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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3호] 201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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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퍼거슨, 에릭손, 파헤이라, 차범근… 월드컵 감독들의 잔혹사

김현민  골닷컴 기자 

▲ 왼쪽부터 차범근 전 한국 감독, 알렉스 퍼거슨 전 스코틀랜드 감독, 스벤 예란 에릭손 전 잉글랜드 감독, 카를로스 파헤이라 전 사우디 감독,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전 사우디 감독, 훌렌 로페테기 전 스페인 감독, 레오 베인하커르 전 사우디 감독. photo 뉴시스
단일 종목 스포츠로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대회로 축구선수들과 감독들에게 꿈의 무대가 월드컵이다. 무수히 많은 전설적인 스타들과 명장들이 월드컵 역사를 장식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 영광의 이면에는 무수히 많은 선수들과 감독들의 눈물도 함께한다. 특히 승승장구하던 감독이 월드컵 실패를 계기로 몰락하는 경우도 잦다. 이런 의미에서 놓고 보면 월드컵은 감독 수난사와도 직결된다.
   
   
   전설 퍼거슨의 유일한 실패 흑역사
   
   축구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뽑히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 역시 예외는 아니다. 감독 시절 초창기에 에버딘을 이끌고 레인전스와 셀틱 양강이 지배하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1979~1980시즌)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고, 1986년부터 2013년까지 27년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영광의 시대(Glory Man United)’를 만들었다. 맨유가 곧 퍼거슨이었고, EPF(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를 세계 최고의 축구무대로 끌어올린 장본인 중 하나가 바로 퍼거슨이다. 하지만 그런 퍼거슨에게 유일한 흑역사가 바로 월드컵이다. 사실 그가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축구 팬들이 많다.
   
   퍼거슨은 1985년 9월부터 1986년 멕시코월드컵까지 스코틀랜드 대표팀을 이끌었다. 스코틀랜드의 명장이자 퍼거슨의 은사인 조크 스타인이 웨일스와의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최종전에서 상대팀 감독과 악수를 하러 가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며 스코틀랜드 팀을 이끌게 됐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웨일스와의 최종전에서 경기 종료 10분을 남기고 동점을 만들며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얻었다.
   
   퍼거슨은 에버딘을 지도하면서 스코틀랜드 대표팀의 코치직도 병행하고 있었다. 은사인 스타인의 임종으로 퍼거슨이 스코틀랜드를 맡아 치른 호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 1승1무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월드컵 본선 조별 리그 1·2차전에서 퍼거슨의 스코틀랜드는 덴마크와 서독에 연달아 졌다.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에서도 무기력하게 0-0 무승부에 그치며 탈락했다. 지금 유럽에서 스코틀랜드 축구의 위세가 약하다고 하지만 당시만 해도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을 만큼 강호였다. 특히 1986년엔 그래엄 수네스와 고든 스트라칸, 알렉스 맥라이시 같은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성기를 달리던 덴마크와 서독에 진 건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무기력한 경기 끝에 우루과이와 비긴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다.
   
   전설과 명장이란 수식어가 따르는 퍼거슨에게 월드컵은 조별리그 탈락의 성적표를 남겼다. 8년 동안 대표팀 코치직을 맡으면서 선수단에 대한 이해가 풍부했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화려한 그의 이력에 실망스러운 성적표가 분명하다.
   
   러시아 대표팀 초대감독 파벨 사디린은 비운의 인물이다. 1988년만 해도 소련은 유로 1988 준우승과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차지할 만큼 강호였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과거 소련 선수들은 독립국가연합(CIS)이라는 이름으로 유로 1992에 참가해야 했다.
   
   1992년 2월 8일, 러시아축구협회가 만들어지며 첫 러시아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인물이 바로 사디린이다. 당시 사디린은 1990~1991시즌 CSKA 모스크바의 2관왕(소비에트리그와 소비에트컵)을 거머쥐며 주가를 높이고 있었다. 그는 1994년 미국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에서 5승2무1패의 성적으로 러시아의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이때만 해도 러시아 축구의 황금세대라는 평가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월드컵 개막을 3달쯤 앞두고 러시아에 큰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14명의 러시아 대표팀 선수들이 이스라엘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항명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 대표들이 스폰서 문제를 둘러싸고 감독 교체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무대에서 뛰던 일부 스타들이 월드컵 대표팀을 떠났다. 그럼에도 사디린이 이끄는 러시아는 강호로 불렸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이 열리면서 사디린의 러시아는 강호 이미지를 잃었다. 브라질과 스웨덴에 패해 조별리그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항명 파동을 거치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사디린은 이후 건강 악화에 시달렸고 결국 2001년 12월 만 59세의 이른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월드컵 대표들이 등 돌린 에릭손의 몰락
   
   스웨덴이 배출한 명장 스벤 예란 에릭손은 1980년대와 1990년대 포르투갈 명문 벤피카와 세리에A 팀들을 맡으면서 세계 최고 감독 중 하나로 올라섰다. 이름값에 비해 월드컵 무대 성적이 초라했던 잉글랜드가 ‘축구 종가’라는 자존심을 꺾고, 2001년 이런 에릭손을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불러들였다.
   
