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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5호] 201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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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600억’ 수퍼스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장민석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jordantic@chosun.com 2019-04-30

▲ 지난 1월 22일 아시안컵 한국·바레인 16강전에 출전한 손흥민. photo 연합
지금까지 아시아에 이런 축구선수는 없었다.
   
   ‘손세이셔널’ 손흥민(토트넘) 얘기다. 올 시즌 기록부터 살펴보자.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정규 리그)에서 12골,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4골, 카라바오컵 3골, FA컵에서 1골을 터뜨려 도합 20골을 기록 중이다. 2016~2017시즌 21골로 유럽 무대를 밟은 역대 한국 선수 중 한 시즌 최다득점 기록(종전 19골·차범근)을 세운 그가 또 한 번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손흥민이 그동안 유럽 무대에서 이룬 성취는 눈부시다. 2016년 9월 프리미어리그에서 4골 1도움을 올려 아시아 최초로 ‘이달의 선수상’을 받은 손흥민은 2017년 4월에도 5골 1도움으로 두 번째 상을 받았다. 프리미어리그 아시아 선수 통산 최다득점(42골)의 주인공이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많은 골(12골)을 넣었다.
   
   현재 유럽 5대 리그(잉글랜드·스페인·독일·이탈리아·프랑스)를 살펴봐도 각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아시아 선수는 손흥민이 유일하다. 유럽 무대 통산 116골로 차범근 전 감독이 보유한 유럽 통산 한국인 최다 골(121골) 경신도 시간문제다. 손흥민의 나이, 이제 스물일곱이다.
   
   손흥민의 맹활약이 계속되자 많은 축구 팬들이 “손흥민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며 신이 났다. 자연히 차범근과 박지성, 손흥민 중 누가 역대 최고의 한국 선수냐는 논쟁에도 더욱 불이 붙었다.
   
   셋은 누가 뭐래도 한국 축구의 레전드다. 차범근 전 감독은 누구도 유럽으로 갈 생각을 못하던 때에 과감히 분데스리가에 도전장을 던져 찬란한 업적을 쌓은 개척자다. 1980년대 분데스리가에서 최고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면서 UEFA컵 우승 트로피도 두 번 들었다. A매치 136경기에서 58골을 넣어 한국 국가대표 최다 출전, 최다 득점의 기록도 가지고 있다.
   
   
   “역대 아시아 최고 선수”
   
   박지성은 월드컵과 챔피언스리그의 사나이다. 스물한 살 때 히딩크호의 주역으로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의 영광을 함께했고, 2010년엔 대한민국의 캡틴으로 남아공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을 이끌었다.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남겼다. 2005년 ‘언더독’ PSV에인트호번의 에이스로 팀을 4강으로 이끈 박지성은 맨유 유니폼을 입고는 2009년 아시아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았다. 2년 뒤엔 결승전에서 풀타임을 소화한 첫 아시아 선수가 됐다.
   
   우선 박지성과 손흥민의 비교는 축구계 가장 뜨거운 이슈다. 두 선수의 나이 차가 11살밖에 되지 않아 둘의 활약상을 모두 지켜본 팬들이 많기 때문이다. 둘은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함께 뛰었다. ‘방장’ 박지성은 그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방졸’ 손흥민은 이후 국가대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있다.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 기록에선 이미 박지성을 넘은 지 오래다. 물론 박지성이 현역 시절 수비적인 임무를 많이 수행한 반면 손흥민은 골을 노리는 포지션이라 득점이나 어시스트 등의 수치로 직접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박지성이 맨유라는 당대 최고 클럽에서 조연에 가까운 역할을 소화한 것과 달리 손흥민은 빅클럽이 아닌 토트넘에서 주 득점원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점수를 더 줄 수 있다. 특히 손흥민은 올 시즌 핵심 공격수 해리 케인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시간이 많은 가운데 토트넘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챔피언스리그와 월드컵이 남았다. 챔피언스리그 경력에서 박지성에게 크게 밀리는 손흥민은 올 시즌 그 격차를 좁히고 있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전 두 경기에서 3 골을 몰아치며 유럽에서 가장 비싼 구단으로 통하는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손흥민의 맹활약 속에 토트넘은 57년 만에 챔피언스리그 4강 무대를 밟았다. 만약 손흥민이 결승까지 진출해 맹활약한다면 단숨에 챔피언스리그 역사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남긴 한국인 선수로 기록될 수 있다.
   
