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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3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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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물] ‘갓항서’는 베트남 축구를 어떻게 바꿨나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 지난 8월 29일 열린 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에서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이끈 박항서 감독이 장난치듯 다가온 손흥민을 격려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스즈키컵’이란 축구대회가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 등이 참가하는 동남아시아의 월드컵이다. 우리 입장에선 시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스즈키컵의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축구 인기가 드높은 동남아의 맹주를 가리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 사랑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베트남 팬들은 스즈키컵 얘기만 나오면 기가 죽는다. 이 대회의 최다 우승팀은 태국(5회). 그 뒤를 싱가포르(4회)가 따른다. 반면 베트남은 2008년 한 번밖에 우승하지 못했다. 나름 태국과 함께 동남아 축구를 양분한다고 믿는 베트남 팬들로선 자존심 상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2016년 대회에서도 베트남은 4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패했다.
   
   ‘시게임(SEA Games)’이란 대회도 있다. 아시안게임의 동남아시아 버전으로 역시 2년마다 열린다. 이 대회 축구 종목에서도 베트남은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다. 태국이 16회 우승컵을 드는 동안 베트남은 한 번도 정상에 서지 못했다. 태국과 베트남은 시게임 결승에서 5번을 만났는데 모두 태국이 이겼다. 이쯤 되면 태국에 기가 죽을 만하다. 베트남은 가장 최근에 열린 작년 8월 대회에선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맛봤다.
   
   
   베트남 축구의 대변신
   
   불과 1년여 전 동남아시아에서도 이류 취급을 받았던 베트남 축구 팬들에게 지금은 믿기지 않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지난 1월 베트남은 AFC(아시아축구연맹) U—23(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결승전이 열린 날엔 그라운드에 폭설이 몰아쳤다. 태어나 처음으로 눈을 맞아본 베트남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하며 뛰었지만 연장 접전 끝에 0 대 1로 아쉽게 패했다.
   
   그래도 놀라운 성적이었다. 베트남이 동남아시아가 아닌 아시아 무대에서 한국·일본·이란 등의 전통 강호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다. 베트남 전역은 축구 광풍에 휩싸였다. 경기가 끝날 때면 하노이와 호찌민 등 대도시 도심은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흔들며 경적을 울리는 오토바이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일부 팬은 버스 위에 올라가 격렬하게 환호했다. 거리 곳곳에선 폭죽이 터졌다. 마치 2002 한·일월드컵 때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7개월 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베트남은 지난 1월 대회의 준우승이 ‘반짝 성적’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수비부터 공격까지 모든 선수들이 쉴 새 없이 뛰면서 잘 짜인 조직력을 선보였다.
   
   베트남은 조별리그에서 성인 대표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을 꺾었다. 16강전에선 바레인, 8강전에서는 시리아를 각각 1 대 0으로 물리치면서 아시안게임 사상 최초 8강과 4강 진출을 이뤄냈다.
   
   준결승전에서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정상급 공격수 손흥민이 버틴 한국을 만났다. 경기 초반 주눅이 든 탓인지 쉽게 실점을 허용한 베트남은 후반전 중반 이후 공격이 살아나며 한국을 괴롭혔다. 후반 25분엔 쩐민 브엉이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골망을 갈랐다. 1 대 3 패배. 아쉽지만 베트남 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준 한 판이었다.
   
   베트남 축구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베트남은 9월 1일 UAE와 아시안게임 3·4위전을 치른다. 사상 첫 아시안게임 메달에 도전하는 경기다.
   
   동남아시아에서도 기를 못 폈던 베트남은 지난 AFC 챔피언십과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아시아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확인했다. 베트남 팬들은 태국과 싱가포르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견주어 “우린 이제 너희와 노는 물이 달라”라고 큰소리칠 만한 정도가 됐다. 지난 1년간 베트남 축구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베트남을 설득하다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동남아시아의 종합대회 시게임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란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베트남축구협회는 새로운 감독을 구했다. 당시 내셔널리그(3부 리그) 창원시청을 맡고 있던 박항서(59) 감독도 지원서를 냈다.
   
   박항서 감독. 대부분의 축구 팬들은 2002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던 그의 모습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대표팀 훈련장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반바지를 입고 선수들과 함께 뒹굴던 키 작고 머리숱 적은 코치. 황선홍이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리고 달려가 덥석 안긴 이 말이다.
   
   박항서 감독에 대한 기억이 2002년에 멈춰 있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는 이후 K리그 사령탑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경남FC와 전남 드래곤즈 등 재정이 그리 넉넉지 않은 구단에서 K리그 4위(경남·2007년), FA컵 준우승(전남·2010년) 등의 성과를 거뒀다. 상무 사령탑으로도 네 시즌을 보냈다. 2017시즌부터는 3부 리그의 창원시청을 맡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지휘했던 이가 3부 리그 감독이라니, 냉정히 말해 그는 지도자 인생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도 주저앉아 있기엔 가슴속 열망이 컸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감독직을 지도자로서 마지막 꿈을 펼칠 기회라 봤다. 그는 베트남 축구협회 면접장에서 “잘 봐라. 나는 키가 작다. 하지만 현역 시절 빠르고 부지런하게 뛰며 태극 마크까지 달았다. 베트남 선수들도 작지 않은가. 그들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축구를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박항서는 베트남 대표팀을 맡게 됐다.
   
