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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4호]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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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남달라’ 박성현 드라이버 입스 극복하고 수퍼스타 되기까지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haksoo@chosun.com 

photo 뉴시스
“너무 멋있잖아요.” “보고 있으면 그냥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에요.” 국내 대회에 출전한 박성현(24)을 취재하다 보면 다양한 색깔의 ‘남달라’ ‘박성현’ ‘짱’ 등의 글씨를 써붙인 모자를 쓰고 응원하는 팬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좋아하는 감정을 말과 행동으로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고 싶어한다. 평일에도 1000명은 훌쩍 넘고, 주말에는 1만명 가까이 몰려들 정도로 열성적인 팬들이다. 배구의 김연경과 함께 스포츠계에서 ‘센 언니 신드롬’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스타 선수가 박성현이다.
   
   남성 팬도 많지만 무게중심은 여성 팬 쪽에 쏠린다. 연령층도 폭넓어 걸크러시(Girl Crush)의 한국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에 참가한 외국 선수들이 이런 박성현을 두고 “록스타 같다”고 했다. 이런 인기는 호쾌한 플레이 스타일과 미소년 같은 이미지가 어우러진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장타 외에는 단점 투성이였던 ‘노랑머리’ 선수가 세계 여자골프의 신데렐라가 된 과정은 ‘잘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면들이 있다. 그건 바로 몇 가지 남다른 선택이었다.
   
   박성현은 지난 11월 20일 막을 내린 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챔피언십’(총상금 250만달러)에서 공동 6위를 기록하며 3개의 타이틀을 차지했다. 지난 10월 일찌감치 확정한 신인상과 함께 올해의 선수, 상금왕을 품에 안았다. 신인상과 함께 올해의 선수가 된 것은 1978년 낸시 로페스가 전관왕(신인상, 올해의 선수, 상금왕, 최저타수상)을 차지한 이후 39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올해의 선수는 박성현과 유소연이 공동 수상했다. 한국 선수로는 2013년 박인비에 이어 4년 만이다. 박성현은 여자골프 세계랭킹에서 지금은 펑산산에 이어 2위이지만 LPGA 신인으로는 사상 처음 세계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우고는 “가문의 영광”이라고 했었다.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었다. 트럼프는 방한(訪韓)기간 국회연설에서 한국 여자골프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다 박성현의 이름을 콕 집어 거명했다. 트럼프가 소유한 골프장에서 열렸던 올해 US여자오픈에서 박성현은 LPGA 첫 우승을 차지했다.
   
   화려한 박성현의 이면에는 작은 희망의 빛을 좇던 노랑머리 시절이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박성현은 공을 멀리 칠 수 있다는 걸 제외하면 보잘것없는 선수였다. 한 라운드에 보통 OB를 서너 번씩 내 프로라는 명칭이 무색할 때도 있었다. 하루 10개의 OB를 낸 적도 있다. 쇼트게임이나 퍼팅도 날카로운 면이 없어서 트러블 샷 상황이 발생하면 쉽게 타수를 잃곤 했다. 드라이버 샷과 아이언 샷이 잘 맞으면 버디·이글도 쉽게 잡지만, 티샷이 빗나가면 속칭 ‘양(兩)파’도 흔히 나오는 주말골퍼 같은 선수였다. 이 시절 그는 머리를 샛노랗게 물들이고 다녔다.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물들였다. 마음고생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푸는 그만의 방법 중 하나였다. 그 시절 손목에는 ‘Lucete(루케테)’라는 작은 문신 하나를 새겼다. 라틴어로 ‘밝게 빛나라’라는 뜻이다. 그는 그 문신을 보며 드라이버 입스(yips·샷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불안증세)를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반전(反轉) 매력 넘치는 골퍼로 성장한 박성현에게는 몇 가지 남다른 용기 있는 선택이 있었다. 이제는 LPGA 투어에서도 유명해진 그의 별명 ‘남달라’는 스스로 붙인 것이다. 중학교 시절 “정상에 오르려면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에 감명을 받은 뒤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고는 스스로에게 ‘남달라’라는 별명을 붙였다. 골프백에도 ‘남달라’라고 써붙이고 다니고, 인터넷 아이디도 팬클럽 이름도 ‘남달라’다. 이렇게 목표를 세우면 남들도 알게 된다. 이런 면은 수줍은 성격과 달리 대담하고 일관성이 있다.
   
