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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1호]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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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유망주들] 스노보드 이상호

배추밭서 닦은 실력 雪上의 역사를 바꾼다

이태동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ltd@chosun.com

photo 윤형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 한국엔 감추고 싶은 비밀이 하나 있다. 올림픽 설상(雪上·눈밭) 종목 메달이 ‘0’이라는 사실이다.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에서 동계올림픽에 데뷔한 한국은 2014년 소치 대회까지 메달을 총 53개(금26·은17·동10) 획득했는데, 이게 전부 빙상(氷上) 종목에서만 나왔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 김윤만(스피드스케이팅)이 처음 은메달을 따낸 걸 시작으로 쇼트트랙에서 42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9개, 피겨스케이팅에서 2개를 수확했다. 스키나 스노보드 같은 눈밭 위의 경기에선 동메달 한 개가 없다.
   
   한국은 1948년 이후 오슬로 대회(1952년 6·25전쟁으로 불참)를 제외하고 소치 대회까지 모든 동계올림픽에 출전했고, 2010 밴쿠버에선 세계 5위(금6·은6·동2)에 오르는 등 ‘동계 강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강국이란 타이틀은 반쪽짜리라는 게 드러난다. 평창 대회 기준, 102개 금메달 중 절반이 넘는 61개가 설상에 걸려 있을 만큼 동계올림픽에서 설상 종목의 비중이 크지만 그동안 한국에 눈밭 스포츠는 너무 먼 얘기였다.
   
   올해 평창 대회에선 한국 설상 선수들이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중 선두에 선 선수가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상호(23·한체대)다. 이상호는 지난해 2월 한국 스노보드 최초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는 등 2관왕(평행회전·평행대회전)에 올랐고, 3월엔 설상 종목 사상 처음으로 FIS(국제스키연맹)월드컵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상호의 주 종목은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이다. 평행대회전은 보드를 탄 선수 두 명이 나란히 슬로프를 내려오며 일대일로 속도 대결을 펼치는 경기다. 크게 예선과 결선으로 나뉘는데, 예선은 레드·블루 코스를 한 번씩 탄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정한다. 16명이 나서는 결선에선 예선 성적이 좋은 선수가 레드와 블루 코스 중 한쪽을 선택할 권한을 갖는다. 16강부터 단판 토너먼트로 우승자를 가린다.
   
   올림픽 시즌 시작은 순조롭다. 이상호는 지난해 12월 9일 2017~2018 시즌 첫 대회인 유로파컵(FIS월드컵보다 한 단계 낮은 대회)에서 올림픽 챔피언들을 모두 누르고 우승했다. 16강전에서 2010 밴쿠버 대회 우승자 제이시 제이 앤더슨(캐나다), 8강전에서 2014 소치올림픽 2관왕 빅 와일드(러시아)를 제압했다. 결승에선 전년도 우승자 실뱅 뒤푸르(프랑스)까지 잡아냈다.
   
   이후 이탈리아 카레차월드컵에서 11위, 코르티나 담페초 대회에서 9위를 했고, 2018년 새해 첫 대회인 오스트리아 라켄호프월드컵에선 7위에 올랐다. 첫 두 대회에선 예선을 잘 치르고도 16강에 탈락했지만, 라켄호프에선 8강까지 올랐다. 2월 평창 대회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금은 평창 유망주로 주목받는 그지만 시작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다. 강원도 정선에 살던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집 근처 고랭지 배추밭에 조성된 슬로프서 스노보드를 배웠다. 지역 스키협회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개최한 강습회에 그의 아버지가 먼저 다녔고, 이상호가 아버지를 따라나와 배우기 시작한 게 선수생활로 이어졌다. 이 일화가 알려지며 그는 ‘배추밭 소년’ ‘배추 보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스노보드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서 그는 금세 최강자로 올라섰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국내 대회를 휩쓸었고, 2013년 주니어세계선수권에선 9위를 해 톱10 진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세계 성인 무대를 기준으로 보면 우물 안 개구리였다. FIS월드컵에 데뷔한 2013~2014 시즌 최고 성적이 52위에 그쳤다. 다음 시즌 월드컵 최고 순위도 24위에 불과했다. 올림픽 메달을 꿈꾸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게 당시까지 이상호는 해외와 비교해 척박한 환경에서 스노보드를 탔다. 국민의 관심 밖에 있던 한국 스노보드 대표팀은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헝그리정신’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2014년 이전까지 알파인 스노보드팀은 이상헌 코치(현 대표팀 총감독) 한 명이 관리했다. 이 코치는 이상호 외에 다른 스노보드 대표선수까지 홀로 챙기며 요리, 운전, 장비 정비 같은 궂은일까지 처리했다. 어쩔 수 없이 선수들의 발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이상호가 한 훈련도 스노보드 기문이 꽂힌 슬로프를 반복해서 내려오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해외 훈련은 꿈꾸기 어려웠다.
   
   
   ‘기록 파괴자’의 도전
   
   평창올림픽을 3년여 앞두고 상황이 달라졌다. 2014년 말 롯데그룹이 대한스키협회 회장사로 들어와 5년간 1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스노보드 대표팀에도 지원금이 투입되면서 외국인 전문 코치 3명과 전담 트레이너가 합류했다. 이상호는 설질에 따른 움직임과 상대 맞춤 전략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고려한 훈련을 받고 있다. ‘정신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담 심리학자도 붙었다. 과거와 달리 비시즌 기간 뉴질랜드, 남미 등지에서 훈련도 할 수 있게 됐다. 부담을 벗은 이상헌 총감독도 이상호를 위해 짜 놓은 올림픽 액션 플랜을 차근차근 실행할 수 있게 됐다.
   
   해외 훈련이 늘면서 얻은 의외의 수확도 이상호가 성장하는 데 자양분(滋養分)이 됐다. 이른바 ‘팀 코브라(KOBRA)’다. 이상호는 2015년 말부터 불가리아·프랑스 선수와 함께 훈련을 했다. 이들이 3개국 나라 이름(Korea+Bulgaria+France)에서 글자를 따서 ‘코브라’라는 애칭의 팀을 만들었다. 원래 스노보드 약소국이었던 세 나라 코치들이 기문 꽂는 일을 서로 도와주다가 의기투합하면서 생겨났다. 올림픽 대비 특별 스터디 모임인 셈이다. 팀 멤버들은 세 나라 국기와 코브라 뱀을 그린 스티커를 보드에 붙이고 경기에 나설 정도로 가까워졌다.
   
   집중 지원과 특별 스터디의 힘은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 2017년 2월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2관왕, 3월 한국인 최초 설상 종목 월드컵 은메달이 이상호의 보드에서 나왔다. 그해 FIS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이상호는 5위를 기록했다. 한국 스노보드 사상 최고 성적이다.
   
   ‘기록 파괴자’ 이상호의 최종 타깃은 평창 동계올림픽이다. 한국 동계올림픽사에 없었던 설상 메달을 홈 올림픽에서 안기겠다는 각오로 이상호는 막바지 훈련 중이다. 지난해 말엔 휘닉스 스노 경기장에서 올림픽 코스와 똑같이 조성된 슬로프를 타며 예행연습도 했다. 이상헌 총감독은 “이상호가 세계대회 시상대에 여러 번 서 보면서 약점이었던 멘털 문제도 극복해가고 있다”며 “평창올림픽 메달은 정말로 꿈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상호는 자신감 넘친다. “현재 성적은 모두 평창올림픽을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최고의 기량으로 꼭 좋은 결과를 얻을 겁니다. 좋은 결과요? 금메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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