   많은 베트남 축구 팬들이 그 결정에 반발했다. 앞서 두 명의 일본인 감독 선임이 실패로 끝난 상황에서 팬들은 유럽 감독을 원했다. 일부 팬들은 “한국 3부 리그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기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난했다. 박 감독은 조제 모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별명인 ‘스페셜 원(special one·특별한 자)’에 빗댄 ‘슬리핑 원(sleeping one·조는 자)’이란 조롱도 들었다. 상무 사령탑 시절 벤치에서 조는 듯한 모습이 인터넷에 퍼진 탓이었다.
   
   
   마사지도 직접
   
   수많은 비난 여론을 뒤로하고 지휘봉을 잡은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의 체력부터 체크했다. 그는 부임 당시 베트남 축구 관계자들로부터 “우리 선수들은 체격이 작고 체력이 약해서 축구를 잘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협회에 체력 자료를 달라고 하니 선수 개인별 데이터는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접 체크해본 결과 선수들의 체력은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다. 박 감독은 그 편견을 깨보기로 했다. 이는 2002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내린 처방과 비슷했다. 히딩크 감독은 ‘체력과 정신력은 좋은데 기술이 약하다’는 한국 축구계의 오래된 선입견을 깼다. 오히려 ‘기술이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이 문제’라고 봤다. 히딩크의 조련 아래 한국은 월드컵에서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 축구로 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적 강호를 물리치고 ‘4강 신화’를 썼다.
   
   박 감독도 ‘베트남은 체력이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공격적이고 발 빠른 축구 만들기에 돌입했다. 작은 체격은 거꾸로 뒤집어보면 그만큼 스피드와 기동력이 뛰어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박 감독은 스리백(중앙 수비수를 세 명 두는 전술)으로 중앙을 두껍게 하고 측면 공격과 미드필드엔 민첩한 선수들을 배치해 스피드를 살렸다. 그는 조직력을 극대화한 전술을 가르치면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질 이유가 없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베트남 문화도 꼼꼼히 들여다봤다. 베트남은 무더운 날씨 때문에 오전 6시면 하루가 시작된다. 박 감독은 아침 일찍 훈련하고 낮잠을 자는 베트남 선수들의 생활 패턴을 존중하면서도 체력 보강을 위해 아침에 쌀국수 대신 고기와 우유, 두부 등 고단백 음식을 먹도록 했다. 몸이 대체로 말라 상체 근력이 약한 부분은 매일 저녁 상체 근육 위주의 코어 트레이닝으로 보완했다.
   
   대표팀 분위기도 다잡았다. 박 감독이 보니 베트남 선수들은 식사 시간에도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각자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한 팀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식사 시간엔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는 규칙을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서로 얘기가 많아지고 선수들은 똘똘 뭉치게 됐다.
   
   성과는 생각보다 일찍 나타났다. 지난 1월 AFC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은 8강과 4강전에서 거듭 연장전을 치렀다. 예전 같았으면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체력이 뚝 떨어졌을 베트남 선수들은 끝까지 버텨내며 승부차기 승리를 일궈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조직력이 더욱 탄탄해졌다. 준결승전에서 한국을 만나기 전까지 베트남은 5경기에서 8득점 무실점의 탁월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대회 기간 마사지 기계로 선수의 발을 정성스럽게 문지르는 장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베트남 전역에 퍼지면서 박 감독의 인기는 더욱 치솟았다.
   
   한국과 맞붙은 지난 8월 29일, 경기 전 애국가가 나오자 가슴에 손을 얹어 조국에 예의를 갖춘 박 감독은 경기에 들어가자 베트남 축구의 매서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듯 열정적인 지시를 내렸다. 비록 한국의 벽엔 막혔지만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베트남 축구 역사를 통째로 다시 쓰며 국민 영웅으로 등극했다.
   
▲ 베트남의 영웅이 된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photo 뉴시스

   박항서 매직은 계속된다
   
   박항서 감독은 이제 베트남 TV만 틀면 나올 정도의 유명 인사가 됐다. 현재 그는 베트남에서 가장 사랑받는 광고모델 중 하나다. 최근 베트남에선 자신이 광고하는 자양강장제 이름인 ‘박카스’로도 불린다.
   
   아시안게임 기간 대도시 제과점에선 박 감독의 얼굴을 그려 넣은 케이크를 팔고, 팬들은 ‘사랑해요 박항서’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다니고 있다. 박 감독의 대형 입간판이 있는 곳은 너도나도 즐겨 찾는 인기 촬영 장소다. 박 감독이 시리아와 8강전이 끝나고 “우리는 베트남”이라고 외친 구호는 순식간에 온 국민의 유행어가 됐다.
   
   한국 교민들과 관광객들도 덩달아 득을 봤다. 택시기사들이 한국인에겐 요금을 할인해주고 식당에선 추가 메뉴 서비스를 해주는 일이 흔해졌다. 이만큼 피부로 와 닿는 ‘한류’가 있었을까.
   
   베트남에서 꽃길을 걷는 박항서 감독은 “또래들은 은퇴할 나이에 나를 알아봐준 곳을 찾았다”며 “사랑받는 만큼 돌려드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번이 축구 인생에서 마지막이란 각오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2018년은 여전히 숨가쁘다. 11~12월엔 베트남이 그토록 우승을 원하는 스즈키컵이 열린다. 베트남 전역이 또 한 번 들썩일 대회다.
   
   내년 1월엔 UAE에서 아시안컵이 펼쳐진다. 박항서 감독의 지도 아래 ‘탈(脫)동남아’에 성공한 베트남 축구가 아시안컵 무대에서도 다시 한 번 빛을 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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