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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7호]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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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학수의 all that golf] 김애숙 프로

3년병, 5년병 거치고 나면 일본이 보이죠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 왼쪽이 김애숙 프로, 오른쪽은 신지애 프로. 지난 9월 9일 일본 메이저대회인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 함께 찍은 모습.
일본에서 활약하는 신지애를 최근 만나 ‘롤 모델’이 누구인지 물었더니 “김애숙 프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에이전트사 대표여서 의례적인 답일까 싶었는데, 신지애는 “골프와 인생의 조화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일본 생활 34년째인 김애숙(55)은 우연하게 골프를 시작해 다시 드문 기회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애숙은 육상 투포환 선수 출신이다. 정의여중 시절 한국 기록을 세웠고 서울체고에 진학했다. 당시 몸무게가 90㎏이었다고 한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교장선생님이 “우리 학교에는 거의 모든 종목이 다 있는데 골프는 없다. 외국에서는 활성화돼 있는 스포츠다. 마침 서울CC에서 운동했던 선수를 키우고 싶다는 요청이 왔으니 한번 가보라”고 했다. 1년 반 뒤에는 일본 야이타CC에서 근성 있는 한국 선수를 키워보고 싶다며 테스트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육사 태릉 골프장에서 유망주 대상으로 공개 테스트가 열렸다. 일본 신문과 잡지 16개사에서 기자 20여명이 찾아왔다. 비거리가 월등했던 그가 잠재력이 있다며 뽑혔다.
   
   1985년 2월 7일 야이타CC에 도착했고, 불과 2개월 뒤인 4월 프로테스트에 합격했다. 고(故) 구옥희 프로가 일본 무대에 선 지 2년 뒤였다. 일본 생활은 외로웠고 서러움으로 시작됐다. “티잉 그라운드에 김치 냄새 나니 올라오지 말라는 선배들도 있었다. 화장실 가서 울고 다시 티잉 그라운드로 올라갔다. 당시로선 지금 같은 한류(韓流)가 생기고 한국 선수들이 대접받으며 선수생활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이보미가 일본의 골프 아이돌이 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따뜻하고 존경할 만한 일본 사람들도 많았다. 그는 평생의 스승을 스물세 살에 만났다. 일본 투어에서 19승을 거둔 스즈키 노리오 프로다. 아이언 샷의 달인인데 인생 목표를 정확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일이 있다. 네가 일본에 왔을 때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위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언제나 한·일 교류에 힘쓰는 사람으로 남아주기 바란다.”
   
   그는 1998년 거둔 1승이 우승 경력의 전부다. 수없이 톱10에 들면서도 마지막 날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쓰라렸지만 책도 많이 읽게 되고 다른 선수들 마음을 헤아리게 됐다”고 했다. 2006년 현역은퇴를 한 후 신현주, 신지애 등의 일본 진출을 도우면서 선수 에이전트와 레슨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선수들 상당수가 그를 통해 일본과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게 ‘3년병’과 ‘5년병’이었다. 3년병은 일본어를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 사람들 말이 달콤하게 들리면서 주변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에서 5년 정도 살면 안정을 원하게 되고 도전하는 자세를 잃게 된다. 그는 일본에서 뛰더라도 US오픈이나 브리티시오픈 같은 최고 수준의 대회에 도전하도록 권한다. 큰물에서 싸워봐야 야성이 살아난다는 이유에서다.
   
   “골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죠. 고립되고 결국 우울증으로 연결돼요. 친구와 이웃, 그리고 고마운 분들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골프도 잘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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