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포츠
[2485호] 2017.12.04

내년 러시아, 아이슬란드의 기적이 이어진다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jordantic@chosun.com 

▲ 2016 유로 8강 진출에 이어 2018 월드컵 본선 진출로 주목받고 있는 아이슬란드. 지난해 6월 28일 ‘유로 2016’ 16강전에서 잉글랜드에 0-1로 뒤지던 아이슬란드 선수들이 전반 6분 동점골을 넣은 후 뒤엉켜 기뻐하는 모습. photo 연합
내년 여름 지구촌 축구 드라마가 펼쳐진다. 6월 14일 막을 올려 7월 15일까지 약 한 달간 열전을 벌이는 러시아월드컵이다. 32개국이 참가할 이번 대회 조 추첨식은 12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다. 이번 월드컵에는 유럽 14개국, 남미·아시아·아프리카 각 5개국, 북중미 3개국이 참가해 자웅을 겨룬다.
   
   이번 월드컵부터는 조 추첨을 위한 포트 배정을 기존 대륙별이 아닌 FIFA 랭킹 순으로 바꿨다. FIFA 10월 랭킹 기준으로 1~7위인 독일·브라질·포르투갈·아르헨티나·벨기에·폴란드·프랑스가 개최국 러시아와 함께 1번 포트에 들어갔다. 62위인 한국은 4번 포트다. 각 포트에서 한 팀씩 뽑아 8개 조를 편성하는데, 최대 두 팀이 들어갈 수 있는 유럽을 제외하고 같은 대륙끼리는 한 조에 속하지 않는다.
   
   국내 팬들은 월드컵 최상의 조와 최악의 조를 만들어 보느라 이미 분주하다. 2010 남아공월드컵 챔피언 스페인이 2번 포트에 배정되면서 스페인이 들어가는 조가 ‘죽음의 조’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으로선 ‘브라질-스페인-덴마크-한국’ ‘아르헨티나-스페인-스웨덴-한국’ ‘프랑스-스페인-코스타리카-한국’ 등이 최악이 될 수 있다. 반면 개최국 러시아가 한 조에 속하면 1번 포트의 강팀을 피할 수 있다.
   
   가상의 조를 만들다 보면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하는 두 나라가 눈에 띈다. 파나마는 북중미 예선 코스타리카와의 최종전에서 극적으로 2 대 1로 승리하며 조 3위에 올라 미국을 떨어뜨린 팀이다. 유럽의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유럽축구선수권(유로) 8강 진출 돌풍에 이어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새로운 역사에 도전한다. 북유럽의 ‘얼음나라’ 아이슬란드는 최근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 팀 중 하나다. 프랑스에서 열린 유로 2016에서 8강에 오르며 신흥 강호로 급부상했다. 사실 유로 2016 전까지 아이슬란드는 월드컵이나 유로 본선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못한 팀이었다. 그나마 유럽 최정상 공격수로 군림한 아이더르 구드욘센(39)이 아이슬란드 축구를 세계 축구팬에 알렸다.
   
   
   32개 출전국 중 인구 가장 적은 나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출신의 구드욘센은 첼시·바르셀로나 등 유럽 빅클럽에서 뛰며 골잡이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첼시에선 6시즌을 뛰며 78골을 터뜨렸다. 구드욘센은 ‘부자(父子) 국가대표’로도 유명하다. 구드욘센의 아버지 아르노 구드욘센(56)은 1979년부터 1997년까지 아이슬란드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아들 아이더르가 아이슬란드 국가대표로 데뷔전을 치른 게 1996년 4월 에스토니아전으로, 당시 아버지 아르노와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았다.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이 투입되면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르게 된 건 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아이더르 구드욘센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는 유로 2016 8강 프랑스전이었다. 당시 38세의 베테랑 구드욘센은 유로 2016에선 주로 교체 멤버로 벤치에 대기했다. 이날도 구드욘센은 후반에 들어와 10여분을 뛰며 팀의 2 대 5 패배를 지켜봐야 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대표팀 후배들이 이뤄낸 값진 성과 덕분이었다. 당초 조별리그 통과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아이슬란드는 포르투갈·헝가리·오스트리아와 함께 속한 F조에서 1승2무로 선전하며 조 2위로 16강에 올랐고 16강에선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2 대 1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서울 도봉구(34만명) 인구의 아이슬란드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스토리에 전 세계가 놀랐다. 아이슬란드 인구는 중국의 약 400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10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을 따져 보면 아이슬란드가 21위, 중국은 57위다. 축구로 따지면 아이슬란드는 절대 소국(小國)이 아닌 것이다. 이번 월드컵 진출로 아이슬란드는 ‘월드컵 본선 출전국 중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종전 기록은 2006 독일월드컵에 출전한 인구 130만명의 트리니다드토바고였다.
   