   
▲ 박성현이 지난 11월 17일 LPGA 투어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퍼팅 라인을 읽고 있다. photo 연합

   멀리, 빨리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박성현의 드라이버 입스 탈출기는 눈물겹다. 키 171㎝, 체중 60㎏인 박성현은 드라이버 샷 거리 260~270야드에 헤드 스피드는 시속 105마일(약 169㎞)까지 나온다. 남자 프로골퍼 평균과 비슷한 수준이다. 박성현은 “유연성은 부족하지만 순발력을 타고나 다운스윙 때 골반 회전이 빠르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축구선수 출신이고 어머니는 태권도 공인 3단이다.
   
   박성현은 고2 때 국가대표가 됐다. 국가대표가 됐다는 부담감에 입스가 찾아왔다. 국내외 유명 코치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때마다 “정확성을 높이려면 스윙 스피드를 줄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박성현은 “단점을 고치기 위해 장점을 포기하라는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박성현은 한국 여자 프로골프 1부 투어에 데뷔한 2014년에도 드라이버 입스가 재발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해 한화금융클래식에서는 4번홀(파5홀)에서 OB 3개를 내고 12타를 쳤다. 그때 기록한 라운드 스코어가 주말 골퍼나 다름없는 91타였다. 어머니와 단둘이 미국 동계 훈련을 떠났다. 스스로 가장 좋았다고 생각하는 중3 때 스윙 리듬과 템포를 되찾기 위해 당시 스윙 영상을 쉬지 않고 돌려 보며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연습했다. 한 달쯤 지나니 문제점을 깨달았다. 스윙이 시작부터 너무 빨랐고, 백스윙 크기도 매번 달랐다. 박성현은 “좋았던 때 스윙은 어떤 동작을 하더라도 늘 손 위치가 양어깨 안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백스윙을 천천히 시작해서 부드럽게 친다는 느낌으로 바꾸니, 스윙 스피드와 백스윙 크기가 일정해지면서 OB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때 박성현의 좌우명 ‘하면 된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가 만들어졌다. 고교 시절에 이어 프로가 돼서도 드라이버 입스에 시달렸지만 “될 때까지 하니 되더라. 그래서 좌우명이 정해졌다”고 한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고민도 많이 했다. “대회에 나가 모르는 사람들과 한 조가 되면 다들 나만 쳐다보는 것처럼 신경이 쓰여서 내 스윙이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 분명 재능이 있는데 예민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장애물이 된다면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훈련 중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같이 라운드해달라고 부탁했다. 동반 라운드가 끝나면 일부러 집까지 놀러가서 밥을 얻어먹고 왔다.
   
   박성현은 지금도 OB를 낸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하루에 OB 하나쯤은 난다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친다”고 한다. 요즘 박성현은 OB를 내고도 언더파를 치거나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내성적인 편이지만 점점 더 많은 팬과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박성현은 CME그룹 투어챔피언십 마지막 날을 앞두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조급해 하지 말자’는 글귀가 담긴 책의 페이지를 복사해 올렸다. ‘중요한 것은 빨리 달리고 멀리 가는 게 아니라 원하는 목적지로의 방향을 알고 그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조금씩 느리게 가더라도 원하는 방향을 알고 가다 보면 정말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되는 결승점에 도착할 테니 절대 조급해하지 마세요’라는 내용이다. 별 볼일 없었던 골퍼가 수많은 팬들의 별로 떠오른 비결을 고백하는 것처럼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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