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스포츠조선
ⓒphoto 스포츠조선

“느려서 나쁜 스윙은 없다”고 한다. 골프가 어려운 건 대부분 의욕이 앞설수록 정반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장타를 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면 스윙이 빨라진다. 마음이 급해지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는 멀리 보내고 싶다면 빨리 쳐야 한다. 하지만 스윙 궤도를 이탈한 빠른 스윙은 자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백스윙도 제대로 되지 않은 가운데 힘만 잔뜩 들어가면 십중팔구 엎어치는 스윙을 하게 된다. 이런 타구는 공이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다.

프로들도 스윙이 흐트러질 때가 있다. 이럴 때 그들은 ‘따라쟁이’가 된다. 리듬과 템포가 좋은 선수들의 스윙을 따라하며 감각을 되찾는다.

호주의 미남 골퍼 애덤 스코트는 “스윙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박인비의 느린 템포를 따라하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골프 실력도 프로급인 농구 스타 스테판 커리도 “내가 꿈꾸는 스윙 템포를 박인비가 갖고 있다. 시간을 내서 박인비의 경기를 꼭 본다”고 했다.

이런 박인비가 따라하는 골퍼가 있다. 지난해 은퇴한 일본의 골프 영웅 미야자토 아이다. 박인비는 “다른 사람의 스윙은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스윙이 흐트러질 때마다 미야자토 아이의 스윙을 지켜보면서 리듬과 템포를 다시 찾곤 했다”고 말했다.

미야자토는 LPGA투어에서 9승을 거두었고 일본 골퍼로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 1위를 지냈다. 155㎝의 단신인 그는 마치 슬로비디오 화면을 보는 듯한 한없이 느린 스윙으로 정상에 올랐다. 드라이버 샷 거리가 245야드 안팎으로 장타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페어웨이 적중률은 80%에 육박할 정도로 정확성이 뛰어났다.

미야자토의 스윙이 얼마나 느린지를 미국 골프채널이 보여준 적이 있다. 스윙이 빠른 편인 브리타니 린시컴(미국)과 드라이버 스윙을 비교했는데 린시컴이 스윙을 끝냈을 때까지도 미야자토는 아직 백스윙을 마치지 않았다.

슬로모션을 보는 듯한 미야자토의 스윙은 작은 체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야자토는 오키나와의 골프 집안에서 태어났다. 네 살 때부터 티칭프로인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웠다. 프로선수가 된 두 오빠와 함께 훈련했다. 2009년 에비앙마스터스(현재 에비앙챔피언십)에서 LPGA투어 데뷔 4년 만에 첫 승을 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미야자토의 말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제까지 나의 노력, 내 골프로도 우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미야자토의 슬로 스윙’은 비거리를 내고 싶거나 어깨 턴을 제대로 하지 않아 엎어치는 스윙이 잦은 주말 골퍼들에게 특히 효과가 크다.

미야자토는 느리지만 체격에 비해 아크가 큰 스윙을 한다. 클럽은 지면을 따라 낮고 길게 움직이기 시작해 높은 위치에서 백스윙 톱을 만들어낸다. 대신 손목 코킹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낸 백스윙 톱의 ‘위치에너지’를 엉덩이와 몸통의 회전에 맞춰 다운 스윙으로 공에 전달한다. 이런 슬로 스윙은 엎어치는 동작을 예방할 수 있고 스윙의 일관성도 높여준다. 공을 팔로만 치는 것도 막아준다. ‘천천히 칠수록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느림의 역설을 보여준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