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X 사업의 핵심 논쟁은 단발엔진이냐 쌍발엔진이냐로 귀결된다. KAI가 내놓은 단발엔진 모델 C-501(왼쪽)과 ADD가 제안한 쌍발엔진 모델 C-103(오른쪽).
KF-X 사업의 핵심 논쟁은 단발엔진이냐 쌍발엔진이냐로 귀결된다. KAI가 내놓은 단발엔진 모델 C-501(왼쪽)과 ADD가 제안한 쌍발엔진 모델 C-103(오른쪽).

군사전문 인터넷사이트 ‘비밀(Bemil)’은 지난 1월 13일 군사 매니아 간의 공방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 군사전문지 기자 K씨가 “보라매 사업(KF-X·Korea Fighter eXperimental)은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제안한 모델(C-103)은 배제되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제안한 모델(C-501)로 사실상 결정됐다”며 “이르면 2월 초 국방부 사업 의결기구인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에서 형식적으로 방망이만 두드리면 끝날 것”이라는 글을 올린 것이 단초가 됐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사용자인 합참과 공군을 제쳐두고 개발업체에 불과한 KAI가 나서는 것은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는 글을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은 “KAI가 현재 생산하고 있는 경공격기 FA-50을 개량한 KF-X 모델로 가는 게 개발비도 절약하고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등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KF-X사업은 일명 ‘보라매 사업’으로, 2025년까지 6조~8조원을 투입해 한국형 전투기 120대를 개발하게 된다.

국산 전투기 개발은 2001년 3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처음으로 운을 뗐고, 그후 수차례의 전투기 개발기술과 경제성 검토를 거쳐 13년 만에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을 대체할 사업으로 시작됐다. KF-X 개발이 성공하면, 한국은 단박에 ‘톱5’의 항공선진국 대열에 오를 기회를 맞이한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지난 1월 5일 “한국형 전투기 120여대를 국내에서 개발하는 보라매 사업의 체계 개발을 올해 시작하기로 했다”며 “올해 예산에 착수금 명목으로 200억원을 반영했고, 2023년 초도기를 생산한 후 7~8년 동안 순차적으로 실전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방사청의 사업 발표에도 불구, 국산 전투기의 개발 예산에 따른 전투기 등급과 모델을 놓고 관련 기관과 업체들은 인터넷 사이트 논쟁처럼 이전투구식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KF-X 전투기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대응해야 하고, 해외 수출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둘러싸고 상반된 의견들이 충돌하고 있다.

당초 기획했던 KF-X의 성능은 주력기인 F-16과, F-X 3차 사업 기종으로 선정된 F-35 전투기의 중간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공군과 합동참모본부의 작전요구성능(ROC)을 반영해 쌍발엔진을 주축으로 한 모델(C-103)을 제안했다. 하지만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국방과학연구소 제안 모델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 해외 수출이 곤란할 것”이라며 “록히드 마틴과 협조해 F-16 전투기를 개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고, 정부가 KF-X 관련 예산을 포함시킬지조차 불투명해지자 체계개발 주계약 업체인 KAI까지 나섰다. KAI가 제안한 모델은 단발엔진을 중심으로 한 C-501. 이 모델은 자신들이 생산 중인 경공격기인 FA-50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하드웨어만 덩치를 키워 개조한 것이다.

국방부 산하 의결기구인 방추위가 올 1월 초 KF-X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의결할 때만 해도 KF-X 사업은 공군과 국방과학연구소가 제안한 C-103 모델이 순풍을 타는 듯했다. 그러나 올 1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업계에서 새로운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KAI에 엔진을 납품하고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 기자에게 “KAI가 제안한 단발엔진 모델인 C-501로 조만간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이라며 “공군과 국방과학연구소가 제안한 C-103 모델에 엔진을 납품하게 될 롤스로이스는 초상집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하성룡 KAI 사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8촌 형부’여서인지 사업권을 틀어쥔 방사청 관리들이 알아서 모시는 분위기”라며 “사실상 지난해 12월 말까지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의견이 반영된 ADD의 쌍발엔진 모델이 유력했으나 올초에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완전하게 반전됐다”고 덧붙였다. 경북고,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하 사장은 대우중공업에서 재무·인사담당 임원으로 일했고, 2004년에는 KAI 관리본부장과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하 사장의 부인은 박근혜 대통령과 18촌관계로 통상적 친척 범주에 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유일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개발한 KAI는 인도네시아(16대)를 시작으로 지난해 말 이라크에 국산 경공격기인 FA-50(이라크 수출 모델명 T-50IQ) 24대의 수출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한국 정부의 F-35 선정으로 F-X 3차 사업을 사실상 수주한 록히드 마틴도 KF-X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은 KF-X가 목표로 하는 성능이 ‘F-16+α’로 갈 경우, 한국에 F-16 개량형 모델을 생산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KF-X에 참여하려 하고 있다. 1994년 이후 한국 정부에 140대의 KF-16 C/D 모델을 판매해온 록히드 마틴은 생산 일정상 2015년 말이면 F-16 생산을 완료하고 생산라인을 닫을 예정이었다. 전문가들은 록히드 마틴이 F-16 생산 라인을 연장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 ‘어드밴스드 F-16’을 개발해 준다는 제안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드밴스드 F-16’이 바로 KAI가 제안하고 있는 C-501이라고 강조한다.

