 밟은 선수 중 그만큼 날카로운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자는 없고, 투수 중에서도 경쟁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종범도 1993년 건국대를 졸업하고 첫 시즌 바람몰이를 했지만, 양준혁에 밀려 평생에 한 번뿐인 신인왕 타이틀은 차지하지 못했다.
   
   
   아버지 이종범의 4가지 주문
   
   수퍼스타의 2세는 주변의 큰 기대가 부담으로 작용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찍 꿈을 접는 경우가 많지만 이정후는 이런 우려를 깨끗이 잠재웠다. 일각에선 그가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특급 야구스타인 아버지의 체계적인 지도와 지원 속에서 컸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그래서 일부 팬은 그를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몬드수저’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야구를 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버지가 야구를 가르쳐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넥센에 신인 1차 지명으로 뽑혔을 때 아버지가 해준 4가지 조언이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구단 훈련 캠프에 처음 합류하기 전 아버지가 저한테 진지하게 말씀하셨어요. ‘선배 말 잘 듣고, 눈치껏 판단해라. 그리고 인사 잘하고, 시간 약속 잘 지켜라’ 이게 전부였어요. 그러곤 ‘넥센 감독과 코치님들이 나보다 더 훌륭하신 분이니 열심히 배우라’고만 하셨죠.”
   
   이정후는 오히려 “이종범의 아들로 사는 것이 더 힘들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고1 때 주전으로 나갔더니 다른 학부모들이 ‘아버지 덕에 1학년짜리가 주전을 차지했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 내 실력으로 따낸 자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더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출전한 대회에선 ‘너희 아버지도 어제 삼진 먹고 들어갔는데 너도 삼진 당하고 집에나 가라’는 관중의 야유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이정후의 성공적인 프로 데뷔엔 그의 어머니이자 이종범의 아내인 정정민(46)씨의 역할도 컸다. 정씨는 아들을 엄하게 키우기로 유명하다. 정씨는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한테 양보하고, 튀는 행동은 하지 마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야구에 재능을 보인 이정후에게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정씨가 나서 정중히 거절했다. 아들이 ‘헛바람 들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정후는 “학교 다닐 때는 ‘내가 왜 이렇게까지 남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나’는 불만도 있었는데 지나고 나니 어머니의 뒷바라지 덕에 지금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 (좌) 아버지 이종범 해설위원. (우) 아들 이정후 넥센 히어로즈 photo 스포츠조선

   간결한 스윙·강한 멘털
   
   이정후의 장점은 간결한 스윙이다. 그에 앞서 신인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했던 서용빈 LG 코치는 이정후에 대해 “준비 동작이 짧아 스윙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며 “타격 타이밍을 여유 있게 잡기 때문에 변화구에도 큰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종범은 아들의 빠른 공 대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이종범은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갓 입단한 선수가 1군 투수들의 빠른 볼에 저만큼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며 “앞쪽 어깨가 빨리 벌어지지 않으니까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장정석 넥센 감독은 “나쁜 공을 건드리지 않고 끝까지 본다”며 선구안(選球眼)을 장점으로 꼽았다. 이정후의 헛스윙 비율은 4.1%로 리그 전체에서 두 번째로 헛스윙을 허용하지 않는 타자다. 9월 11일 기준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45명 가운데 헛스윙 비율이 가장 낮은 타자는 ‘단신 타격왕’ 김선빈(3.2%·KIA)이다. 그 다음이 이정후와 김하성(4.6% ·넥센)으로 5% 미만의 헛스윙 비율을 보유한 타자는 이들 셋뿐이다. 이정후는 올해 볼넷도 56개 골라내 리그 공동 10위를 기록 중이다.
   
   그를 ‘겁 없는 신인’으로 만든 건 갓 고교를 졸업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흔들리지 않는 강한 멘털도 한몫했다. 주로 1번 타자로 나서는 그는 “이번 타석에서 못 치면 다음 타석에서 잘하면 되니 긴장하거나 부담을 갖진 않는다”고 했다. 넥센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떤 기록을 세워도 크게 기뻐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원래 성격이 그렇다. 신인이고 아무것도 모를 때라 그런지 기록 같은 걸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이종범을 따라다니며 프로 선수들의 생활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힌 것도 도움이 됐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그는 타석에서도 철저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어떤 공을 노리는지 상대 투수에게 읽히지 않으려 어린 시절부터 들인 습관이라고 한다.
   