   사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었던 에릭손에게 성적을 기준으로 ‘실패한 감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에서 우승팀 브라질에 1 대 2로 졌고, 유로 2004와 2006, 그리고 독일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로 포르투갈에 져 아쉽게 탈락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의 사생활에 있었다. 에릭손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낸시 델올리오라는 이탈리아 변호사와 동거를 하던 중 TV방송 진행자인 울리카 존슨과 바람을 핀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뒤이어 유로 2008 본선이 끝나고는 잉글랜드 축구협회의 폭로를 통해 에릭손이 개인비서 파리아 알람과 내연 관계였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여자 관련 스캔들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2006년 초, 위태위태하던 에릭손이 끝내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지금은 폐간이 된 영국의 타블로이드신문의 위장 취재에 속아 대표팀 감독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쏟아냈다. 당시 에릭손은 “연봉만 맞는다면 2006년 월드컵이 끝나고 클럽 감독을 맡을 수 있다”고 확답하는가 하면, 잉글랜드 대표팀 일원인 웨인 루니가 “가난한 집 출신이어서 무식하다”거나 “리오 퍼디난드는 게으르다”는 등 선수들의 뒷담화를 늘어놓았다.
   
   월드컵을 코앞에 두고 에릭손이 벌인 사건은 잉글랜드 대표팀을 흔들었고, 감독으로서 그의 명성을 추락시켰다. 결국 2006년 월드컵을 끝으로 사임했다.
   
   공교롭게도 에릭손 감독 사건 8년 뒤인 2016년 9월 잉글랜드 대표팀은 다시 감독 샘 앨러다이스가 사고를 냈다. 불법적인 선수 거래 방법을 털어놓으며 부임 67일 만에 잉글랜드 역대 최단기간 감독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긴 채 떠나며 월드컵 무대조차 밟지 못했다.
   
   
   파리 목숨 사우디 감독
   
   사우디아라비아는 1957년 압둘 라흐만 파우지가 첫 대표팀 감독이 된 이후 지금까지 61년 동안 브라질과 네덜란드를 포함해 총 17개 국적의 감독들이 56번이나 바뀌었다. 이 중에는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던 마리오 자갈로를 비롯해 카를로스 파헤이라, 레오 베인하커르 같은 세계적 명장들도 있다. 특히 나세르 알 조하르는 무려 5번이나 사우디 감독을 맡았고, 모하메드 알 카라시는 3번, 파헤이라와 피스터도 2번 사우디 감독을 맡았다.
   
   그나마도 초창기엔 감독 교체 속도가 ‘양반’이었다. 1980년대 말 이후에는 감독 교체 속도가 놀랍도록 빨라졌다. 1988년부터 지금까지 30년 사이에 무려 40번이나 감독이 경질됐다. 9개월마다 한 번씩 감독을 교체한 셈이다.
   
   더 놀라운 건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후다. 네덜란드의 명장 베인하커르가 사우디의 첫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음에도 경질된 것이다. 또 호르헤 솔라리는 사우디를 미국 월드컵에서 무려 16강에 진출시켰음에도 짐을 싸야 했다.
   
   이후에도 사우디의 경이적인 감독 경질 행보는 월드컵 무대마다 펼쳐졌다. 1994년 미국월드컵부터 2006년 독일월드컵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매번 예선을 치른 감독과 본선에서의 감독이 달랐다. 특히 1994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시킨 명장 파헤이라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경질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사우디가 밥 먹듯 감독을 교체하는 전통 아닌 전통은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대표팀 감독 후보로도 거론됐던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는 사우디의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작 러시아월드컵 무대에 그는 없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 그는 짐을 쌌다. 그의 후임 감독이던 에드하르도 바우사는 평가전에서 연달아 지자 2개월 만에 경질됐다. 그리고 후안 안토니오 피치가 새 감독으로 이번 러시아월드컵에 나섰다. 하지만 그렇게 바뀐 피치는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0 대 5로 치욕적인 대패를 당했다.
   
   
   독이 든 위험한 자리 월드컵 감독
   
   월드컵에서 감독이 경질되는 가장 많은 이유는 성적 부진이다.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 감독조차 1998년 월드컵에서 하석주의 백태클 퇴장으로 멕시코에 1-3 역전패를 당한 데 이어 네덜란드에 0-5로 대패를 당하자 불명예 퇴진해야 했다.
   
   단순히 성적만으로 대표팀 감독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당시 만 39세의 신예감독이었던 세바스티앙 라자로니를 보자. 그는 50년 만에 브라질을 코파아메리카에서 우승시키며 주가를 높였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까지 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수비적인 축구를 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경질 수순을 밟았다. 그의 감독 커리어는 이후 빠르게 추락하며 감독으로서 그의 모습이 사라져버렸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슬라볼리유프 무슬린은 세르비아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세르게이 밀린코비치 사비치 등의 일부 선수를 외면하며 수비 축구를 한다는 이유로 세르비아 축구협회와 불편한 관계를 이어갔다. 결국 월드컵을 앞두고 경질됐고, 그의 밑에서 코치를 하던 믈라덴 크르슈타이치에게 세르비아 대표팀 감독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번 월드컵에선 독특한 이유로 경질된 감독도 있다. 바로 스페인 감독이던 훌렌 로페테기가 주인공이다. 유로 2016이 끝나고 스페인 지휘봉을 잡은 로페테기는 A매치 20경기 무패(14승6무)를 달리며 잘나가던 감독이다.
   
   하지만 로페테기는 월드컵 개막을 불과 하루 앞두고 경질됐다. 스페인축구협회와 2020년까지 연장 계약을 체결한 지 단 3주 뒤 레알 마드리드와 감독 계약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스페인축구협회는 그가 계약한 사실을 발표 직전에야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스페인축구협회가 괘씸죄를 적용해 월드컵 하루 전 로페테기를 내쳤다.
   
   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명예와 영광이 함께하는 화려한 자리인 동시에 치명적인 독이 담긴 위험한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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