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얇은 살얼음이 언 빙판 위의 팽이치기는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제대로 팽이를 치기도 어렵다. 현재의 세계경제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위험한 살얼음 위에서 힘겹게 팽이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금융위기 발생 2년, 세계 각국은 경제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경기 부양과 소비증가를 유도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돈을 풀어 유동성을 쏟아붓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인다. 유동성 확대를 위한 저금리 기조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있다. 2011년에도 이런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을 듯싶어 보인다.

2000년대 들어서며 세계 각국 경제는 커플링(coupling)이라 불리는 동조화 현상을 보여줬다. 여러 국가에서 경기의 변동과 폭이 비슷한 모양새로 나타났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동조화 현상은 깨져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경제위기에 빠져들면서 돈을 풀 여유가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 유동성의 차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재정 악화로 더 이상 유동성을 공급할 여력이 없고, 미국은 2010년 말부터 다시 돈을 풀고 있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 몇몇 국가는 물가상승 압박에 있는 돈을 거둬들여야 하는 형편이다. 자연스레 세계경제의 방향성이 지역별, 국가별로 커다란 차별화의 길을 가게 됐다. 가계 부채와 국가재정의 안정을 위해 인위적으로 부족한 자금 공급을 확대하거나 반대로 넘쳐나는 유동성을 회수할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세계 경제 불균형을 불러오고 있는 차별화는 세계 이곳저곳에서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이러한 세계경제 동조화의 파괴는 2011년 세계 각국의 경제 정책 방향 수립에 큰 차이를 나타내게 할 것이다. 미국은 지속적인 유동성 공급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려 할 것이고, 유럽 각 국가는 발등에 떨어진 불, 재정 건전화를 위해 단 한 푼의 유동성이라도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쓸 것이다. 아시아는 넘쳐나는 유동성이 불러올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속되는 저금리로 환율 관리에 비상이 걸릴 가능성도 농후하다.

문제는 아시아의 인플레이션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을 불러오거나,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는 다시 혼돈이라는 비상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금융위기의 충격을 견뎌내며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는 아시아 지역의 인플레이션은 세계경제를 향해 유동성을 쏟아내고 있는 미국 경제에 다시 강력한 충격을 줄 수 있다. 이경우 미국은 저금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리가 상승하면 유동성 회수 효과를 불러와 미국과 유럽의 소비심리를 악화시킬 것이다. 이 경우 안정을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 역시 피해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환율 강세가 나타나 수출이 위축될 것이고 금융 비용 증가로 내수 위축이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유동성이 불러올 인플레이션은 금융위기 이후 지난 2년간 풀어놓은 돈이 넘치기 시작할 올해 특히 주의 깊게 살펴야 할 문제다.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10년 말, 유가가 90달러를 넘었고 금(金) 가격도 사상 최고치다. 지금은 세계경제 역사상 가장 많은 부채와 가장 많은 돈이 동시에 풀려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맞게 될 인플레이션의 강도는 가늠조차 어렵다.

혼란스러운 세계경제 속에서 2011년 한국 경제의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단 하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다. 세계 그 어느 국가의 경제보다 탄탄하게 다져져 있는 한국 경제의 건전성이다. 어렵게 지켜온 안정된 물가 수준과 건전한 재정을 현명한 재정 운영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홍성국

대우증권 전무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대우증권 투자분석부 부장,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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