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홈쇼핑 군산CC전북오픈에서 우승한 고석완 선수(오른쪽)와 캐디 여채현. ⓒphoto KPGA
NS홈쇼핑 군산CC전북오픈에서 우승한 고석완 선수(오른쪽)와 캐디 여채현. ⓒphoto KPGA

“이번주 시합 내내 실수가 적었다. 옆에서 마인드 컨트롤을 해준 캐디 누나 덕이 가장 크다. 내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콧수염에 턱수염까지 황소도 때려잡게 생긴 사내가 막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캐디 누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7월 8일 전북 군산CC에서 막을 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NS홈쇼핑 군산CC전북오픈. 연장 접전 끝에 우승한 고석완(24)이 캐디인 여채현(26)을 은인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고 두 사람 다 박수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많이 받고도 돌아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세상 인심 아닌가. 게다가 어떤 조언을 들었더라도 결국 플레이는 선수의 몫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고석완은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공식석상에서, 만인 앞에서 고마움을 이야기했다. 멋진 청년이었다.

그는 캐나다 동포로 골퍼로 성공하겠다며 지난해 KPGA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거쳐 올해 데뷔한 신인이다. 모국에서 코리안드림을 이룬 것이다.

고석완의 캐디 누나 예찬은 끝이 없었다. “멘털이나 클럽 선택, 코스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조언을 해주는데 엄청 큰 힘이 된다. 누나는 항상 내가 내 골프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감을 북돋아준다. 이곳 그린은 헷갈리는 라인이 많다. 캐디 누나가 잘 읽어줬기 때문에 그린 위에서 실수가 없었던 것 같다.”

둘은 한 달 반 전 인연을 맺어 이번이 세 번째 경기였다.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또한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었다. 여채현은 대전 출신으로 주니어 시절 김세영, 장하나와 ‘비거리 대결’을 벌이던 유망주였다. 미국에서 최다언더파 기록을 세운 김세영처럼 태권도 3단에 운동신경이 뛰어났다. 키도 167㎝로 훤칠했다. 드라이버샷과 아이언샷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린에만 가면 심장이 오그라들었다”고 한다. 퍼팅 라인은 귀신처럼 잘 읽는데 스트로크가 제대로 안 됐다.

프로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해 1년 가까이 쉬기도 했지만 필드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KLPGA 2·3부 투어에서 200경기를 뛰고도 우승은 고사하고 10등 안에 든 게 딱 한 번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4년 전 캐디가 없다며 도와달라던 김우현과 처음 나간 대회에서 우승한 게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었다. 송영한과도 일본에서 준우승을 3차례 함께했다.

캐디로 일한 고작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한국 투어 10경기, 일본 투어 8경기, 유럽 투어 1경기 등 19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우승 2차례, 준우승 3차례를 포함해 ‘톱10’ 7차례를 함께했다. ‘미다스의 손’이 따로 없다. 캐디는 지리학자이자 코미디언이자, 짐 싣는 노새이자 동시에 친구인 존재라고 한다. 짐 싣는 노새라는 표현이 지나칠 수 있지만 선수와 캐디의 관계가 고작 그런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다.

여채현에게 선수와 캐디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이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만의 주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수와 캐디가 공동 주연일 수 있다. 그럴 때 하나보다 더 강한 둘의 힘이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채현과 고석완이 보여주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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