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웨이가 개미허리 같은 골프장에서 티 박스에 설 때마다 이런 주문을 외는 골퍼를 보았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 얼마나 불안하면 이럴까 싶었지만, 그는 이 한마디로 OB가 날 땐 나더라도 자신감 있게 치게 된다고 했다.

골프는 매 순간 바뀌는 운동이다. 세계 정상급 프로골퍼들도 첫 라운드에는 60대 타수를 치고, 다음 날은 80대 타수를 치기도 한다. 전반에 이븐파를 치고 환호했다가, 후반에 50타를 치고 절망하는 주말 골퍼를 적지 않게 보게 된다.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고 실수를 줄여주는 조언이 절실할 때가 많다.

올해 골프인생 50년을 맞은 라종억(71)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에게 주말 골퍼를 위한 ‘필드십결’을 부탁했다. 바둑의 위기십결(圍棋十訣)처럼 필드에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키며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혜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얼마 전 ‘라종억의 포에지, 내 골프채가 어떻게 아프리카 초원에 갔을까?’라는 책을 냈다. 1968년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골프에 입문한 그는 아마추어 고수다. 63세에 63타(9언더파)를 쳐 에이지 슈트(age shoot·18홀 경기에서 나이와 같거나 적은 스코어를 내는 것)를 기록했다. ‘한국골프 장타자협회’ 회장으로 2003년엔 351야드를 공인받은 적도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다. 그와 함께 만든 필드십결은 이렇다.

하나, “골프를 잘 치려면 먼저 골프 몸을 만들라”= 매일 스트레칭을 하자. 그는 실내 자전거를 10분 타고는 목, 어깨, 팔 운동, 다리 벌리고 허리 숙이기, 발목·발가락 돌리기 운동을 한다. 누워서 수퍼맨 자세, 고양이 자세, 개구리 자세, 플랭크 자세를 한다. 매일 적어도 30분씩 한다. 코어 근육(core muscle·골반과 척추를 지지하는 근육)이 강해지면 가볍게 멀리 칠 수 있다.

둘, “티샷 전 연습 스윙은 내리막 경사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으면서 빈 스윙을 하면 하체가 고정되고 큰 근육을 이용하는 느낌을 알게 된다.

셋, “골프는 원운동”= 샷을 딱 끊어 치는 골퍼들이 많다. 해머나 캐틀벨 돌리기를 해보면 스윙은 코어 전체 근육으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넷, “스윙은 그네 타듯”= 스윙을 어디에서 늦추고 가속할지 알게 된다. 그네를 타듯 백스윙 톱에서 잠시 멈췄다 다운스윙으로 연결하라.

다섯, “자기만의 프리샷 루틴을 만들자”= 일정한 샷 준비동작을 만들면 긴장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여섯, “어프로치는 손으로 공을 던져서 굴린다는 이미지로”= 클럽과 몸의 일체감을 높인다.

일곱, “퍼팅도 드라이버와 같은 아크스윙”= 팔로 스루를 끝까지 한다.

여덟, “그분이 오시면 잡으라”= 훈련을 통해 존(zone·고도의 집중 상태)에 있는 상황을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촛불 응시 등 다양한 훈련 방법이 있다.

아홉, “자연을 거스르지 마라”= 비바람이 불면 자연과 하나 되고, 대지의 모양에 맞춰 어드레스를 한다.

열, “남에겐 관대, 나에겐 엄격하자”= 동반자 수준에 맞춰 경기한다. 지나치게 원칙대로 하면 재미가 없고, 너무 방만하면 긴장감이 사라진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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