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지인들의 전화를 수십 통 받았다. 본인이 잘 아는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들인데 직장을 잃었으니 좋은 일자리를 찾아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부탁을 받아서 이메일로 접수한 이력서가 지난 3주일 동안 50통이 넘는다.

대부분이 50대 초·중반의 고위 임원들이다. 2012년 경제 전망이 워낙 불투명하다 보니, 금융기관과 대기업들이 몸값이 비싼 고위 임원들 중심으로 대량 학살을 감행한 듯하다. 과거에는 연말에 사람을 내보내면 연초부터 대체 인력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올해는 신규 임원 채용 움직임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인력 채용 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력서를 보낸 대부분이 헤드헌터를 만난 경험이 적은 분들이다. 헤드헌터들이 평균 하루 8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영업을 위해 고객사를 만나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의 후보자 인터뷰를 하고 나면 하루에 고작 1~2시간 정도 여유가 생긴다. 여유 시간을 활용해서 지인들로부터 소개받은 50여명을 모두 만나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반면 실업자가 된 입장에서는 소개를 받았는데 만나주지 않는다고 불쾌해 한다. 이력서를 보내면 곧바로 일자리가 생기는 것처럼 착각하고 재촉하는 사람도 많다. 헤드헌터들도 인간인지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분이 실직을 하면 시간을 내서 만나고, 자격을 갖췄다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을 때 우선적으로 추천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많은 샐러리맨들이 헤드헌팅사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잡상인’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헤드헌터가 여러 경로의 소개나 리서치를 통해 전화를 걸면 “제 전화번호 어떻게 아셨어요? 관심 없습니다”라면서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내가 왜 이 전화를 받았는지 곱씹어 보기보다는 집요하게 자신을 또는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추궁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낯선 전화에 불쾌하고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낯선 전화 한 통이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헤드헌터를 만나서도 문제다. 근무 기간 동안의 주요 성과와 어떻게 성취했는지를 질문하면 ‘헤드헌터가 그런 것까지 알아서 뭐하게’ 하는 식으로 오만하게 답변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직접 인터뷰할 회사에 설명하면 되지 왜 중간에 나서냐는 의미다. 어떤 분은 사무실에 와서는 “그동안 헤드헌터를 통해 직장을 옮겨본 적이 없다. 모두 내 능력을 믿고 주변에서 추천해 회사를 이동했다”면서 헤드헌터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헤드헌터는 ‘커리어 컨설턴트’라고 불리며, 커리어를 위한 조언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들이다. 건강을 위해 주치의를 두거나, 재정적 도움을 위해 재테크 전문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경력 관리 자문을 해주는 헤드헌터 한두 명 정도를 사귀어 둘 생각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헤드헌터를 만날 때는 회사도 중요하지만 어떤 컨설턴트를 만나느냐가 더 중요하다. 컨설턴트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잘 파악하고, 스스로 후보자라는 1회성 상품으로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코칭해 줄 수 있는 컨설턴트를 만나야 한다. 궁합이 잘 맞고, 능력 있는 컨설턴트를 만나보라. 이력서를 매력적으로 쓰는 요령부터 배우고, 업계 인력시장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커리어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컨설턴트들마다 전문 분야가 있어서 담당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 못지않으므로 시장의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승승장구하다가도 갑작스레 직장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많다. 뒤늦게 구직 사이트를 검색하느라 온종일을 소비하면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보다 평소 헤드헌터와 친분을 유지해 놓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다.

성공적 커리어(경력) 관리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헤드헌터라는 매개체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재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코리아 대표

김재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코리아 대표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