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나이가 지긋하신 노신사 한 분이 회사로 찾아오셨다. 2년 전에 이력서를 회사로 보내셨던 분이다. 과거 평판조회 때 친절하게 후보자에 대한 의견을 주셨던 좋은 기억이 있어서 바쁜 시간을 쪼개 미팅을 가졌다. A사 사장이 곧 임기가 돌아와서 교체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 자리에 자신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물론 본인의 경쟁력과 A사 사장 자리에서 요구하는 자격 요건이 잘 맞는다는 자기 소개도 빼놓지 않으셨다.

공교롭게 같은 날 밤 대학 친구 B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B는 중견기업 월급쟁이 사장을 하다가 얼마 전 회사가 매각돼 실업자가 됐다. B는 “헤드헌터인 친구가 좋은 자리를 찾아 줄 때까지 다른 곳에서 입사 제의가 들어와도 안 갈 거야. 내일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보낼 테니까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협박(?)과 부탁을 겸한 내용을 보내왔다.

작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수의 임원들이 갑자기 해고되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헤드헌터에 대해 의외로 문외한인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헤드헌팅 업체는 크게 후보자가 채용되어야 수수료를 받는 ‘성공 조건’으로 일하는 회사(Contingency search firm)와 미리 수수료를 받으면서 일을 하는 회사(Retainer based search firm)로 구분된다. 대부분 국내 업체들은 contingency 회사이며, 외국계 회사들은 retainer 회사에 속한다.

헤드헌터는 기업체에 능력있는 인재를 공급하고 기업체에서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대부분 헤드헌터는 후보자 개인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헤드헌팅 업체에도 수수료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직자들이 가장 흔히 착각하는 것은 헤드헌팅 업체에 이력서를 보내면 회사에서 금방 일자리를 찾아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력서를 보내놓고 1개월이 지나면 왜 아무런 연락이 없느냐고 화를 내면서 독촉을 하는 것도 헤드헌팅 절차를 몰라서 생기는 해프닝이다.

헤드헌터들은 이력서를 가지고 약장수가 약을 팔 듯 이 회사 저 회사 기웃거리면서 장사를 하지는 않는다. 원칙적으로 헤드헌팅 업체들은 기업체에서 인재를 찾아 달라고 정식으로 의뢰가 들어와야 추천을 한다. 의뢰가 들어오면 이력서를 검토하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자격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판단이 되면 후보자에게 전화를 해서 인터뷰를 하자고 제의한다. 이력서를 받아서 금방 기업체와 인터뷰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1년이 넘도록 인터뷰를 주선하지 못하기도 한다.

따라서 현직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직장을 구할 때 국내외 헤드헌터 5~6곳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것이 현명하다. 헤드헌터마다 의뢰를 받은 서치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헤드헌터 업체 C에는 없는 일자리가 업체 D에는 있을 수 있다. 특히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들은 다른 헤드헌팅 업체와 함께 일을 하지 않고 항상 단독(exclusive)으로 서치를 진행한다. 단골 고객이 각기 다르므로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업체 3곳(Heidrick & Struggles, Korn/Ferry, Egon Zehnder)에는 모두 이력서를 보내 놓는 것이 취업 확률을 높인다.

국내 믿을 만한 업체 2~3곳에도 이력서를 보내 놓고 기다려야 한다. 다만 국내 업체의 경우 수천 개에 달하므로 헤드헌터의 경력과 전문성을 면밀히 따져서 본인과 궁합이 잘 맞는 업체를 접촉해야 한다.

기업에 이력서를 보낼 때 본인 동의 없이 마구 배포하지 못하도록 헤드헌팅 업체에 확실히 못을 박는 것도 중요하다. 자칫 본인도 모르게 이력서가 기업체 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김재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코리아 대표

대한투자신탁 해외펀드 운용,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뉴욕 특파원, 보스턴컨설팅그룹(BCG) 금융 컨설팅

김재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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