   적은 인구만큼이나 유로 대회 당시 화제가 만발했다. 원정 응원을 위해 유로 티켓을 구입한 아이슬란드 사람이 전체인구의 약 10%인 3만명. 오스트리아와 벌인 조별리그 3차전 때는 아이슬란드 전체 TV 시청자 중 99.8%가 축구 경기를 지켜봤다. 아이슬란드의 부유한 한 사업가는 잉글랜드와의 16강전을 맞아 2300만크로나(약 2억3000만원)에 180인승 전세기를 빌려 원정 응원단을 가득 태우고 경기가 열리는 니스를 찾았다. 대회를 거치면서 아이슬란드 유니폼 판매량은 1800%나 늘었다고 한다. 유로 대회가 끝나고도 아이슬란드는 쉽게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수도 레이캬비크 아르나홀 광장에서 열린 선수단 환영식엔 전체인구의 10%가 모였다. 그로부터 9개월 뒤인 지난 3월엔 역사적 수준의 베이비붐이 나타났다. 아이슬란드의 한 의사는 현지 언론을 통해 “유로 대회 덕분에 이번 달 기록적인 수준으로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두 팔을 번쩍 들고 ‘후’ 하는 함성과 함께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손뼉을 치는 ‘바이킹 천둥 박수(Viking Thunder Clap)’는 유로 대회 최고의 히트상품이었다. 아이슬란드 선수들이 경기가 끝나고 팬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바이킹 천둥 박수’를 치는 모습에 전 세계 팬들이 열광했다. 유로 2016에선 인기가 치솟아 독일·프랑스 등 축구 강대국 팬들이 그 모습을 따라하기도 했다.
   
   
▲ 유로 2016 8강 진출 후 아이슬란드 대표팀이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축하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모습. photo 연합

   ‘손’ 자 돌림 선수들 온 나라가 친척
   
   덴마크 혈통인 구드욘센을 제외하면 모든 아이슬란드 선수가 손(Son)으로 이름이 끝나는 것도 시선을 끈다. 이들이 ‘손’ 자 돌림을 갖게 된 건 이 나라의 특별한 작명법 때문이다. 아이슬란드에선 가계(家系)의 성(姓)이 따로 없고 아버지의 이름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스테판 군나르손(Gunnarsson)’이란 남성의 아들은 ‘욘 스테판손(Stefansson)’이 되는 식이다. 욘 스테판손은 말 그대로 ‘스테판의 아들(son), 욘’을 의미한다. 같은 방식으로 스테판 군나르손의 아버지 이름은 ‘군나르 손’이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딸은 ‘손’ 대신에 ‘도티르(dotir)’를 붙인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외국에 어린 아들·딸을 데리고 나갈 경우 여권에 적힌 부모와 자녀의 성이 완전히 달라 해명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대표팀의 수많은 ‘손’ 중 가장 중심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에버턴에서 뛰는 길피 시구르드손이다. 시구르드손은 지난 시즌까지 스완지시티에서 기성용과 한솥밥을 먹던 사이라 국내 팬들에겐 친숙한 선수다. 올여름 이적료 4000만파운드(약 580억원)에 에버턴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는 곧바로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플레이오프에서 45m 중거리슛으로 에버턴 데뷔골을 뽑아냈다. 아이슬란드 대표팀 주장은 카디프시티(웨일스) 소속인 아론 군나르손이다. 주전 골키퍼 하네스 할도르손은 취미생활이 영화촬영이다.
   
