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2479호] 2017.10.23

가을야구 드라마는 ‘미친 영웅’이 만들어낸다

강호철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jdean@chosun.com 

▲ 지난 10월 1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NC와 두산의 1차전 경기. 5회초 1사만루에서 NC 4번타자 스크럭스가 만루홈런을 치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9월 11일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3차전. NC는 초반 불안했다. 주전 3루수 박석민이 초반부터 실책을 저지르며 흔들렸다. 김경문 감독은 지체 없이 벤치에서 대기 중이던 노진혁을 내보냈다. 노진혁은 팬들에게 거의 존재감이 없던 선수다. 1군 출장 성적도 별 볼 일 없던 노진혁은 이날 홈런 두 방을 터뜨리는 등 4타수 4안타 3타점 4득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NC는 승부의 분수령이던 3차전 승리를 발판 삼아 시리즈를 3승2패로 마감하며 플레이오프에 올랐다.
   
   가을야구는 언제나 깜짝 스타들이 등장한다. 국내 프로야구는 1982년 원년부터 의외의 가을영웅을 탄생시키며 출범했다. OB(현 두산) 김유동은 당시 박철순, 김우열 등에 가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선수였지만 한국시리즈에서 4할(25타수 10안타) 3홈런 12타점을 몰아치면서 초대 MVP의 영광을 품에 안았다. 특히 그는 시리즈 최종전인 6차전에서 만루홈런을 쏘아 올리며 KS 첫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으로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김유동의 그해 정규시즌 성적은 57경기 타율 0.245 6홈런 23타점에 불과했다.
   
   가을영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불세출의 우완’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은 고(故) 최동원이다. 최동원은 1984년 무려 한국시리즈 5경기에 등판해 4승1패로 팀 승리를 모두 책임졌다. 1차전을 4 대 0 완봉승을 엮어낸 뒤 이틀 쉬고 마운드에 올라 완투승(3 대 2)으로 기염을 토했다. 다시 2일 휴식 후 3일 만에 마운드에 오른 그는 패전 멍에를 썼지만, 6차전과 7차전에 연이어 등판하며 2승을 다시 따냈다. 그는 피로도 잊은 듯 7차전에서 4실점 완투승을 거두며 혼자 팀 승리를 책임졌다. 최동원이 당시 등판 가능 여부를 묻는 강병철 감독에게 승리에 대한 투지를 드러내며 “마, 함 해 보입시더”라고 한 말은 올해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롯데의 포스트시즌 슬로건이기도 했다. 최동원은 이런 맹활약에도 MVP로 뽑히진 못했다. 시리즈 내내 부진에 시달리다 7차전에서 3점 홈런을 유두열이 MVP로 선정됐다. 유두열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21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2도루. 안타 3개 중 한 개가 시리즈 전체의 운명을 좌우한 홈런이었다.
   
   
   이승엽·양의지·김용수… 가을의 전설로
   
   1980년대와 1990년대 역대 최강의 왕조를 구축한 해태(KIA)는 이름값만 따지면 모두가 MVP급이었다.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한대화, 이종범 등 강타자들과 선동열, 이강철 등 당대 마운드 최정상급 투수들이 한국 야구를 휘저었다. KIA는 이들의 활약을 발판 삼아 지금까지 통산 최다인 10차례 우승의 짜릿한 맛을 느꼈다. 하지만 이들 중 한국 프로야구에서 투수로 가장 화려한 업적을 남긴 선동열의 이름은 없었다. 선동열은 포스트시즌 통산 20경기에서 8승3패4세이브, 평균 2.24로 수준급 활약을 펼치긴 했지만 그때마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긴 동료에게 MVP의 공을 넘겼다.
   
   특히 좌완투수인 김정수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1986년 한국시리즈 4경기에 마운드에 올라 3승, 평균자책점 2.45를 기해 KS MVP로 선정됐던 그는 1987년에도 2승, 평균자책 0.77로 팀 마운드를 책임졌다. 1987년도 MVP 후보로 꼽혔으나 4전 전승으로 마무리된 그해 MVP는 12타수 6안타 2홈런 4타점의 주인공인 김준환에게 돌아갔다. 가을야구 총 32경기(해태 시절 27경기)에 올라 포스트시즌 통산 7승6패, 평균자책 2.87을 기록한 그에겐 ‘가을까치’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문희수도 해태왕조 시절 김정수와 함께 해태의 가을 철벽 마운드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포스트시즌 통산 4승, 평균자책 0.95로 활약했으며, 1988년 3경기에서 19와 3분의2이닝을 던져 단 1점만 내주며 2차례 완투(완봉 1회 포함)로 2승을 따냈다. 모기업이 해태에서 KIA로 바뀐 뒤 우승 인연을 맺지 못하던 타이거즈는 2009년 나지완이 최종 7차전에서 홈런 두 방을 터뜨리며 ‘가을에 미친 선수’로 등장했다.
   
   최근 2연속 챔피언에 오른 두산 역시 예상치 않았던 선수가 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했다. 2015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선 외야수 정수빈이 타율 0.571(14타수 8안타 1홈런 5타점)로 맹활약했고, 지난해엔 포수 양의지가 타율 0.438(16타수 7안타 1홈런 4타점)로 MVP가 됐다.
   
   선발투수와 찬스에 강한 홈런 타자의 전유물이 되다시피한 한국시리즈 MVP가 마무리투수를 적임자로 찾은 것은 1994년이다. 당시 LG 마무리투수인 김용수는 3경기 8과3분의1이닝 탈삼진 17 무자책점으로 1승2세이브를 기록하며 정삼흠, 이상훈, 서용빈, 김선진 등 스타급 선수들을 제치고 MVP의 영예를 차지했다. 김용수는 1990년엔 선발로 2승을 따내며 MVP로 뽑혀, 선발과 마무리의 능력을 모두 발휘하며 최우수선수로 뽑힌 유일한 선수가 됐다. 역대 한국시리즈에서 두 번 MVP가 된 것은 김용수와 정민태(현대) 해태 시절 이종범 등 3명이다. 이종범은 신인 시절이던 1993년 타율 0.310 4타점 7도루로 상대 수비를 휘저으면서 팀 내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MVP가 됐고, 일본 진출 직전인 1997년에도 홈런 두 방을 터뜨리며 시리즈 분위기를 이끌어 최고의 가을 사나이로 이름을 날렸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승엽은 삼성에 첫 우승을 안긴 2002년엔 9회 동점 3점포를 가동했으나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마해영에게 MVP를 양보했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가을영웅’으로 이름을 올렸다.
   
   2017년 한국시리즈는 10월 25일 막을 올린다.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KIA가 한국시리즈에 선착해 플레이오프 승부를 펼치는 두산(2위)과 NC(4위)의 플레이오프 승자와 격돌한다.
   
   가을야구(포스트시즌)는 정규시즌과 다르다. 투수 교체도 대타 기용도 정규시즌보다 한 박자 빠르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눈 깜짝할 새 주도권이 상대에게 넘어간다. 투수의 볼 배합도, 타자들이 노리는 공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큰 경기에서도 자기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배짱과 집중력, 상대의 허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세밀함이 승부를 좌우한다.
   
   모두가 예측하는 대로 승부가 이뤄지지 않는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선수가 ‘깜짝 영웅’으로 탄생하는 것. 그것이 바로 팬들이 가을야구가 연출해내는 짜릿한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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