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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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마다 하고 싶은 스윙 스타일이 있는데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건 다르다는 걸 느꼈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걸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요.”

2010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해 8승을 거둔 이정민(26)이 지난 1월 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스윙으로 유명했다. 여러 해 동안 KLPGA 동료들이 꼽은 ‘가장 부러워하는 스윙’의 주인공이었다. 173㎝의 균형 잡힌 체격에 드라이버 헤드스피드가 100마일을 넘었다. 남자 프로 선수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2번 아이언으로 200m를 날리는 모습은 여자 골프에서는 보기 드문 호쾌한 장면이었다. 드라이버 거리도 250m를 넘나들었다. 투어 9년 차 베테랑으로 ‘일가(一家)를 이루다’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실력과 경험이 쌓일 시점이었다. 그런데 이정민의 상황은 마치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 정상 근처까지 힘겹게 밀어 올리면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형벌이 영원히 되풀이되는 신화 속의 주인공 시시포스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그는 2016년 3월 투어 8승째를 거두며 전성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을 듣던 시점 돌연 슬럼프에 빠졌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스윙이었지만 그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원래 왼손잡이인 그는 오른손으로 골프를 배웠다. 스윙 때 왼손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면 악성 훅(오른손잡이 기준으로 공이 왼쪽으로 급격하게 휘는 샷)이 드물게 나오곤 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제가 싫어하는 미스 샷이 있다. 불필요한 움직임 때문에 생기는 엉뚱한 샷을 없애고 싶다.”

2009년, 열일곱 살이던 그를 처음 만났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 2부 투어에서 뛰던 이정민은 하얀 얼굴에 수줍음을 잘 탔다. 그러나 악수를 해보니 손도 컸고 힘도 좋았다. 그는 “골퍼로서 18홀을 완벽하게 플레이해보고 싶어요. 드라이버, 세컨드샷, 어프로치, 퍼트까지 모두 완벽하게 해보는 게 소원이에요”라고 했다.

‘완벽한 스윙’에 대한 욕심으로 슬럼프의 늪에 빠진 뒤에도 스윙코치를 4번이나 바꿀 정도로 조바심을 냈다. 그런데 새로 익힌 샷은 몸을 제대로 쓰지 않아 파워가 부족하거나, 왼쪽 실수 대신 오른쪽으로 실수가 나오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정민은 “만족할 만한 색상과 디자인의 부츠를 발견했지만 제 사이즈에 맞지 않는 걸 찾아낸 것과 비슷했다”고 비유했다. 그의 아이언 샷은 좌우로 흔들렸다.

이런 이정민에게 4년간의 슬럼프를 이기고 정상에 오른 박인비는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인비도 완벽주의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박인비는 이렇게 말했다. “골프는 잘되는 날보다 안되는 날이 많은 스포츠다. 중요한 건 잘 안될 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안되는 날인가 보다 가볍게 생각하고 마는 게 좋은 경우가 많다. 자칫 작은 실수에 집착하다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스윙코치(안성현)와 재결합한 이정민은 “미국 전지훈련을 통해 ‘할 수 있는 샷’을 집중 연마하고 있다”고 했다. 골프도 인생처럼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깨닫는 것, 그것이 곧 성숙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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