   그렇다면 화제의 나라 아이슬란드는 인구 34만명으로 어떻게 유로 2016 8강에 이어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까지 이뤄낼 수 있었을까. 더구나 아이슬란드는 국토의 79%가 사람이 살기 어려운 빙하와 호수, 용암지대로 이뤄져 있어 프로 리그가 활성화되지 못한 나라다. 아이슬란드 대표팀 전원이 해외파인 이유다. 현 아이슬란드 대표팀 구성을 보면 잉글랜드·스코틀랜드·스페인·독일·스웨덴·러시아·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벨기에·터키·그리스·스위스·이스라엘 리그 등 전 유럽에 걸쳐 선수들이 뛰고 있다.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아이슬란드 선수의 숫자는 100여명에 불과하다. 인구가 너무 적어 “아이슬란드인 5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이 대표팀 선수와 아는 사이”(월스트리트저널)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얇은 선수층이 클럽팀 이상의 탄탄한 조직력으로 이어졌다. 시구르드손 등 현재 아이슬란드 대표팀 주축을 이루는 1988~1993년생은 이른바 ‘인도어 키즈(Indoor Kids)’로 불리는 세대다.
   
   여름을 제외한 계절엔 땅이 얼어붙어 1년에 8개월은 실외 축구가 어려운 아이슬란드는 2000년부터 정식 규격의 실내축구장인 ‘풋볼 하우스’를 건립했다. 이들이 그 혜택을 처음 받고 자라난 세대다. 그러면서 선수들끼리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가 됐다. 수비수 아리 스쿨라손은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실내에서 공을 차면서 자란 사이”라며 “그 어떤 대표팀보다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일당백의 강인한 정신력도 아이슬란드의 트레이드마크다. 16년간 아이슬란드 대표로 활약했던 헤르만 흐레이다르손은 “거센 눈보라를 뚫고 학교에 가곤 했던 아이슬란드인들은 기본적으로 터프하다”며 “정신력에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슬란드는 원래 핸드볼의 나라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남자팀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랬던 아이슬란드가 정부와 축구협회의 지속적 노력으로 축구를 가장 대중적인 생활 스포츠로 만들었다. 학교마다 들어선 인조잔디구장이 수백 개에 이른다.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한 생활축구인은 전체인구의 7%인 2만3000여명이다. 축구가 생활스포츠로 완전히 자리를 잡으면서 엘리트축구의 수준도 올라갔다.
   
   아이슬란드는 시설을 갖추면서 사람에 대한 투자도 진행했다. 아이슬란드에는 UEFA 지도자 자격증을 받은 코치만 850명에 달한다. 아이슬란드 대표팀 감독 헤이미르 할그림손(49)은 UEFA 지도자 자격증과 치과의사 자격증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할그림손은 대표팀 일정이 없을 땐 치과의사로 변신한다. 그는 “나를 찾아주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축구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평온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로 8강 진출로 세계를 놀라게 한 할그림손의 아이슬란드는 러시아월드컵 유럽 예선 I조에서 크로아티아·우크라이나·터키 등 강호들을 제치고 그토록 염원했던 월드컵 본선행까지 이뤄냈다. 10경기에서 7승1무2패(승점 22)를 거두는 동안 16골을 넣고 실점은 7골에 불과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루카 모드리치, 바르셀로나의 이반 라키티치 등 세계적인 미드필더를 보유한 크로아티아가 아이슬란드에 밀려 조 2위에 머물렀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과 3·4위전을 벌였던 터키도, 200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전설적인 공격수 안드리 셰브첸코의 조국 우크라이나도 아이슬란드의 위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나서는 아이슬란드는 내년 여름 러시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이 벌써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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