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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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의 성과라면… 글쎄요. ‘소통’과 ‘기본’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10월 25일 경기도 의왕시 안양판교로에 있는 한국농어촌공사(이하 농어촌공사)에서 취임 1주년을 맞은 박재순(68) 농어촌공사 사장을 만났다. 박 사장은 ‘소통을 통한 현장경영’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박 사장 측이 요청해 이뤄졌다.

박 사장은 농수산 행정 전문가다. 전남에서 40여년을 공무원으로 일하며 농수산 행정을 주로 담당했다. 1989년 당시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장기교육과정 졸업논문에서 농어촌공사의 전신인 당시 농지개량조합의 발전 방안에 대해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그간 농수산 행정이 제 전문 영역이었다면, 현재는 농어촌 현장이 제 영역이자 집무실입니다.”

“DMZ 방문 첫 고위인사”

박 사장은 2011년 10월부터 1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농어촌공사의 사업이 진행되는 현장은 물론, 민원 발생지, 보(湺) 개·보수 사업지구를 빠짐없이 방문했다. 지난해 11월 찾은 충남 당진의 석문간척지에서는 농민들과 대화를 통해 간척지 임대제도를 개선하기도 했다. “부임한 지 12일이 됐을 때였어요. 충남 당진에서 농민 130분이 농어촌공사가 있는 경기도 의왕시로 올라오겠다고 하셨죠. 간척지에 벼를 심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임대제도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하시더군요.” 박 사장은 이에 “올라오지 마시라. 내가 직접 가겠다”고 답변했다. 직원들이 만류했지만 아니라고 했다. “130분이 단체로 여기까지 오시려면 비용도, 시간도 많이 들지 않습니까. 저 한 사람만 내려가면 될 일인데요.”

박 사장은 그 길로 당진행을 택했다. 간척지에서는 소금기 때문에 일반 밭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쌀 수확량이 많은 국내 특성상 새로 만든 간척지에는 벼를 심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다. 농민들은 “간척지에서는 사료작물이 자라지 않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박 사장은 “현장에서 농민들의 의견을 듣고 간척지 임대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해 영농기부터 적용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만들었다”고 했다. 덕분에 농민들은 올해부터 벼농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벼가 생육하는 데는 물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그 물이 땅의 소금기를 눌러주기 때문에 벼는 클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간척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가장 적합한 작목이 바로 벼입니다.”

현장의 소중함을 깨달은 경험은 또 있다. 지난 5월 박 사장은 강원도 철원군에 위치한 철원 비무장지대(DMZ) 내 황금느르지 지구의 보(湺)를 방문했다. 보가 낡고 오래돼 개·보수 사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 보니 농민이나 군(軍)의 편의를 위해 시작한 사업이 그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철원지역 농업용수의 원천으로 사용돼 온 보가 DMZ 철책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작업할 때마다 군인 60여명이 경비인력으로 동원됐고, 남북이 긴장상태에 있던 터라 심적 부담감도 컸다. “해당 지역이 접경지역이라 공사가 길어지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원래 2014년에 완공될 예정이었던 것을 올해까지 마치기로 했죠.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협의해서 몇 년에 걸쳐 배정돼 있던 예산을 올해 집중 배정받았습니다. 공사가 빨리 끝나면 경비인력도 낭비하지 않을 수 있고, 농업인들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현장 군 사령관은 박 사장에게 “DMZ 내로 시설을 보러온 고위인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농어촌공사 사장으로 일하면서부터 현장의 중요성을 더욱 깨닫고 있습니다. 행정과 현장 사이에는 항상 괴리가 있거든요. 답은 무조건 현장에 있습니다.”

“어촌 전담 부서 설치할 것”

소통은 현장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 박 사장은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취임하자마자 직원들과 ‘허심탄회’라는 이름의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본사에만 800여명의 사원이 근무하고 있어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직급별 모임, 팀장 모임, 공채 직원 모임 등 그룹을 바꾸어가며 직원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월급이 적지는 않은지, 사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지 등 다양한 것을 물었습니다.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직원들과 대화를 하면서 박 사장이 알게 된 것은 사원 모두가 승진에 대한 바람과 포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승진은 적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회사의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특별승진제도를 통해 그에 맞는 처우를 해줄 생각입니다.” 박 사장은 본사 직원들의 생일을 날짜별로 파악해 두었다가, 구내식당이나 회사 근처 식당에서 생일을 맞은 직원과 오찬을 함께하기도 한다. 6000여명 농어촌공사 직원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영상으로 월례조회를 진행하는 것도 박 사장 취임 이후에 생긴 특징이다.

“농업의 기본은 치수(治水)입니다. 농업인들이 안전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물을 안전하게 공급하는 것이 저희 농어촌공사의 가장 큰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사장은 현재 노후된 수리시설의 보수와 농지 침수를 막기 위한 배수개선사업을 계획 중이다. 재해에 취약한 수리시설 704곳의 개·보수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현재 700여곳 중 163곳 공사는 완료한 상태입니다. 올해는 기후변화가 우리 농어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몸으로 깨달은 한 해였습니다. 앞으로 닥칠지 모를 재해를 더 적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공사 차원에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박 사장은 “재임 기간 동안 어촌 발전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사명(社名)이 농어촌공사로 바뀐 것이 2008년인데, 아직까지 본사 18개 부서 중 어업을 관장하는 부서가 없더군요. 어업인을 위해 전담 부서를 별도로 설치할 생각입니다.” 박 사장은 지난해 경남 남해 조도마을을 비롯한 6개 마을을 어촌사업 시범마을로 선정하기도 했다. 어업인 소득 증가와 복지에 힘쓰겠다는 포부다.

박 사장은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 데 있어 농어촌공사가 없으면 안 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현재 국내 총 논면적 98만4000㏊ 중 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는 것은 51만7000㏊로, 전체의 53%에 달한다. 47% 중 27%(19만6000㏊) 정도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나머지 20%(27만1000㏊)는 농업인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각 지방자치단체 소관 지역도 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해주길 원한다. “지자체 소관 시설물도 농어촌공사가 함께 관리할 수 있는 일원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농어업인이 원하는 것이 곧 저희가 원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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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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