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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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의 영웅 박세리가 활약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은 여자골프 ‘빅3’의 시대였다. LPGA투어에서 25승을 거둔 박세리(41)도 잘했지만, 41승의 캐리 웹(44·호주)은 대단했고, 72승의 애니카 소렌스탐(48·스웨덴)은 무서웠다.

소렌스탐은 비거리면 비거리, 정확성이면 정확성, 트러블 샷이면 트러블 샷, 못하는 게 없었다. LPGA에서 유일하게 꿈의 59타를 기록했던 소렌스탐은 18개 홀에서 모두 버디를 잡아 54타를 기록하겠다는 목표 ‘비전 54’를 향해 달렸다. 한국 선수들이 엄청난 훈련으로 골프밖에 모르는 ‘스윙 머신’이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소렌스탐은 한국 선수보다 더 지독했다. 동계훈련 때면 하루 윗몸일으키기 1000개에 5㎞씩 달렸다. 30대엔 근육질의 여전사처럼 변모했다.

그런데 이런 ‘골프 여제(女帝)’가 스윙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샷을 하는 순간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주말 골퍼들이 절대 금기 사항으로 꼽는 ‘헤드업’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프로들 중 소렌스탐처럼 샷을 하자마자 고개를 휙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로들의 스윙 사진이나 동영상 화면을 보면 클럽 헤드가 공을 치고 나갔는데도 시선은 공이 있던 위치를 바라보는 듯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렌스탐이 헤드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헤드업(head up)은 말 그대로 머리(head)를 쳐드는(up) 동작이다. 공을 치기도 전에 결과가 궁금해 타구 방향으로 고개를 들면서 ‘몸이 일어서는’ 동작을 하는 것이다. 결국 어드레스 때의 스윙축이 바뀌게 되고 정타(正打)를 칠 수 없게 된다. 대부분 공을 깎아치는 결과로 이어져 슬라이스(오른손잡이 기준으로 공이 오른쪽으로 휘는 것)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주말 골퍼들이 헤드업과의 사투를 벌이다 못해 골프화 윗면에 ‘고들개(고개 들면 개새끼)’라고 적어 놓기까지 한다.

소렌스탐은 머리부터 허리까지 어드레스 때 잡아놓은 축을 그대로 유지한다. 벌떡 일어서는 동작으로 샷 실수를 하고마는 주말 골퍼의 헤드업과는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소렌스탐은 왜 이런 습관을 지니게 된 것일까. 소렌스탐의 설명이다. “어린 시절(17세) 스웨덴 국가대표가 돼서 헨리 레이스 코치를 만났어요. 그분은 제가 오른발에 체중을 놓고 공을 치기 때문에 역C자형 피니시 자세가 나온다고 했어요. 피니시 동작에서 등이 똑바로 펴지는 것이 아니라 늘 목표와 반대로 휘어지게 되는 거죠. 이런 스윙으로는 몸을 다치기 쉽고 체중이동도 되지 않아 공에 힘을 실을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어요.” 소렌스탐은 다운스윙할 때 체중이 왼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임팩트 이전에 머리를 목표 쪽으로 돌리면서 공을 치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다.

소렌스탐은 “자신의 머리가 단지 어깨를 따라갈 뿐”이라고 했다. 스윙할 때 머리가 몸을 따라 회전하면서 몸도 머리도 동시에 목표를 향해 릴리스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LPGA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던 소렌스탐은 ‘헤드업의 진실’을 몸으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고개를 들지 말고 자연스럽게 돌린다면 더 편안하고 힘이 실리는 공을 때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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