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2478호]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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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빙상 대부’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

“평창 살릴 제2의 연아들이 있다”

▲ 지난 10월 10일 한국체대 빙상장에서 만난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는 “한국 빙상이 평창에서 제2의 도약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얼음을 가르는 칼날 소리엔 묘한 중독성이 있다. 나는 듯 빠르고 부드러운 선수들의 움직임과 맞물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질주를 끝낸 선수들의 하얀 입김. 링크 안은 이미 동계 스포츠 시즌이 한창이었다. 선수들이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한 선수가 무리에서 이탈한다. 나가떨어지며 스티로폼으로 된 벽에 부딪힌다. 전명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진촬영 포즈를 취하면서도 넘어진 선수의 움직임에서 눈을 못 뗀다. 승부사의 귀환, 전명규(54) 한국체대 체육학과 교수 얘기다. 그로서는 지난 2월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으로 빙상계에 복귀한 이후 맞는 첫 시즌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시즌이기도 하다. 10월 10일 한체대 빙상장에서 그를 만났다.
   
   전명규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그가 감독한 금메달의 순간들은 기억할 터다. 막판 역전극으로 쇼트트랙 남자 계주 금메달을 따낸 1992 알베르빌올림픽, 전이경이 쇼트트랙 여제로 등극한 1994 릴레함메르올림픽,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이 돋보인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동양인 최초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챔피언을 배출한 2010 밴쿠버올림픽…. 전 국민을 울고 웃게 한 장면마다 그가 있었다. 쇼트트랙을 한국 전용 메달밭으로 일군 장본인이 그다.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만 11개, ‘금메달 제조기’라는 다소 민망한 별칭이 그에게만은 똑떨어지는 이유다.
   
   얇은 경기복 차림으로 얼음을 지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바라보는 기자의 몸이 덜덜 떨린다. 링크장 평균 실내온도는 영상 10도, 얼음이 깔린 바닥 쪽 온도는 약 영하 7도다. 로비의 벤치로 자리를 옮겼다. 통유리 아래로 링크가 한눈에 보인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얼음을 정비하는 ‘잠보니’가 보인다. 지도자로 보낸 시간이 30년. 첫 시작은 1988 캘거리올림픽이었다. “캘거리에서 김기훈이 첫 금메달을 땄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이 쇼트트랙 금메달을 딸 줄은. 메달 시상식이 끝나고 선수들과 한국 식당에 갔다. 한국 기자단이 회식을 하고 있더라. 한 기자가 선수에게 물었다. ‘어느 종목이니?’ ‘쇼트트랙이요.’ ‘그래, 어떻게 됐니?’ ‘금메달 땄어요.’ 그 순간 기자들이 달려나가더라.” 한국 쇼트트랙 첫 메달을 현장에서 본 한국 기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단 얘기다. 아무도 우승을 예상치 못했거니와, 당시 쇼트트랙은 올림픽 시범종목이었다.
   
   “우승하니 외국인들이 묻더라. ‘한국엔 실내빙상장이 몇 개 있나?’ 두 군데밖에 없다고 답하긴 창피했다. ‘10곳 있다.’ 그거밖에 안 되냐고 놀라더라.” 이후 7번의 올림픽은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다. 남녀 종목을 불문한 한국의 독주. 나가노올림픽 때까지 심지어 선수촌에도 전용 훈련장이 없었다. 수영장에 얼음을 얼려 훈련했다. ‘날 들이밀기’ ‘바깥쪽 돌기’. 한국 대표팀 때문에 규정도 바뀌었다.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오노 사건 이후엔 비디오 판독을 도입했다. 할리우드 액션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나가노올림픽 후엔 ‘키킹아웃’ 규정이 생겼다. 피니시 순간 스케이트 날을 내밀려면, 얼음에 붙인 채 내밀어야 한다는 규정이다. 빙상계 외국팀 지도자도 많이 배출했다. 요즘은 인터넷 때문에 실시간으로 노하우가 퍼진다. 한국의 대표팀 선발전 동영상은 공개되는 그날로 전 세계 쇼트트랙 코치들의 분석 교과서가 된다. 전 교수를 링크장에서 잠시만 지켜보면, 왜 메달 제조기인지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시간 스케이팅과 경기만 생각하는 듯하다. 몰입이다. 빙속 선수들에게 쇼트트랙 훈련을 시키는 파격적 노하우를 생각해낸 비결이 아닐까 싶다.
   
