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기업]  이재용이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을 세 번이나 찾은 까닭은
  • facebook네이버 밴드youtubekakao 플러스친구
  • 검색
  1. 경제
[2182호] 2011.11.21
관련 연재물

[기업]이재용이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을 세 번이나 찾은 까닭은

류랑도  더퍼포먼스 대표컨설턴트 

▲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는 캐논코리아 안산공장 김영순 전무(왼쪽). photo 캐논코리아
경영성과 전문가인 나는 2010년 10월 어느 화창한 가을날,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위치한 1만6529㎡(5000평) 규모의 한 공장을 찾았다. 공장이라고 해서 대단히 분주하고 혼잡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주차장을 겸한 마당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컨테이너만 없다면 공장이라기보다는 연구소라고 착각할 만큼 말끔하고 조용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여전히 ‘공장’은 느껴지지 않는다.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거대한 컨베이어벨트나 기계장치가 보이지 않는다. 작업 지시를 하는 사람도 없고 기계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만 보일 뿐이다. 1년에 100만대 이상의 복합기를 수출하고 세계경제의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에 전년 대비 28.7% 증가한 53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생산현장이라는 사실이 쉬 믿기지 않았다. 1만6529㎡ 부지의 공장에서 직원 1000여명(생산인력 600여명)이 이만한 성과를 내는 제조업체가 또 있을지 궁금하다.
   
   
   리더들이 먼저 알아본 워크스마트 공장
   
   이곳은 복합기와 복사기, 프린터 등의 사무자동화기기를 생산하는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이하 캐논코리아·대표이사 김천주) 안산공장이다.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의 저력을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세계적인 기업의 리더들이었다. 삼성전자의 이재용 사장은 2004년과 2005년에 걸쳐 혁신그룹과 공장장 그룹, 사장단 그룹을 이끌고 무려 세 번이나 이곳을 찾았다. 2009년에는 ‘생산성의 상징’이라 불리는 LG전자 창원공장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해법을 찾기 위해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직접 찾아왔다. 서강대의 한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소개해야 할 기업 사례”라고 평가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과 롯데그룹 사장단도 이곳을 찾았다. 지금도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에는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작은 공장의 무엇이 세계적 기업 리더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이곳을 전 세계 캐논 거점 중에서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연구개발 권한을 가진 ‘1등 공장’으로 만든 비결이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 나는 밀착 취재를 했고 최근 ‘캐논코리아의 혁명은 포장마차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을 썼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키워드는 ‘존중’ ‘신뢰’ ‘자율’이다. 이 책은 ‘구성원의 행복지수와 기업의 성과는 비례한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한국의 창조적 열정과 일본 첨단기술의 만남
   
   캐논코리아는 1985년 한국의 롯데그룹과 일본의 캐논그룹이 50 대 50으로 출자한 합작회사다. 설립 당시의 사명은 ‘롯데캐논’이었다. 당시에는 사무자동화기기(OA기기) 생산에 관한 기술력과 노하우가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 캐논의 기술력에 의존해 제품 생산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일본에서 파견한 기술자와 전문가 10여명이 안산공장에 상주하며 한국 직원들에게 기술을 전수했다. 설립 초기에는 제품 생산, 판매 등 회사 운영에 관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본 캐논의 관리를 받아야 했다. 설립 이듬해인 1986년 1월부터 복사기와 토너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제품을 생산한 한국의 생산기지가 바로 이 책의 무대가 된 ‘안산공장’이다.
   
   캐논코리아가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89년이었다. 한국의 OA기기 시장 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짐에 따라 캐논, 신도리코, 코리아제록스 등의 해외 제휴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던 시장에 삼성, 금성, 현대 등의 국내 대기업이 뛰어들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캐논코리아는 일본의 기술력에 거의 100% 의존하던 제품을 국산화하고자 첨단기술부를 발족(1990년)하고, 부설 기술연구소를 설립(1991년)했다. 이때부터 캐논코리아는 제품 생산과 개발에 관한 일본 캐논의 지배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위기를 기회로, 한국형 생산 시스템 구축하다
   
   안산공장의 생산라인은 부품 공급과 조립, 운반, 포장이 하나의 라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다.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진다.
   
