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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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화제 중 하나는 구도(球都)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 자이언츠의 부활이다. 롯데는 9월 18일 현재, 75승61패2무, 승률 0.551로 4위를 달리면서 2012년 이후 5년 만에 가을야구 입성을 노리고 있다. 롯데는 7월 올스타 휴식기 이전까지만 해도 41승44패1무로 승률이 5할 아래(0.482)로 7위로 처지면서 포스트시즌은 물 건너 간 듯했다. 하지만 이후 치른 53경기에서 34승18패1무(승률 0.654)로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후반기 승률은 두산에 이어 2위다.

후반기 롯데를 끌어올린 힘은 여럿 있다. 린드블럼과 레일리 등 두 명의 외국인 투수에 송승준·박세웅·김원중으로 짜인 5인 선발 로테이션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고(선발 퀄리티스타트 29회로 1위), 이대호·손아섭·최준석의 방망이가 적시에 터지면서 경기 분위기를 끌고 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변화는 막강 불펜이다. 예전 롯데 경기는 끝까지 승부를 알 수 없었다. 4~5점 차로 앞서다가도 불펜이 와르르 무너지면서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올해 롯데는 다르다. 초반 끌려가다가도 후반 방망이가 힘을 내 단숨에 경기를 뒤집기도 하고, 웬만해선 역전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막강 불펜, 그중에서도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 자물쇠(Lock) 손승락(35)이 있기 때문이다.

손승락은 9월 19일까지 35세이브를 기록하며 이 부문 선두를 질주 중이다. 2위인 임창민(NC·29세이브)을 멀찍이 따돌리며 2010년과 2013~2014년에 이어 개인 네 번째 구원 타이틀을 따낼 것이 유력하다. 그의 구원 실력은 양(量)과 함께 질(質)로도 KBO리그 최정상급이다. 평균자책점 2.14로 올해 한 개 이상 세이브를 따낸 투수들 중 가장 좋다.

더군다나 후반기의 손승락은 거의 ‘언히터블(Unhittable)’ 수준이다. 15세이브를 기록한 전반기엔 동점 또는 역전을 허용한 게 4차례였지만, 후반기엔 20세이브를 따내면서 구원 실패는 한 번에 불과했다. 평균자책점도 전반기에는 2.45였으나 후반기엔 1.73의 ‘짠물 피칭’을 펼쳤다.

“강한 공을 던지려 모든 걸 다 바꿨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한 손승락은 2010년부터 소속팀 넥센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하면서 세 차례 구원왕에 올랐다. 공격력은 늘 수준급으로 평가받으면서도 마운드, 특히 중간계투와 마무리가 약해 번번이 패배를 자초했던 롯데는 2015년 시즌을 마치고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손승락을 영입하기 위해 4년간 60억원(계약금 32억원, 연봉 7억원)의 거금을 투자했다.

그러나 2016년 손승락에게 붙여진 별명은 ‘수호신’이 아닌 ‘승락극장’이었다. 마무리로 나와 완벽하게 상대방을 제압하기보다는 쉽게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도 위기를 자초해 보는 사람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손승락은 지난해 프로 데뷔 이후 두 번째로 적은 20세이브를 기록했고, 블론세이브도 6차례 기록했다. 평균자책점도 4.26으로, 나올 때마다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손승락은 올 시즌 전반기에도 불안하게 출발했으나 올스타 휴식기를 거치면서 백팔십도 다른 투수로 거듭났다. 손승락은 이에 대해 “갑작스러운 변화라기보다는 3년간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서서히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손승락이 변화를 고민한 시점은 2014년 넥센 시절이다. 32세이브를 따냈지만, 이전에 1~2점대였던 평균자책점이 4점대로 치솟았다.

“주위에선 저를 보고 ‘정점(頂点)’에 올랐다고 평가를 했어요. 그러나 내가 나만의 공을 던지기보다는 잘 던지는 투수, 폼이 좋은 투수를 따라한다는 걸 깨달았죠. 나 손승락만의 공을 던지기 위해서,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타자를 압도하는 강한 공을 던지기 위해 투구폼과 멘털까지 모든 걸 다 바꾸기로 했죠.”

손승락의 주무기는 150㎞에 육박하는 빠른 볼, 그리고 직구처럼 날아가다 홈 플레이트 근처에서 살짝 변화를 일으키는 140㎞대 컷패스트볼(커터)이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직구 위력이 떨어지는 것을 체감하면서 커터의 비중을 늘렸다. 단순하게 커터를 많이 던지는 게 아니라 옆으로 휘거나, 밑으로 떨어지는 두 종류의 커터를 던지며 타자들을 현혹시켰다. 올 시즌을 치르면서 두 종류의 커터를 마음먹은 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종전 위력을 되찾았고, 직구 구위도 덩달아 좋아지는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

손승락은 강한 정신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독서량을 늘렸다고 한다. 투구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관련 서적을 많이 읽지만, 자서전이나 시집도 틈이 나면 꺼내 본다. 최근엔 같은 투수 출신인 김원형 코치가 선물한 메이저리그 투수 심리 분석 서적을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멘털이 아무리 강해도 구원에 실패했을 때 찾아오는 좌절감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떨쳐버릴 순 없다. 손승락은 8월 10일 NC와의 마산 원정경기에서 재비어 스크럭스에게 끝내기 역전 홈런을 얻어맞고 패전 투수가 됐다. 당시 그가 경기장을 떠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당시 나 혼자가 아니라 롯데를 사랑하는 모든 팬들의 패배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살얼음 같은 리드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오를 때는 마치 작두를 타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그런 게 두려우면 마무리투수 하지 말아야죠. 내 공으로 타자를 ‘공격한다’는 마음으로 공을 던져야죠.”

손승락은 롯데 입단 당시 “팀과 팬들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부담이 있지만 내가 목표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 목표는 바로 가을야구, 롯데 팬들이 염원하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롯데는 올해 후반기 들어 마운드가 안정을 찾으면서 포스트시즌 돌풍을 이어갈 기세다. 더 높은 곳을 가기 위해선 손승락의 활약이 절대적이다.

“가을야구는 축제예요. 한 시즌을 열심히 했다라고 칭찬받으면서 상 받는 기분을 느끼죠. 하지만 축제 속에서도 일인자가 되지 못하면 항상 쓸쓸하게 시즌을 마친 것 같은 느낌이에요. 2015년 넥센에서 우승을 못 하고 준우승 한 번 한 게 너무 아쉬워요.”

손승락은 “개인기록보다 더 이루고 싶은 게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며 “계약기간(2019년)이 끝나기 전에 열렬한 롯데 팬들의 응원 속에서 우승을 꼭 해보고 싶다”고 각오를 펼쳤다.

강호철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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