   
   거목 잃은 한국 스포츠외교
   
   10월 3일 체육계 큰 별이 졌다.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다. 동양인으로 IOC 대권에 도전한 전무후무한 인물. 김운용은 동계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다. 전 교수의 말이다. “태릉선수촌에 오시면 따로 불러 격려해주시곤 했다. ‘동계올림픽 메달 박스는 쇼트트랙이야.’ 선수 이름 하나하나 다 외고 계시더라. 태릉국제스케이트장도 그분이 세웠다. 릴레함메르올림픽 때 생각이 난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물으시는 거다. ‘무슨 종목에서 메달이 나올 것 같나.’ ‘1000m가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자리에서 즉시 1000m 시상자를 본인으로 바꾸더라. ‘이분의 영향력이 이 정도구나’ 생각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김운용은 그만의 카리스마, 친화력, 국제감각으로 사마란치와 함께 국제 스포츠판을 호령했다. 현재 한국은 유승민 선수위원을 제외하면 단 한 명의 IOC위원도 없다. 북한은 IOC위원이 있다. 장웅 위원이 활동 중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IOC위원의 위상은 상당하다. IOC위원이 묶는 호텔엔 출신국 국기가 게양되고, 전 세계 어느 공항이든 프리패스다. 주요 임원진은 어느 나라를 방문하든 국가원수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몇 년 전 일본 신문기자가 찾아왔다. 대화 중에 이런 말을 하더라. ‘일본에서는 김운용 정도 인사를 한 방에 날려 보내지 않는다. 그 자리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나. 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국가를 위해 그 역량을 펼치게 했을 거다. 한국 입장에선 김운용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미리 경고를 주고 고쳐가며 활용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난 8월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IOC위원에서 공식 사퇴했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이 회장의 빈자리가 아쉽다. “밴쿠버올림픽 때 얘기다. 당시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은 메달을 딸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었다. 피겨는 김연아 빼곤 경기력이나 여건이 형편없었다. 부족했던 역량을 이건희 회장이 메워주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주셨단 얘기다. 이젠 기댈 데가 없어져버렸다.” 밴쿠버에서 한국은 종합 5위를 기록했다.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 순위다.
   
   ‘현대는 양궁, 삼성은 빙상’. 양궁은 현대그룹이 지원했고 빙상은 삼성그룹이 뒤를 받쳐줬단 얘기다. 삼성은 20년 전 빙상경기연맹 회장사를 맡은 이래 쭉 빙상계를 후원해왔다. “박성인 전 회장이 빙상연맹 회장에 취임하시고 이런 말을 했다. ‘삼성은 10년 후를 내다본다.’ 이때 세운 계획에 김연아도 포함됐다. 김연아가 중학교 2학년일 때부터 연맹이 지원한 동기가 그 말에 담겨 있다.” 여담이지만 역대 빙상연맹 회장 중엔 유명인사가 꽤 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박동선게이트’의 박동선, 나승렬 거평그룹 회장 등이다. 지난해까진 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 체제였다. 김 사장이 국제빙상연맹(ISU) 집행위원에 출마하며 연맹 회장직을 사임했다. 현재 빙상연맹 회장은 김상항 삼성생명 전 사장이 맡고 있다.
   
