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플래티넘 3시리즈’ 개발
8개 부서 연합으로 8개월간 소비자 분석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플래티넘 3시리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photo 현대카드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플래티넘 3시리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photo 현대카드

지난 10월 26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캐피탈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정태영 사장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공식 석상을 통해 언론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현대캐피탈과 GE가 전략적 제휴를 맺었던 2005년 8월 이후 5년여 만이다.

이날은 현대카드의 신상품 ‘플래티넘 3시리즈’(11월 8일 출시)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정 사장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처음 소개할 때와 같은 일종의 프레젠테이션 쇼를 선보이며 “2003년 카드사들이 ‘카드 대란’으로 사업을 축소할 때 현대카드는 M카드를 선보여 역발상의 좋은 예가 됐고 2004년 알파벳 시리즈를 출시하며 계속 주목을 받았다”면서 “이번에 플래티넘 3시리즈를 선보여 대중적인 상품부터 프리미엄 상품까지 완전한 상품군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대표이사로 취임한 2003년 당시 현대카드는 6300억원의 적자를 낸 업계 꼴찌였다. 이후 정 사장은 M카드, 알파벳 시리즈 등 히트상품을 출시하고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쳐 2009년 2128억원의 이익을 냈다. 현재 총 회원 수는 922만명. 고객의 카드 사용액은 평균 70만원대로 카드사 전체 평균(40만원대)보다 높고 연체율은 0.37%로 최저 수준이다.

현대카드 플래티넘 3시리즈는 M포인트를 두 배 적립해주고 자동차 구입 때 최대 200만원까지 포인트로 활용할 수 있는 M3, 학원·통신·병원·약국 등 생활형 할인서비스로 특화된 H3, 쇼핑 할인 서비스가 강점인 R3, 항공 마일리지 등 여행혜택을 강화한 T3 등 네 종류로 구성됐다.

박세훈 전무는 “현대카드는 카드사 중 최초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알파벳카드와 프리미엄 서비스로 특화된 컬러카드로 전략적인 브랜드 라인업을 구축했다”면서 “이번 플래티넘 3시리즈의 출시로 기존 브랜드 라인업에 혜택의 크기를 보여주는 숫자 라인을 더해 브랜드 포트폴리오가 더욱 견고해졌다”고 말했다.

‘플래티넘 3시리즈’개발 주역 황용택 이사 ⓒphoto 정복남 영상미디어 기자
‘플래티넘 3시리즈’개발 주역 황용택 이사 ⓒphoto 정복남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10일 현대카드 플래티넘 3시리즈 개발 주역인 황용택(45) 마케팅본부 이사를 만나기 위해 현대카드·캐피탈 본사를 다시 찾았다. 건물 로비 왼쪽에는 게이트볼장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탁구대가 있었으며 중간에는 영국의 현대미술가 줄리안 오피가 만든 2m 높이의 LED 설치 작품인 ‘사라, 워킹, 브라 앤 팬츠’가 보였다. 건물 지하에 있는 세탁소, 구두수리실, 헬스클럽, 사우나, 골프연습장, 스크린 골프장 등 임직원들을 위한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으로 올라가 황 이사를 만났다. 그는 한국외대 영어과를 나와 1991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카드에서 근무하다가 2004년 현대카드로 자리를 옮겼다. “8개 부서의 연합팀이 구성돼 8개월간 상품 개발을 했습니다. 새로운 카드 개발을 위해서는 대여섯 명이 밀실에 모여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역발상을 했습니다. 이번 카드 출시를 위해 500만명이 넘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100가지 이상의 서비스 등을 분석했습니다. 250번에 이르는 TFT(Task Force Team) 회의와 54번에 이르는 임원회의를 했습니다.”

그는 회사보다 고객 입장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개발 단계에서 고객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습니다. 일단 팔아놓고 CS(Custo mer Satisfaction·고객 만족)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불만사항을 상품개발 단계에 모두 끌어모았습니다. 그래서 CS부서, 리스크부서, 마케팅부서 등과 협력한 것입니다.”

