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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포츠
[2631호] 2020.11.02

NC 우승 뒤에는 김택진의 파격과 ‘데이터 야구’가 있었다

배지헌  엠스플뉴스 기자 

▲ 지난 10월 24일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창단 10년 만에 프로야구 정규리그 첫 우승을 차지한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김택진 구단주를 헹가래 치고 있다. photo 연합
최근 언론에 등장하는 ‘프런트 야구’는 한국에서만 쓰는 말이다. 영화 ‘머니볼’을 다큐로 잘못 본 사람들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를 프런트 야구의 원류로 생각하지만, 정작 메이저리그에는 프런트 야구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거대 자본과 수백 명의 인력이 투입되는 프로야구 비즈니스 특성상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프런트 오피스가 야구단 운영을 주도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대 야구의 보편적인 시스템을 ‘프런트 야구’라는 프레임으로 비난하는 건, 마치 현대 국가의 정치 시스템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공격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하게 보인다. 여기엔 야구단의 주도권을 현장 감독이 가져야 한다고 믿는 구시대 야구인들의 적개심과 편견이 숨어 있다.
   
   프런트 야구와 함께 야구인들의 새로운 주적으로 떠오른 ‘데이터 야구’도 한국식으로 변질된 말이다. 올드 야구인들은 프로야구 선수 출신만이 가질 수 있는 ‘직관’과 ‘감’에 의존하는 야구를 한쪽 편에 놓고, 반대편 대척점에 ‘야구도 안 해본’ 사람들이 주도하는 데이터 야구를 놓는다. 특히 키움 히어로즈가 손혁 감독을 경질하고 전력분석원 출신 김창현 감독대행을 임명한 뒤 데이터 야구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진짜 문제는 허민 키움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의 권한 오남용인데 “데이터가 만능은 아니다”라며 엉뚱한 곳에 분노의 화살을 쏟아낸다. 일부 야구인이 보여주는 데이터에 대한 혐오는 마치 19세기 러다이트 운동을 하던 영국 공장 노동자들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실제 인간의 모든 판단과 선택이 데이터와 감을 함께 사용해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한 이분법이다.
   
   이처럼 온갖 부정적 이미지가 칠해진 프런트 야구와 데이터 야구. 하지만 2020시즌 정규리그 1위 팀 NC 다이노스는 바로 그 ‘프런트 야구’와 ‘데이터 야구’로 창단 9년 만에 첫 우승을 이뤘다. 현장과 프런트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힘을 합했을 때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성적으로 증명했다. 이동욱 NC 감독은 “프런트와 현장이 한 방향을 바라본 게 비결이다. 팀이 이겨야 감독도 구단도 존재할 수 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 게 우리 팀을 강팀으로 이끌었다”라고 밝혔다.
   
   
   기존 구단에는 없던 ‘데이터팀’의 등장
   
   NC는 창단 초기부터 기존 구단과는 차별화된 방식으로 팀을 운영했다. 모기업 낙하산 대신 공개채용으로 뽑은 사장과 직원들로 프런트를 꾸렸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기존 전력분석팀 외에 별도로 데이터 전문가들로만 구성한 데이터팀을 꾸렸다. 기존 구단보다 선수층이 취약한 신생 구단의 한계, 유망주가 넘쳐나는 서울·부산 등 대도시보다 불리한 연고지 조건을 극복하려면 남들이 찾지 못한 1%라도 찾아내서 활용해야 했다.
   
   기존 구단의 관성에서 벗어난 NC 프런트는 다른 구단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찬사를 받았다. NC가 선보인 소셜미디어(SNS) 활용, 자체 동영상 콘텐츠 제작, 기념 굿즈 등은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나 볼 수 있는 시도였다. 여기에 자극받은 다른 구단들이 NC를 따라 하고 경쟁하면서 KBO리그 전체 마케팅과 팬서비스 수준이 몰라보게 향상됐다. 스카우트 평가와 데이터를 함께 활용해 영입한 NC의 외국인 선수들은 대부분 큰 성공을 거뒀다.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찰리 쉬렉, 한국에서 6시즌 동안 활약한 에릭 해커, KBO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남은 에릭 테임즈가 대표적이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NC는 1군 진입 2년 만인 2014시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201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과 4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이란 결실을 만들었다.
   
