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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7호] 2019.12.16

‘손나우두’ 최전성기 언제까지?

이태동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2019-12-13 오전 11:50:41

▲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소속 손흥민이 지난 12월 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번리와의 16라운드 전반, 팀의 세 번째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손흥민의 잠재력을 믿는다. 2~3년 후 아시아를 넘어 유럽 최고 측면 공격수가 될 거라고 본다.”
   
   2016년 3월 한국 축구 레전드로 꼽히는 이영표(42) 축구 해설위원은 태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후배 손흥민(27)의 미래를 이렇게 예언했다. 한국-태국전 중계를 위해 태국에 갔다가 손흥민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난 참이었다. 손흥민은 스피드와 뛰어난 슛 기술, 골 결정력이란 확실한 장점을 갖췄기 때문에 적응만 하면 진가를 나타낼 것이란 의견이었다.
   
   당시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해 힘겨운 첫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이 위원의 발언 시점까지 2015~2016 시즌 정규 리그에선 21경기에 출전해 2골밖에 없었고, 유럽 대항전인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에서 기록한 3골(7경기)까지 합쳐도 득점이 5골에 불과했다. 동료들과 호흡은 맞지 않았고 후보로 밀려 후반 막판 교체 출전하는 일이 늘었다. 경기 종료 직전 ‘시간 지연용’으로 투입되는 굴욕도 겪었다. 당시 손흥민은 한 시즌 만에 분데스리가로 복귀할 계획을 세웠을 만큼 괴로워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이영표 위원의 예측을 접한 당시 국내 축구팬들은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인터넷 댓글 대부분이 ‘손흥민은 2~3년 뒤에 유럽이 아니라 군대 간다’ ‘톱클래스가 되려면 미친 듯 노력해야 할 것’ 같은 식이었다. 이 위원의 말이 실제로 이뤄질 거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그저 이 위원이 국가대표이자 토트넘 선배로서 애정 넘치게 립서비스를 했다고 여길 뿐이었다.
   
   이후 3년이 지나 2019년 12월, 손흥민은 정말 유럽 톱클래스 공격수가 됐다. 이적 시장 전문 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손흥민의 이번 달 시장가치는 7200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1120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공동 10위에 해당하는 몸값이다. 12월 10일 국제축구연맹(FIFA) 산하 국제스포츠연구센터(CIES) 분석 결과, 손흥민은 유럽 35개 프로축구리그 소속 선수 중 경기력 지표 17위에 오르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 주전 공격수 카림 벤제마(프랑스·23위), 유벤투스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25위)를 기량으로 제쳤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위원의 ‘유럽 최고’ 예언이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예언 적중 넘어 이젠 ‘월드클래스’로
   
   오히려 최근 기세를 보면 예언이 초과 달성되는 분위기다. 유럽을 넘어 세계 최고에 닿고 있다. 세계적인 축구감독과 축구 매체가 손흥민 앞에 ‘월드클래스’란 수식어를 붙이는 건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특히 얼마 전 손흥민이 터뜨린 초장거리 수퍼 골은 자신을 세계 축구계에 완전히 각인시키는 자기소개서와 다름없었다.
   
   지난 12월 8일이었다. 번리와 치른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홈 경기에서 손흥민은 토트넘 페널티 박스부터 상대 골문 앞까지 홀로 드리블해 골을 만들었다. 수비수가 그에게 들러붙고 태클을 연달아 걸었지만 손흥민은 스피드와 방향 전환으로 모두 뚫어냈고 골키퍼 앞에서도 스텝을 맞추며 타이밍을 빼앗은 뒤 여유 있게 득점했다. 75m를 달리는 동안 수비 7명을 무력화하고 골을 넣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1초였다.
   
   워낙 임팩트가 커서 지구촌 구석에까지 골 장면이 소개됐다. 특히 골이 나온 무대, 잉글랜드는 난리가 났다. 가디언지는 ‘기술과 기교, 의지가 결합한 장관(壯觀)’이라는 극찬을 보냈고 BBC 방송은 “올 시즌의 골에 확실히 입후보했다. 앞으로 골 영상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될 것”이라고 했다. 경기 후 토트넘은 물론 상대편인 번리까지 중계에 담기지 않은 추가 영상을 공개했다. 미국에선 골 기념 티셔츠가 판매되기도 했다. 손흥민이 ‘FIFA 푸스카스상’의 내년도 후보로 급부상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푸스카스상은 한 해 동안 가장 멋진 골을 넣은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한국이나 아시아가 아니라 역대 축구 전설들과 비교되는, 상상도 못 했던 일도 벌어졌다. 토트넘 조제 모리뉴 감독은 “손흥민의 골을 보고 호나우두(Ronaldo)가 떠올랐다. 그는 손나우두(Sonaldo·손+호나우두)였다”고 했다. 브라질의 전설적 공격수 호나우두는 FC바르셀로나 시절 하프라인부터 달려 득점한 적이 있다. 미국 CBS스포츠는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기록한 골과 비슷하다”고 했다. 당시 마라도나가 중앙선 뒤에서 시작해 수비수 6명을 제치고 넣은 골 장면은 아직까지도 ‘역대 최고’로 꼽힌다. ESPN은 현존 최고 드리블러인 바르셀로나 에이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를 소환했다.
   
   메시·마라도나·호나우두에 비견되는 한국인 축구선수가 탄생할 줄 누가 기대했을까. 요즘 축구팬들은 손흥민 덕에 하루하루가 즐겁다. 동시에 팬들은 궁금해진다. 과연 우리가 손흥민을 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일까. 손흥민이 지금보다 더 잘할 수도 있을까.
   