   전 교수는 김연아와도 인연이 깊다. 2009~2010 시즌에 팀리더 자격으로 김연아와 국제대회를 누볐다. 국제대회에서 전 교수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였다. 경기장 곳곳을 누비며 악수며 포옹이며 잠시도 쉬지 않았다. 각국 연맹 인사들은 스스럼없이 ‘빅 존(Big John)’에게 인사를 건넸다. 전 교수를 부르는 일종의 별명이다. 큰 몸집에 국제 쇼트트랙 게임판에서 ‘장기 독재’를 한 그의 개인적 역사가 더해져 잘 어울린다. 국제 심판이나 기술위원들과도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다. 현장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이 선수에게 심리적으로 얼마나 힘이 되는지 말이다.
   
   
▲ 전명규 교수(왼쪽)와 이승훈 선수. 이승훈은 한체대에서 훈련 중이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빅 존이 회고하는 역대 올림픽
   
   세계 정상급 선수들은 ‘싹수’부터 다를까. “당연하다. 한눈에 보인다. 어떤 점이 다른지 딱 집어 표현하긴 힘들다.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경험 때문에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 스포츠심리학 연구자도 같은 질문을 하면서 답답해 하더라. 다른 종목 지도자들도 나와 같은 답을 했다면서. 같은 톱클래스 선수라도 유형이 갈린다. 김기훈·전이경은 끊임없는 노력파였다. 공식 훈련 마치고도 스스로 달밤에 체조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유형이 롱런하더라. 김동성·안현수는 운동시간에만 죽기살기로 하는 선수였다. 그만큼 재능을 타고났단 얘기다.”
   
   약 네 달 후면 평창올림픽이 열린다. 복수의 체육계 인사들은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종목이라도 서울에서 열면 어떨까 싶다. 분산 개최다. 대회 흥행도 되고 해외에서 오는 방문객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사실 IOC는 일본과의 분산 개최까지도 권고했다. 토마스 바흐 위원장이 2014년 직접 언급했다. 동계 스포츠 인프라를 이미 갖춘 일본의 시설을 적절히 활용하면 환경파괴를 줄일 수 있단 이유였다. 영 불가능한 구상은 아니었다. 전례도 있다. 2002 한·일월드컵이다. 강원도는 극렬히 반대했다. 올림픽 반납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를 물었다. “그걸 어떻게 꼽나. 다 기억난다.” 전 교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이승훈 얘길 꺼낸다. “승훈이 메달 딸 때 참 즐거웠다. 다들 안 된다고 하는데 도전한 것 아닌가. 솔직히 나도 예상 못 했다. 올림픽 직전까지도 대회 5등이 승훈이 최고 성적이었다. 모태범, 이상화의 메달도 중요하지만 승훈이 메달은 더구나 의미가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최강국에서 온 전설 밥 데 용 선수를 이긴 거다.” 로비 한 면엔 활짝 웃고 있는 밴쿠버올림픽 ‘빙속 3남매’의 사진이 붙어 있다. 전 교수는 쇼트트랙 선발전에 떨어진 이승훈에게 스피드스케이팅을 권했다. 네덜란드 국가대표 선수였던 밥 데 용은 현재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다.
   
   가장 최악의 올림픽이 언제인지는 묻지 않아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2014 소치올림픽이다. 전 교수에게도 빙상계에도 지우고 싶은 대회다. 당시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가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됐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까지 이 문제를 입에 올렸다. 신년 업무보고 자리였다. “안 선수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 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당시 박 대통령의 언급은 지금 돌아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한창 타국에서 경기 중인 대표단을 졸지에 범죄 용의자 취급한 셈이다. 결국 남자 쇼트트랙팀은 올림픽 경기 최초로 노메달로 돌아왔다. 전 교수는 연맹 부회장직을 자진해 물러났다. 귀국 직후였다. 이 시기 김종 당시 문체부 차관은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를 만들었다. ‘전명규의 비리를 하나만 말해달라.’ 당시 빙상계 인사들이 받았다는 질문이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처럼 만들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지 않았나.” 지난 3년을 전 교수는 이렇게 간단히 요약했다. 상흔은 깊다. 안현수가 파벌 때문에 귀화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안현수와 전 교수의 사제 관계는 보통 이상이다. 지금도 한국에 올 때마다 안현수는 한체대 빙상장에서 훈련을 한다. 빙상계 인사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다.
   