   비록 2018시즌 주전들이 줄부상하고 감독 교체라는 악재 속에 리그 최하위로 추락했지만, NC는 이를 암흑기 시작이 아닌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일시적인 실패 때문에 구단이 추구해온 가치와 방향성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구단부터 중심을 잡고, 일사불란하게 팀 재건 작업을 진행했다. 유영준 당시 단장을 감독대행에 임명해 팀 운영의 연속성을 유지했다. 어린 유망주들에게 지속해서 기회를 주면서 다음 시즌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주로 사무실에서 일했던 데이터팀이 운동장에 나와 코치,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였다.
   
   
▲ NC 다이노스 창단 멤버인 이동욱 감독(가운데)은 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인 지도자로 구단과 철학을 공유한다. photo 뉴시스

   저반발 공인구를 데이터로 이겨내다
   
   신임 감독도 구단과 철학을 공유하는 인물로 정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 혹은 유명한 지도자 대신, 구단 창단 때부터 코치로 함께한 이동욱 감독을 임명했다. ‘파격적 선택’이란 시선도 있었지만, 구단 내부 평가는 전혀 달랐다. 이 감독은 창단 멤버로 NC 선수와 코칭스태프는 물론, NC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였다. 무엇보다 수비 코치 시절부터 데이터 활용에 적극적인 지도자라 NC가 추구하는 야구를 누구보다 잘 구현할 인물로 꼽혔다. 적어도 구단에서 사다준 짜장면 재료를 갖고 짬뽕을 만들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김종문 단장과 개인적 친분도 두터워 서로 궁합이 잘 맞았다.
   
   원래부터 NC의 강점이었던 데이터 분석·활용 능력은 데이터 친화적인 이 감독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외국인 선수 영입과 외부 FA(자유계약선수) 영입에만 활용하던 데이터를 시즌 준비 단계부터 활용했다. 전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에 태블릿PC를 지급해 언제든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볼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감독·코치·선수가 데이터팀과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NC는 지난해 KBO리그를 강타한 ‘저반발 공인구’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팀으로 통한다. 다른 팀 타자들이 뚝 떨어진 타구 비거리와 홈런 숫자에 허둥지둥할 때, NC 타자들은 홈런과 장타를 펑펑 쏟아냈다. 공인구 효과를 먼저 예상하고 캠프 때부터 현장 지도자와 데이터팀이 함께 대비책을 세운 덕분이다. NC 관계자는 “데이터팀이 새 공인구의 반발력과 그에 따른 비거리 변화 예상치를 산출했다. 타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공을 뒤에서 쳤을 때보다 앞쪽에서 쳤을 때 비거리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칭스태프가 이를 토대로 타자들과 상의해 타격 포인트를 조정하며 변화에 대비했다”고 전했다.
   
   NC가 어떻게 ‘한 팀’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또 있다. 올 시즌 우완 에이스로 떠오른 송명기가 좋은 예다. 올 시즌 초까지만 해도 송명기는 미완의 대기였다. 키 191㎝라는 좋은 신체조건에 150㎞/h에 가까운 빠른 공을 던지지만, 1군에서 중요한 상황에 쓰기엔 불안한 투수였다. 그러나 올해 6월부터 불펜에서 좋은 투구를 펼치며 1군 전력으로 자리 잡은 뒤, 7월 이후에만 혼자 8승을 따내며 NC 선발진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다.
   