사실 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상품은 카드회사에는 수익성이 가장 나쁜 상품일 수 있다. 그래서 카드회사는 새로운 카드 개발을 할 때 소비자가 혜택을 받을 때까지의 제한 조건을 최대한 많이 걸어둔다. “저희는 고객의 이용조건 제한을 없애자는 것이 모토였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개발한 상품의 수익성은 높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생산자 입장에서의 가장 큰 문제였죠. 해결 열쇠는 바로 고객의 성향과 카드 사용 패턴 분석이었습니다.”

현대카드는 플래티넘 3시리즈를 정식으로 내놓기 전인 지난 6월부터 T2를 가지고 테스트를 많이 했다. “T2는 다른 카드의 평균 사용액보다 많이 높았습니다. 카드당 월 평균 250만원 정도였습니까요. 다른 카드를 여러 개 쓰던 사람이 한 카드로만 몰아서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플래티넘 3시리즈의 출시는 급물살을 탔다. “시범 출시한 T2의 높은 사용액이 명분이 돼 고객에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벽을 더욱 낮추고 단순화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개의 카드 혜택을 다섯 개 이상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3~4개의 특화된 서비스를 고객 라이프스타일별로 다양하게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카드를 월 얼마 이상 사용해야 할인서비스를 하는 식의 조건이나 제한을 없애는 것에 힘썼습니다.”

‘3시리즈’라는 이름은 정태영 사장이 직접 지었다. 이를 출시하기 전 현대카드에는 알파벳 오른쪽 위에 ‘제곱’을 표기한 스퀘어 카드가 있었다. “소비자들은 이를 ‘제곱’이나 ‘스퀘어’로 읽지 않고 ‘투(two)’라고 읽더라고요. 그래서 정 사장께서 다음 버전을 ‘세제곱’ 혹은 ‘큐브’라고 하지 말고 ‘스리(three)’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름이 정해졌는데 알파벳, 컬러 마케팅에 이어 숫자 마케팅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카드의 자체 분석 결과 시장 점유율은 신한카드에 이어 2위다. 일각에서는 이를 그룹사인 현대자동차의 지원 덕분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저희 카드 전체 매출액 중에 자동차 구입은 10% 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 부분을 빼도 3위(KB카드), 4위(삼성카드)보다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서브프라임 고객이 별로 없습니다. 서브프라임 상품은 경기가 좋을 때는 수익이 좋을 수 있지만 위기가 오면 가장 타격을 많이 받게 됩니다.”

이어 황 이사에게 정태영 사장으로부터 벤치마킹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제가 사장님께 반한 점은 금융인 출신이 아닌 사람이 낸 아이디어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직원에게 주어진 일을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라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또 새로운 사업에서 실패했을 때 실무자 입장에서는 책임 추궁이 가장 두려운데 정 사장은 함께 결정한 것이라며 공동 책임을 진다고 했다.

현대카드의 구성원은 다른 카드회사와 차별화되어 있다. “임직원 중 50% 이상이 금융인 출신이 아닙니다. 호텔, 피자회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현대카드의 장점은 이 같은 개방성, 유연성입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인사제도에도 적용된다. 정태영 사장은 “직원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해 왔다. 현대카드의 독특한 인사 시스템을 보여주는 ‘커리어 마켓’은 말 그대로 ‘인력 시장’이다. 인력이 필요한 팀이 온라인 게시판에 모집 공고를 하면 원하는 직원이 자신을 ‘매물’로 내놓고 ‘마케팅’을 해 팀을 옮길 수 있다. 이 같은 제도는 시장 원리에 입각한 역동적이고 자유로운 인사 시스템이다.

현대카드의 유연성은 2관 1층 레스토랑 ‘더 박스’에 설치된 ‘통곡의 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8.2인치 LCD 모니터 60개에 민원으로 접수된 고객 불만을 여과 없이 띄운다. 정 사장이 뉴욕타임스 본사 방문에서 독자 댓글 모니터를 보고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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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호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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