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들어 갑자기 때아닌 ‘고졸 채용 열풍’이 불고 있다. 금융권과 대기업, 공공기관들이 앞다퉈 고졸 채용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학벌지상주의’를 타파하고, ‘공생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모두가 원하고 외치는 ‘능력으로 인정받는 세상’. 하지만 아직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 고졸자를 많이 뽑는다고 학벌지상주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CHRO)들은 은연중 외국 유명 MBA(경영대학원), 국내 명문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 선호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당연히 이는 오너 회장의 뜻이기도 하다. 임원 또는 최고경영자를 대기업에 추천하는 우리 같은 헤드헌터들도 고졸 이력서를 고객에게 자신있게 추천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국내 IT(정보기술) 대기업에 지방대학 출신을 추천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은 추천을 포기하기도 했다. 고졸자들이 취직해서 마음 편하게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고 발전할 수 있는 차별 없는 사내 문화와 시스템 부재도 문제다.

국내 한 시중은행의 B지점장과 C부장은 헤드헌터 일을 하면서 내가 만난 은행원 중 최고의 엘리트였다. 하지만 이들은 고졸이라는 이유로 임원 승진 대상에서 계속 누락되고 있다. C부장은 “학벌을 중시하고, 줄서기가 만연한 국내 은행보다 차라리 외국계 은행으로 옮기면 소신껏 일하고, 능력과 결과에 합당한 인정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고졸 출신을 색안경 쓰고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며칠 전 A 증권사 사장과 저녁을 먹으면서 ‘고졸 채용’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고개를 절로 흔들면서 “시기상조”라고 흥분했다. A사장은 몇 년 전부터 고졸 채용을 중단했다고 한다.

“능력 있는 여상 출신들을 뽑으면 2~3년 근무한 뒤 모두 대학 진학하겠다고 퇴사합니다. 남아 있는 친구들이 없어요. 회사가 몇 년 투자했는데 남는 것이 없어요.”

“이들이 왜 대학을 선택했겠어요? 회사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시집갈 때 고졸 졸업장 가지고는 훌륭한 신랑감을 만나기 힘들고, 결혼 후에는 자녀들이 ‘고졸 엄마 자식’이라고 수치심을 느낄까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고졸 채용이 현실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대졸과 능력있는 고졸 간 임금 격차를 줄이고, 독일의 마이스터(Meister·명장·名匠)제도처럼 기능인이 우대받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보자. 물론 대졸자 취업문제도 심각한 상황에서 고졸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임금을 비슷하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4년간의 시간과 노력, 금전적 투자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고졸과 대졸 간 사회적 대우가 크게 달라지면서 대학 진학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두가 대학에 진학하려고 기를 쓰면서 고졸과 대졸 임금 격차는 커졌고, 사회 혼란과 불평등이 생겨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녀를 대학에 무조건 진학시키기 위해 투자되는 사교육비로 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가계 입장에서는 그만큼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다. 가처분 소득이 감소하면 국민들은 정부와 사회에 대해 불만이 늘어난다. 샐러리맨들은 더 많은 월급을 요구한다. 고졸과 대졸 간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대학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고졸·대졸 졸업장만 가지고 임금을 달리하지 말고 개인 능력에 따라 임금을 차별화하면 굳이 대학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계층이 생겨날 것이다. 대학 경쟁이 줄어들면 능력을 벗어나는 사교육이 줄어들고, 사교육비 부담이 감소하면 가처분 소득은 증가한다. 소득 수준이 개선되고 차별이 없어지면 굳이 대학 졸업장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김재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코리아 대표

대한투자신탁 해외펀드 운용,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뉴욕 특파원, 보스턴컨설팅그룹(BCG) 금융 컨설팅

김재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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