   이정후의 발은 신인 시절 73개의 도루를 기록한 아버지 이종범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11차례 베이스를 훔쳤고(공동 15위), 빠른 발과 주루 센스가 받쳐줘야 가능한 3루타도 8개(공동 2위)를 때렸다. 부족한 파워 역시 보완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투구-타구 추적 시스템인 트랙맨 데이터를 통해 나타난 그의 타구 스피드는 129.4㎞로 KBO리그 평균에 못 미친다. 이 때문에 홈런도 2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 19세인 만큼 발전 가능성은 크다. 이정후는 프로 입단 당시 키(185㎝)에 비해 체중(78㎏)이 가벼웠지만, 체력 훈련으로 현재 80㎏대 초중반으로 몸을 불렸다. 올 시즌이 끝나면 근력 운동에 더 중점을 둘 예정이다. 심재학 넥센 코치는 “이정후는 장타를 만들기 좋은 타구 발사각을 가진 타자”라며 “몸이 커지고 힘이 붙으면 좀 더 강하고 큰 타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후가 내년에 지금보다 더 성장하려면 부담감 탓에 슬럼프에 빠지는 ‘2년 차 징크스’를 극복해야 한다. 자신에 대한 상대팀의 ‘현미경 분석’도 이겨내야 한다. 민훈기 SPOTV 해설위원은 “자만심을 경계하고 야구 외적인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며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정석 넥센 감독은 “이정후가 앞으로 지금보다 힘이 더 붙으면 타구 속도도 빨라질 것이고 체력적인 면도 좋아질 것으로 본다. 좋은 쪽으로 발전할 일만 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범 아들’ 꼬리표
   
   야구 센스·타격·빠른 발·수비를 모두 갖춘 이종범을 쏙 빼닮은 그는 고교 때까지 아버지와 같은 포지션인 유격수를 맡았다. 아버지를 닮아 어깨는 강하지만, 고3 때 단거리 송구가 갑자기 불안해져 프로에 와선 외야수(중견수)로 변신했다. 그는 “원래 초등학교 때 중견수였는데 감독님이 아버지처럼 하라고 해서 고교 때까지 유격수를 봤다”면서 “아버지와 똑같이 하려니 혼란이 온 것 같다. 아버지를 자꾸 떠올리는 것보다 그런 생각 없이 할 때 야구가 더 잘된다”고 했다.
   
   그래선지 이정후는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44·마이애미 말린스)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다. 그는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아버지와 비교되는 게 싫어 야구를 시작할 때 등번호도 아버지의 현역 시절 7번은 일부러 피했다. 그는 “1번을 좋아해서 고교 3년 동안 1번만 달았는데, 프로에 오니 1번이 없어서 1이 들어간 41번으로 했다”고 말했다.
   
   애초 이종범은 아들을 골프선수로 키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정후는 정적인 골프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했고 아버지를 따라 야구를 하고 싶어 했다. 우타자였던 이종범은 오른손잡이인 아들에게 “좌타자를 하면 야구를 시켜주겠다”는 조건으로 야구를 허락했다고 한다. 좌타자는 우타자보다 1루까지 거리가 짧아 안타를 만들기가 더 쉽다. 이종범은 자식만큼은 좌타자로 키워 안타를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정후는 잘하든 못하든 늘 이종범과 비교된다. 그 역시 선수 생활하는 동안 아버지의 이름이 계속 따라다닐 거라는 걸 잘 안다. 그는 “아버지와의 비교는 어렸을 적부터 계속 들었던 말이라 이젠 익숙하다. 예전엔 싫었지만, 요즘엔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기고 자극도 된다”고 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래도 아버지와 자꾸 엮이는 건 불편하다”고 했다. 이정후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아버지한테 야구로 인정받을 때요.”
   
   그는 KBO의 레전드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아버지의 인정에 가장 목말라했다.
   
이정후는 누구?
   
   1998년 8월 20일생
   광주 서석초-서울 휘문중-휘문고 졸업
   2017시즌 넥센 1차 지명, 중견수·1번타자(우투좌타)
   연봉 2700만원
   KBO리그 역대 신인 최다 안타 신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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