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스포츠조선 기자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하프마라톤(21.0975㎞)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대회 당일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검색창을 두드리면 되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게 없어 뭘 준비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마침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씨가 신문사 편집국을 방문하는 게 아닌가. 인사를 하는 김에 물어봤다.

“달리는 동안에는 위에 부담을 주면 안 되므로, 소화 잘되는 걸로 아침식사를 하시죠. 바나나와 카스텔라에 스포츠드링크를 드세요.”

그의 조언 덕분에 하프마라톤을 비교적 수월하게 뛴 기억이 난다.

골프는 어떨까? 라운드 중 간식으로 뭘 먹어야 플레이에 도움이 될까? 프로선수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 된다. 우승을 위해 철저하게 영양학적으로 섭취를 할 테니까. 정답은 바나나와 초콜릿이다. 바나나는 포만감도 있으면서 소화가 잘된다. 초콜릿은 바나나에 비해 단단해 소화가 잘 안 될 것 같지만 위에 흡수가 잘 되는 당분 덩어리여서 역시 간식으로 안성맞춤이다. 물론 카스텔라도 좋다. 스포츠드링크를 곁들이면 먹기가 간편하다. 빵은 어떨까. 빵 역시 당분은 많으나, 극소량이지만 방부제가 들어 있는 수입산 밀가루로 만든 것이어서 소화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늘집에서 즐겨 먹는 짜장면은 기피해야 할 음식이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면류인 데다 튀김기름과 돼지고기도 위 흡수가 잘 안 돼 나이스 샷에 지장을 줄 수가 있다. 지인 중 어떤 싱글 핸디캐퍼는 전반 9홀에서 잘 치다가도 그늘집만 들어갔다 나서면 샷이 무너지곤 했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늘 짜장면을 맛있게 먹은 탓이었다. 짜장면으로 인한 포만감은 머리로 열이 올라가게 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이것은 스포츠에서 강조하는 ‘헝그리 정신’에 위배된다. 골프든 구기종목이든 격투기든, 속이 약간 비어야 집중력이 높아져 경기력 향상을 돕는다. 그늘집에서 즐겨 마시는 막걸리와 맥주도 열이 나게 만드는데, 늦가을이나 추운 겨울엔 보온 효과를 위해 마셔도 좋지만 봄·여름·가을에는 삼가는 게 지혜롭다. 술을 마시면 일시적 긴장 완화로 인해 한두 홀 정도 잘 칠 수는 있으나 결국엔 샷을 망쳐 불쾌한 기분으로 라운드를 마치게 된다.

아침 7시쯤 클럽하우스에서 밥을 먹으면서 반주로 소주를 한 병씩 마시는 이들을 가끔 본다. 이는 골프에 대한 모독이다. 술은 가급적 라운드 후 식사하면서 ‘안전 운행 범위 내’에서 정도껏 마셔야 한다. 도심으로 돌아와 동반자들과 흥겨운 뒤풀이를 갖는 게 더 좋지만.

어쨌든 그늘집에서는 가볍게 음식을 섭취해야 좋은 컨디션을 이어갈 수 있는데 우리나라 골프장은 그늘집에 바나나와 카스텔라를 판매하지 않는 게 문제다. 식당 매상을 올리기 위해 푸짐한 안줏거리가 주메뉴다. 그러니 그늘집은 한낮인데도 때아니게 술판이 벌어진다. 필자처럼 골프장 갈 때마다 ‘바나나, 카스텔라 비치’를 건의하면 언젠가는 실현되지 않을까.

김수인 골프칼럼니스트·전 스포츠조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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