   
▲ 토트넘 손흥민이 지난 12월 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20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번리와의 16라운드 전반, 70여m를 단독 돌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약점 지워 완전체 도달… 현재가 최전성기”
   
   축구 전문가들은 대체로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 바로 지금이 손흥민 축구인생의 최절정기라는 것이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손흥민은 이미 지난 시즌부터 전성기에 진입했으며 더 이상 발전시킬 부분이 없다”고 했다. “기량이 더 이상 늘지 않을 거라는 의미가 아니라 공격수로서 모든 걸 갖춰서 늘 게 남아 있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위원은 “사람들은 리버풀 모하메드 살라(이집트)나 바이에른 뮌헨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폴란드)에게 더 발전해서 메시처럼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미 자기만의 특성을 가진 세계 최상위권 선수들이기에 그렇다”며 “손흥민도 마찬가지다. 그가 세계 일인자, 역대 일인자는 아닐지라도 개성을 갖춘 세계 최상위 클래스 포워드인 건 틀림없다”고 했다. 한 위원은 손흥민이 2019년 발롱도르 30인 후보에 입성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했다. 손흥민은 축구계 최고 권위 개인상인 발롱도르 올해 순위에서 22위에 올랐다. 단순 계산으로 전 포지션 합쳐 세계에서 22번째로 축구를 잘하는 선수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22위는 아시아인 역대 최고 순위다.
   
   박찬하 해설위원도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최절정기를 달리고 있다고 보는 게 맞는다. 더 발전하기보단 어떻게 오래 유지할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축구선수들은 보통 27세 전후로 정점을 찍으며 이후 서서히 기량 하락을 보이는데, 1992년 7월생인 손흥민은 지금이 딱 27세다. 박 위원은 심리적인 안정감이 현재의 손흥민을 만드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봤다. “기량이 프리미어리그 입성 초창기보다 는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그때와 달리 플레이에 여유가 넘친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재능을 100% 이상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전성기에 들어섰다”고 했다.
   
   
   ‘기술파’ 되면 롱런 가능성 크다
   
   손흥민 경기를 가장 많이 중계한 장지현 해설위원은 지금이 ‘커리어 하이’가 맞지만 발전 가능성 또한 남아 있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장 위원은 “손흥민은 초창기부터 약점이 발견되면 반드시 다음 시즌 발전해 나타났다. 새 시즌이 되면 계속 기대가 된다.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실제로 손흥민은 프로생활 내내 꾸준히 실력을 늘려온 선수다. 장기인 스피드와 슈팅 능력으로 분데스리가를 지배했다. 이게 프리미어리그에 처음 와서는 잘 통하지 않자 약점으로 지적된 오프더볼(공 없을 때) 움직임을 연마해 한 시즌 만에 적응했다. 그 결과 득점이 8골(2015~2016 시즌)에서 21골(2016~2017)로 늘었다. 21골은 한 시즌 한국인 유럽 최다 득점 신기록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안주하지 않고 볼 터치, 탈압박, 연계 등 지적받는 대부분 분야에서 기량 상승을 이뤄냈다. 2017~2018 시즌 18골, 2018~2019 시즌에도 20골을 넣은 그는 올 시즌엔 12월 10일 현재까지 10골을 기록 중이다. 토트넘 이적 후 페이스가 가장 빠르다. 도우미로도 역할을 확장해 현재 프리미어리그 어시스트 2위(7개)다.
   
   인생 황금기를 보내고 있지만 손흥민도 언젠가는 기량이 떨어지는 시점을 맞게 된다. 특히 지금이 정점이라면 이젠 하락을 준비해야 한다. 그 속도와 강도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한때 세계 축구 양대 산맥이었던 메시와 호날두를 비교해 손흥민의 미래를 예상해볼 수 있다. 34세인 호날두는 장점인 스피드와 공간 움직임 등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부상으로 빠지는 경기도 늘어 올 시즌 8골에 그친다. 반대로 애초부터 신체조건보다 기술에 의존하는 스타일인 메시는 30대 들어 활동량이 크게 떨어졌음에도 부드러운 볼 터치, 개인기 등은 크게 나빠지지 않았고 왼발킥은 오히려 더 정교해지고 있다. 최근 개인 6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한 메시는 14골로 기염을 토하고 있다.
   
   손흥민은 과거 신체·운동능력을 주로 활용했으나 최근엔 기술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패스로 경기를 조율하고, 프리킥·코너킥을 담당하며, 양발을 자유롭게 쓰는 점 등은 나이가 들어도 크게 영향받지 않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손흥민이 정상권에서 급격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또 좀처럼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 점,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아버지가 있다는 점 등도 롱런에 유리한 환경이다.
   
   
   마지막 과제, 환히 웃는 ‘국가대표 손흥민’
   
   이제 축구팬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 태극마크를 달고 환히 웃는 모습이다. 손흥민·차범근·박지성을 놓고 얘기할 때 ‘그래도 캡틴 박’을 외치는 팬들이 많은 건 국가대표 성적 때문이다.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 2010년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주역으로 남아 있다. 손흥민은 2014·2018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두 대회에서 모두 골을 터뜨렸지만 두 번 다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길게 봤을 때 손흥민에게 남은 메이저 축구대회는 2022 월드컵, 2023 아시안컵, 2026 월드컵 정도다. 2026년에 손흥민은 34세다.
   
   ‘안된다’고 했던 시선을 여러 번 뒤엎고 한계를 뛰어넘어 월드클래스에 도달한 손흥민이다. 언젠가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환희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감히 기대해보는 건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에 국가대표로서 영광까지 추가한다면 손흥민은 이견이 없는 축구 영웅으로 국민들 가슴에 영원히 남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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