   월드컵은 냉정하게 손흥민이 박지성을 넘기 어려운 무대다. 2002년 4강 신화는 현실적으로 다시 이루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흥민은 지난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서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전력 질주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완성했다. 월드컵 통산 3골로 박지성·안정환과 동률인 손흥민은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인 월드컵 최다 득점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차범근과 손흥민을 놓고 보면 현재로선 차범근이 조금 앞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손흥민은 무서운 속도로 대선배의 기록을 따라잡고 있다. 차범근 전 감독은 이에 대해 “손흥민은 이미 나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차범근과 손흥민 중 누가 더 뛰어난가’를 물어본 결과 51.5%가 손흥민, 30.5%가 차범근을 지지했다.
   
   국내 팬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이 외신들은 명쾌한 답변을 이미 내놓았다. 영국 BBC는 지난 2월 ‘뉴스 라운드’ 코너에서 “손흥민은 역대 아시아 선수 중 최고”라며 “손흥민에 앞서 유럽에서 성공한 몇몇 아시아 선수들이 있었지만 누구도 손흥민의 레벨은 아니었다”고 평했다. ESPN은 “손흥민은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로 등극했다.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선수 생활을 마감할 가능성이 큰 손흥민이 이번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한다면 올해 당장 그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작년 중국 프로축구 수퍼리그에서 득점왕(27골)을 차지한 뒤 호기롭게 스페인으로 건너간 중국 국가대표 공격수 우레이(에스파뇰)가 올 시즌 12경기 2골에 그치고 있는 걸 봐도 손흥민의 남다른 레벨을 알 수 있다. 최근 “우리도 손흥민 같은 수퍼스타가 나와야 한다”는 일본 언론의 한탄도 늘고 있다.
   
   
▲ ※ 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가 매긴 최대 예상 이적료.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1억유로 돌파.

   ‘홈스쿨링’으로 탄생한 양발 킬러
   
   손흥민은 ‘아시아의 별’을 넘어 ‘월드클래스’로 진화하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두 번 차지한 명장 조제 모리뉴 전 맨유 감독은 “어느 그 누구도 손흥민보다 빠르게 공격할 순 없다”며 “그는 아주 위협적인 공격수”라고 칭찬했다. BBC는 손흥민에 대해 “지칠 줄 모르고 이타적이면서도 골 결정력과 책임감을 가진, 현대 축구의 이상적인 공격수”라고 설명했다. ‘월드스타’답게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220만명이다.
   
   세계 축구계가 가장 놀라는 것은 손흥민의 탁월한 양발 능력이다. 보통 유럽과 남미 선수들은 잘 쓰는 발을 집중적으로 연마해 무기로 삼는다. 대표적인 경우가 ‘왼발의 스페셜리스트’로 통하는 리오넬 메시다. 하지만 손흥민의 득점 장면을 보면 오른발과 왼발 슈팅이 거의 5 대 5 비율로 비슷하다.
   
   도저히 골이 터지지 않을 것 같은 사각지대에서도 골이 나온다. 신기한 것은 이런 ‘손흥민 존’이 페널티 지역 양쪽에 다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왼발 오른발을 모두 잘 쓰는 ‘양발잡이’라 가능한 일이다. 이런 능력은 그의 성장기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손흥민은 ‘홈스쿨링’으로 축구를 배웠다. 1987년 국가대표를 지낸 아버지 손웅정(57)씨는 승패에 매몰된 한국의 학원 축구 시스템이 싫다며 아들을 직접 가르쳤다. 부자(父子)는 ‘이기는 요령을 가르치는 학교 축구’보다 기본기를 철저하게 다지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손흥민은 7세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7년간 학교 축구부에 들어가지 않고 아버지와 훈련했다.
   
