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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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그린 잔디를 깎기 시작하면 오전 8시에 18홀 전체가 마무리돼요. 그런데 그 사이에 이슬이 끼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꼭 이슬털이를 해줘야 해요. 잔디를 막 깎았을 때와 이슬이 맺혔을 때는 그린스피드가 60㎝ 이상 차이가 나거든요. 그리고 습도가 높을수록 그린스피드가 늦어지기 때문에 산악 지형 골프장에서는 양지와 응달 차이가 꽤 심해요. 프로들은 잔디가 역결(홀 방향 반대로 누워 있는 것)일 때는 순결일 때보다 한 바퀴 정도 더 구르게 퍼팅을 하죠.”

이준희(50) 인천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대표는 잔디 박사다. 고려대 농대 원예과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 에버랜드에 입사했다. 가평베네스트와 안성베네스트 조경과 설계를 맡았고 유학을 떠나 미국 캔자스주립대 골프코스 매니지먼트 석사, 플로리다대 잔디생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38세이던 2006년 전남 함평 다이너스티골프장을 시작으로 전남 순천 파인힐스, 남양주 해비치골프장 사장을 거쳤다.

잔디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은 세계 1위 박인비 때문이다. 지난 5월 20일 막을 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두산매치플레이 챔피언십. 박인비는 100야드 안팎 어프로치 샷에서 거리를 맞추지 못하고,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도 2~3m씩 지나쳤다. 퍼팅에서 상대방들을 압도하지 못했다면 우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회가 열렸던 라데나골프클럽의 페어웨이가 한국잔디 야지였다. 박인비는 “페어웨이에서 치는데도 플라이어(flyer·클럽과 공 사이에 잔디가 끼면서 적정량의 백스핀이 걸리지 않아 공이 10야드 이상 더 멀리 날아가는 현상)가 하루에 두어 번씩 난다”고 했다. 반대로 미국 남자 메이저대회급으로 조성한 벤트그래스 그린은 박인비가 가장 좋아하는 조건이었다.

이 대표는 “국내 골프장 가운데 페어웨이에 흔히 쓰이는 한국잔디는 중지로 잔디 잎줄기가 직립형이어서 공이 지표면에 떠 있다”며 “그래서 ‘티 꽂고 샷하는 느낌’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야지는 중지에 비해 잔디의 잎줄기가 누워 있긴 하지만 서양 잔디 벤트그래스와 비교하면 공이 더 떠 있게 된다.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페어웨이는 벤트그래스다. 여기선 공이 거의 지면에 붙어 있다시피한다. 공을 정확하게 찍어 쳐야 공이 잘 뜬다.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뒤땅을 많이 친다. 페어웨이 잔디가 벤트그래스면 러프는 페스큐(벼과의 다년생풀)로 조성한다. 페스큐의 진한 색상이 연한 벤트그래스와 대비되면서 시각적 효과가 뚜렷하다. 그런데 이 페스큐는 조금만 길러 놓으면 공을 칠 때 클럽을 휘감는다. 가파른 스윙으로 클럽이 가급적 페스큐 잔디와 덜 접촉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잔디는 페스큐와 비교하면 그나마 클럽이 잘 빠지는 ‘양반 잔디’다.

골퍼의 에티켓으로 통하는 그린 보수에 대해서는 “잘하든가 맡기든가” 양자택일이 좋다고 했다. 그린에 공이 찍히면 잔디가 밀려난다. 그럼 밀린 방향에서 앞쪽으로 당겨주면서 들어 올려줘야 한다. 그런 다음 퍼터로 다져서 면을 잡아줘야 한다. 뿌리가 상한 상태로 잔디가 떠 있게 되면 말라 죽는다. 이 대표는 “벙커 관리와 잔디 보수 등을 꼼꼼하게 하시는 분들은 정말 골프를 좋아하는 분들”이라고 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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