   1990년대 중반 이들에게도 존폐의 위기가 닥쳤다. 국내의 대기업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가격경쟁력과 생산성이 악화되어 일본 캐논과 합작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캐논으로부터 “차라리 문을 닫아라”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은 크게 ‘재고품 관리비용 증가’와 ‘구성원들의 업무만족도 저하’라는 두 가지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은 공간이 제한돼 있어서 주문 물량이 갑자기 늘어나도 생산라인을 증설할 수 없기 때문에 제품을 미리 만들어놓는 방법을 택했다. 당연히 재고품의 관리비용이 증가하면서 가격경쟁력에서 밀렸다. 게다가 컨베이어벨트 라인에서 생산공정의 일부 영역만 담당하는 현장 구성원들의 업무만족도가 크게 낮아지면서 생산성 역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생산책임자를 맡게 된 김영순 전무(당시 생산부장)를 비롯한 캐논코리아의 리더들은 도요타자동차에서 시도해 생산혁신의 아이콘이 된 ‘셀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한다. 셀 생산방식은 컨베이어벨트 등과 같은 생산설비에 의존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변동하는 주문 물량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작업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등의 장점을 지닌다. 그런데 갑작스레 변화를 맞게 된 현장 구성원들의 반발은 없었을까? 당시의 상황을 김영순 전무는 이렇게 회고했다.
   
   “저항이 엄청났습니다. 당시 우리 식구들은 일하는 재미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단순한 기술을 가지고 한정된 일만 해도 밥벌이를 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변화를 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일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혁신과 변화는 반드시 단행해야 할 과제였다.
   
   
   소통의 리더십, 기종장제도의 정착과 성공
   
▲ 연구소라고 착각할 만큼 말끔하고 조용한 캐논코리아 안산공장 외관.

   경영진이 생산현장에 셀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하자, 업무 범위와 책임 영역이 커지게 된 현장 구성원들의 반발이 거셌다. 이때 캐논코리아 리더들은 ‘회사가 이렇게 결정했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식으로 압박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특별히 반발이 심한 구성원 그룹에서 대표를 선정해 셀 시스템을 도입한 일본의 기업에 견학을 다녀오게 하고, 한편으로는 ‘시범 셀 라인’이라는 샘플 조직을 운영하면서 셀 시스템에서 일할 때 나타나는 변화를 구성원들이 직접 확인하게 했다. 그렇게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1998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셀 시스템을 가동했다.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은 구성원들을 ‘주인의식이 강한 직원’이 아니라 ‘진정한 주인’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이를 위해 고안해낸 시스템이 바로 기종장(CCO·Cell Company Organization)제도다. 2002년 2월부터 시행된 기종장제도는 ‘한국형 셀 시스템’이라 불리는 캐논코리아 안산공장만의 독특한 생산방식으로, 하나의 셀 조직이 부품 발주와 생산, 관리, 검사, 물류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하나의 회사로 운영되는 것이다. 기종장제도하에서 운영되는 셀 조직은 부품 발주에 관한 10억원의 결재권을 가지며, 생산량 역시 현장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조율한다. 회사가 생산현장의 구성원들에게 돈과 권한과 명예를 부여한 것이다.
   
   
   인력 증원은 2배, 생산량은 20배 증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서 셀 시스템으로 전환한 1년 뒤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인당 생산량은 1997년 대비 24% 증가했고, 제품 불량비율은 기존 수치에서 10분의 1로 떨어졌다. 업무만족도 조사에서 성취감은 43%, 보람도는 40%, 책임감은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제품을 생산할 때는 월 2000대가 한계였는데, 셀 시스템으로 전환한 뒤로는 2010년 3월에 복합기 누적 수출 300만대를 돌파했다. 그리고 10개월 만에 다시 누적 수출 400만대라는 경이적 성과를 기록했다. 수출량을 몽땅 생산량으로 환산했을 때 월평균 생산량이 10만대라는 계산이 나온다(2010년 3월~2011년 1월). 이는 셀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던 1999년 초의 월 단위 생산량과 비교했을 때 무려 33배 증가한 추이를 보인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의 인력도 늘었다. 그런데 보통 생산량을 20배 늘리기 위해서는 생산인력을 5~10배 증원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수치를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은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10년 동안 이곳의 인력 증원은 2배에 불과했다.
   