   NC 관계자는 “코치님들과 선수, 데이터팀이 함께 상의해 송명기의 팔 각도를 스리쿼터에 가깝게 내리는 조정을 했다”고 전했다. 팔 각도를 내린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동욱 감독은 “팔 각도를 내리면서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해졌다. 공을 꾸준히 같은 투구폼으로 던지면서 빠른 볼과 변화구 모두 제구가 잡혔다”고 했다. 송명기는 높은 팔 각도로 공을 던질 때도 수직 방향의 백스핀보다는 사이드스핀이 많이 걸리는 특징이 있었다. 사이드스핀이 걸린 패스트볼은 백스핀이 제대로 걸린 포심 패스트볼처럼 타자 앞에서 ‘떠오르는 듯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유형의 투수는 오히려 팔 각도를 내려 횡 방향 무브먼트를 살리는 편이 효과적일 수 있다.
   
   팔 각도를 내리기 전까지 공만 빠른 투수였던 송명기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조정을 한 뒤부터 빠르고 치기 까다로운 공을 던지면서 안정적인 제구까지 갖춘 투수가 됐다. 송명기의 활약이 없었다면 NC가 1위 자리를 지키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NC 관계자는 “감독님, 코치님이 먼저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실 때도 있고 선수가 물어볼 때도 있다. 때로는 데이터팀에서 의견을 내기도 한다. 현장과 분석 파트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팀을 위해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게 우리 팀의 강점”이라고 했다.
   
   
   감독이 선장이라면 단장은 도선사
   
   현장과 프런트가 한 방향을 바라보면 일부 구단처럼 ‘현장-프런트 갈등’으로 몸살을 앓을 일도 없다. NC는 이동욱 감독 선임과 함께 자체적인 구단 운영 매뉴얼을 만들었다. 감독과 단장, 대표이사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하게 나눴다. 구단은 선수단 구성과 트레이드, 스카우트, 육성 파트를 책임진다. 꼭 필요할 때 트레이드로 1번 타자감을 데려오고(이명기 영입), 외국인 선수를 바꾸며(제이크 스몰린스키, 크리스천 프리드릭), 불펜투수를 데려오는(문경찬, 박경수) 게 구단의 몫이다. 필요할 때는 구단주가 나서서 ‘쇼핑’(양의지)도 한다. 감독은 1군 선수 기용과 작전을 책임진다. 감독의 현장 지휘권은 대표이사가 아닌 구단주도 간섭할 수 없게 했다. 구단 지분이 1도 없는 이사회 의장이 현장 감독의 결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이상한 상황을 시스템으로 방지했다. 또 KBO에 제출하는 엔트리와는 별개의 ‘다이노스 로스터’도 만들었다. 1군에서 쓸 선수와 장기적으로 키울 선수를 구분해, 감독의 선수 활용 폭을 넓히면서 체계적으로 선수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서로의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존중하는 기반 위에서, 치열한 토론과 고민이 이뤄진다. 이동욱 감독은 “나도 단장님과 싸울 때가 있다. 때로는 큰소리를 내며 싸우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현장과 프런트가 모든 사안에 100% 의견이 일치하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싸운 뒤에 뒤끝은 없다. 이 감독은 “목적지까지 가는 배에도 선장이 있고 선사, 항해사가 있다. 각자 서로의 역할이 있다. 구단과 필요한 이야기는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의견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풀었다”고 했다.
   
   1990년대 LG 트윈스 전성기를 이끈 최종준 전 단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최 전 단장은 “야구단은 커다란 배와 같다. 감독이 배의 선장이라면 단장은 도선사 역할이다. 둘이 같은 목적지를 향해 힘을 합해야 배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NC가 몇 해 전 시즌 캐치프레이즈를 ‘항해’로 정했던 이유와도 통한다. 이동욱 감독 부임 첫 시즌 NC의 캐치프레이즈는 ‘원 팀(One Team)’이었다. 프런트와 현장, 선수단 모두가 한 팀이 돼서 움직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올 시즌엔 힘을 합하면 더 강해진다는 의미로 ‘STRONG, TOGETHER’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프런트 야구’와 ‘데이터 야구’의 가장 이상적인 사례를 보여준 2020시즌 NC의 우승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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