   손웅정씨의 지도 철학은 연령별로 배워야 할 축구의 기본기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초등학교 3~4학년 때 슈팅이나 킥을 많이 연습할 경우엔 근육에 무리가 간다고 생각했다. 대신 패스를 하는 방법과 공을 잡고 돌아서는 움직임 등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어느 정도 몸이 성장한 후엔 집중적으로 슈팅 훈련을 했다. 손웅정씨는 특히 손흥민에게 페널티박스 중앙과 모서리에서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하루 1000개 넘는 슈팅을 때리게 하며 감각을 익히게 했다. 이 훈련으로 일명 ‘손흥민 존’으로 통하는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왼발이나 오른발로 감아차 골망을 흔드는 손흥민의 주특기가 완성됐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에 진출해서도 시간이 날 때면 하루 300개 이상 슈팅 훈련을 잊지 않았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지낸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손흥민의 성공 사례를 보듯 연령별로 해야 할 훈련이 따로 있지만, 결과가 중요한 한국 학원 축구 지도자들은 당장 대회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어린 선수들에게 지구력 위주로 훈련을 시킨다”며 “그 결과 필요한 시기에 민첩성과 유연성, 스피드를 기르지 못하게 된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축구를 보는 눈을 키워야 할 시기를 놓쳐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함부르크 조기 유학으로 3개월밖에 다니지 않은 동북고 시절 손흥민의 별명은 ‘총알’이었다. 그의 뛰어난 스프린트 능력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게 한 원동력이다. 공을 툭 쳐놓고 달리는 일명 ‘치달’은 손흥민의 또 다른 전매특허다. 과거 토트넘 시절 무시무시한 스피드로 상대 수비수를 압도했던 가레스 베일(30·레알 마드리드)을 연상시킨다.
   
   2012~2013시즌 이미 분데스리가에서 두 자릿수 득점(12골)을 할 만큼 결정력을 인정받은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축구를 한창 배우던 시절 아버지에게 개인교습을 받느라 동료들과 팀플레이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던 탓인지 볼이 없을 때 움직임, 즉 ‘오프 더 볼 무브먼트(Off the ball movement)’가 약했다. 공이 없는 곳에서도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며 공간을 창출했던 박지성과 자연스레 비교가 됐다.
   
   이는 특히 손흥민의 토트넘 첫해인 2015~2016시즌에 두드러졌다. 공을 쫓다가 동료와 동선(動線)이 겹치고, 수비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움직임 없이 고립되는 모습이 잦았다. 하지만 어느덧 프리미어리그 4년 차가 된 그는 볼 없는 움직임도 크게 좋아지며 공격수로서 ‘완전체’에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엔 절묘하게 상대 오프사이드 함정을 뚫고 들어가는 움직임을 자주 선보인다.
   
   
   광고계를 휩쓰는 ‘수퍼 인싸’
   
   손흥민의 경쟁력은 공을 다루는 능력에만 있지 않다. 그의 또 다른 무기는 뛰어난 외국어 능력이다. 16세 때 일찌감치 독일로 축구 유학을 간 손흥민은 분데스리가에서 뛰던 시절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무리 없이 소화할 만큼 유창한 독일어로 화제를 모았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에 처음 갔을 땐 아시아에서 온 선수라 경계심을 보이던 동료들이 독일어로 말을 거니 잘 챙겨주더라”며 “축구선수에게 외국어 능력은 슈팅과 패스만큼 중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무대로 넘어와선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고 있다. 최근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동료들에게 공을 돌리며 팀을 강조하는 손흥민의 영어 인터뷰가 현지 팬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토트넘에서 손흥민은 ‘인싸(insider의 줄임말)’로 통한다. ‘인싸’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뜻하는 속어다. 그동안 축구계의 변방에서 온 아시아 선수는 유럽 축구 문화에서 대부분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이탈리아 클럽 AC페루자에서 뛰었던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관중뿐만 아니라 선수에게도 인종차별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흥민은 뛰어난 실력과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경기장 안팎에서 분위기를 주도한다. 잉글랜드 대표팀 주축인 해리 케인과 델리 알리는 경기 전에 손흥민과 골 세리머니를 미리 맞춰놓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손흥민은 최근 한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을 촬영하러 온 배우 박서준과 찍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배우 류준열과는 ‘절친’으로 유명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과거 해외 무대에서 뛰던 코리안 리거들의 경우 맨유의 레전드 미드필더 폴 스콜스처럼 오직 축구밖에 모르는 ‘몽크(수도승)’형 선수가 많았다면, 최근엔 손흥민처럼 로커룸 안팎에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외향적 선수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때 ‘피겨 여왕’ 김연아가 그랬듯 이제는 TV만 틀면 손흥민이 나온다. ‘샴푸로 머리를 개운하게 감은 손흥민이 면도를 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흐뭇해한다. 멋진 손목시계를 찬 그는 한국에 있는 친구와 5G 영상 통화를 한 뒤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을 나서 은행에 잠깐 들른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아픈 부위에 소염진통제를 바르고 나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춤을 춘다.’
   
   최근 손흥민이 나오는 광고 장면으로 만들어본 그의 하루다. 현재 그가 출연 중인 광고만 8개. 손흥민이 댄스 실력을 뽐내는 한 아이스크림 광고 동영상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 바야흐로 지금은 손흥민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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