   10년 동안 인력을 2배 증원했을 뿐인데도 생산량과 실적은 20배 증가하게 된 것이 전적으로 생산 시스템에 혁신을 단행했기 때문일까? 이에 대해 김영순 전무는 플러스알파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셀 시스템이나 기종장제도는 하나의 방법이자 수단일 뿐입니다.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중요한 것은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의 사람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혁신을 단행하던 무렵 캐논코리아의 리더들은 ‘구성원 존중’을 제일의 가치로 세웠습니다. 구성원들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구내식당을 리모델링하고 메뉴를 업그레이드했죠. 그리고 리더들은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얻기 위해 진심으로 다가갔습니다.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이 다른 기업들과 달리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존중’이 바탕이 된 ‘신뢰’라는 교집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변화의 계절을 준비하다
   
▲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의 작업 모습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에서는 2005년 이후부터 레이저 복합기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생산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개발한 제품은 미국, 유럽,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MF 4000 시리즈가 가장 크게 히트했다. MF 4000 시리즈는 미국의 컨슈머(Consumer)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PC 매거진(Magazine)’에서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를 취득했으며, 사용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일본 굿 디자인(Good Design)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일본시장 내 동종 기기 중 최고 판매 기록을 달성했다. 국내에서는 소비자시민모임에서 주최하는 제12회 에너지 위너상에서 녹색기기 대기전력 부문 ‘올해의 에너지 위너상’을 수상하는 등 디자인과 에너지 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으로 새로운 기록 달성을 거듭해온 캐논코리아는 앞으로 더 큰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주문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더 큰 부지를 물색하던 중 캐논코리아는 롯데그룹의 대대적 투자와 경기도의 적극적 지원에 힘입어 반월공단 주변에 8만9256㎡(2만7000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2013년 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울러 2015년에는 1조원으로 늘리는 한편 직·간접 고용 인원 역시 현재의 2100명에서 1만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시너지를 부른다
   
   캐논코리아 안산공장의 일하는 방식이 일반 대기업에도 통할까? 김영순 전무의 생각은 확고하다. “물론입니다.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혁신의 기본 철학은 어디에서나 통합니다. 셀 시스템이나 기종장제도는 무엇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기업마다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율성’과 ‘존중’입니다. 특히 캐논코리아 안산공장 혁신의 뿌리가 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대기업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도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은 이미 시장에서 인지도를 누리고 있고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혁신의 강도가 약해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특히 대기업의 구성원들은 타인과의 경쟁에 치중하고 조직문화가 위계적이기 쉬워서, 내부적으로 구성원들 간에 이해관계가 얽히고 상대적인 불평등과 소외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럴 때 회사는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줌으로써 구성원 개개인이 주인의식을 갖고 역량을 발휘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소중한 인격으로 존중받고 있으며 자신들의 일터가 진정한 인간애를 실천하는 현장이라는 느낌을 가질 때, 회사와 함께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회사와 동등한 파트너십을 맺게 됩니다.”
   
   나는 김영순 전무에게 “결국 윗사람이 바뀌고 마음을 열어 꾸준하게 아랫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전무는 이렇게 대답했다. “통제와 관리 중심의 리더십 아래에서 구성원들은 결코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일할 수가 없습니다. 리더는 오랜 업무 경험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적인 부분에서는 단연 프로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더 채워야 할 부분은,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배려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구성원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를 진심으로 느끼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모든 구성원들을 스스로 자기 완결적으로 움직이는 자가발전기로 혁신시키는 것이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과를 창출하는 유일한 길임을 모든 조직과 리더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류랑도
   
   더퍼포먼스 대표컨설턴트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