   ‘파벌’ ‘밀어주기’. 오랫동안 빙상계와 전 교수를 따라다닌 단어들이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대가나 목적을 위해 한쪽이 다른 쪽에 불이익을 준다면 그것은 문제다. 지난 정부, 김종 차관이 경찰까지 동원해 3년 가까이 조사했지만 전 교수의 ‘비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전 교수가 빙상연맹 전무를 맡은 후 연맹 운영이 투명해졌다는 주장이 있다. 경기나 행사를 사전에 공지하는 관행이 이때부터 확립됐다는 얘기다. ‘밀어주기’도 마찬가지다. 기자가 지켜본 한국 빙상계는 간단한 집단이 아니다. 전 교수든 누구든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선수 편을 일방적으로 든다면 건재하기 힘들다. 전설로 불린 안현수도 선발전에서 떨어지면 그만인 곳이다.
   
   전 교수는 왜 비난의 대상이 됐을까. ‘타협하지 않는 성격’, 다르게 표현하면 ‘호오가 지나치게 분명한 태도’가 한 이유가 아닐까 추측한다. 적으로 두면 힘들어지는 상대다. 이승훈 선수의 생각은 이렇다. “교수님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들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선수들 비위를 맞추며 훈련을 이끈다. 전 교수님은 다르다. 교수님 앞에선 요령을 부릴 수 없다. 선체력 후기술이다. 체력 중심이다. 교수님이 특정 선수들을 훈련시키며 ‘밀어준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르다. 대표팀 선수 누구라도 원하면 개인 훈련을 할 수 있다. 저도 대표팀 훈련만으론 부족해 한체대에서 훈련 중이다. 상화도 캐나다에서 개인 훈련한다. 사실 교수님 밑에서 훈련하는 건 정말 힘들다. 훈련 강도가 세다. 여자 선수들은 특히 힘들어한다. 그렇지만 이 훈련 방식이 저에게 맞기에 스스로 선택한 거다.”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 선수도 한체대에서 훈련 중이다. 평창올림픽 우승 1순위로 꼽히는 선수다. 이승훈, 이상화도 메달 후보다. 쇼트트랙엔 최민정이 있다. 피겨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불모지였던 남자 싱글, 아이스댄스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여자 싱글과 함께 총 세 종목 출전권을 자력으로 확보했다. 올림픽 최초로 단체전 출전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다. 단체전 출전이 확정되면 페어 종목에도 출전할 수 있다. 평창이 빙상 제2의 도약지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중요하지 않은 올림픽이 있겠냐마는 평창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사에 특히 중요한 이정표가 될 이벤트다. IOC위원에 한국인이 추가로 진출할 수 있을지, 한국 사회가 또다시 국제스포츠대회를 유치할 수 있을까 등 굵직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대회 기간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 안정적이고 투명한 대회 운영이 관건이다. 당장 IOC는 평창이 최순실 스캔들에 연루됐던 것을 불편해 하고 있다. 도덕성 논란에 상당히 민감하다. 역대 위원장들의 전과 때문이다.
   
   전 교수와 인터뷰하는 사이 링크장 훈련 선수들이 바뀌었다. 먼저 훈련하던 선수들은 지상 훈련을 하러 자리를 옮겼다. 매일 똑같은 일과, 반복의 중압감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어쩌면 승부의 관건일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즐거운 순간들은 길지 않았다. 그곳까지 가는 과정은 길고 힘들었다.” 빙판을 응시하는 승부사의 중얼거림에 문득 쓸쓸해진 건, 찬바람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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