공군 출신 예비역 준장 N씨는 “F-16 전투기를 도입하면서 오프셋(절충교역)으로 받은 T-50 훈련기와 FA-50 경전투기는 록히드 마틴과 공동생산으로 현재 기술 종속 상태에 있다”며 “국산기술로 항공기 제작기술을 축적하려는 KF-X사업이 록히드 마틴과 또다시 기술제휴로 간다면 이마저도 기술 종속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미국이 자신들이 생산한 F-35 전투기와 국제시장에서 경쟁할 KF-X에 대해 선선히 기술협력을 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로 긴장감이 일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항공전력의 각축장이다. 일본은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F-35 42대에다 추가로 100대를 구매하려 하고 있고, 최신예 국산 스텔스 전투기 F-3을 100여대까지 전력화하기로 하는 등 총 250대의 전투기를 보유할 계획이다. 중국은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J-20에다 J-31을 보유하는 등 4세대 전투기 400여대를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F-X 3차 사업이 완료되더라도 고작 F-35 40대를 보유,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적은 5세대 스텔스기를 보유한 나라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영토분쟁이 발발한다면, 한국 공군은 적 방공망을 뚫고 적진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F-35를 중심으로 공격을 하게 될 것이다. 이때 내부 무장창을 갖는 등 제한적 스텔스 성능을 갖춘 C-103 모델은 폭격에 나서는 F-35의 호위기 역할을 해 F-35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고작 40대밖에 안 되는 F-35가 홀로 폭격과 공중전을 모두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군 출신 예비역 중장 J씨는 “C-501은 내부 무장창을 갖춘 C-103보다 비용은 저렴하고 개발 성공 가능성은 더 높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C-501을 선택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120대를 개발하는 KF-X가 5세대 스텔스 성능을 갖춘 C-103 모델이냐, 가격은 저렴하지만 4세대 전투기에 불과한 C-501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며 “이 선택은 2025년 이후의 한국 공군의 전략 및 전술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 공군을 위한다면 반드시 내부 무장창을 갖춘 C-103 모델로 추진돼야 한다”며 “아니면 KF-X를 포기하고 그 돈으로 F-35나 대량 구매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2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중기계획 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해 9월 2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을 중기계획 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DB

전투기의 크기와 성능은 엔진에 의해 결정된다. 엔진이 크면 전투기도 커져 많은 장비와 무장을 탑재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최신형 F-16E/F는 이륙중량이 4만6000여파운드(약 21t),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5만2000여파운드(약 23t)이다. KF-X의 최대 이륙중량은 5만파운드(약 22t) 안팎으로 가볍지 않다. 이러한 무게를 띄우기 위해서는 ‘쌍발엔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게다가 조종사의 안전을 위해서도 단발엔진보다 쌍발엔진이 조종사의 ‘생존성’ 측면에서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현재 공군은 단발엔진보다 쌍발엔진이 안정성이 있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걸 주저하고 있다. 오히려 방사청과 KAI가 단발엔진의 안정성이 높아 굳이 과거처럼 쌍발엔진으로 갈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우리가 도입하는 최신예 F-35 역시 단발엔진 전투기이므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방산업체에 근무하는 N모 예비역 공군 준장은 “단발엔진과 쌍발엔진의 차이는 비행을 하는 조종사만 그 차이와 중요성을 느낀다”며 “고기동을 하는 과정에서 엔진 하나가 멈추면 쌍발엔진은 생존할 수 있지만 단발엔진은 추락을 의미하고, 그 결과는 조종사들의 전투 자신감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방사청의 백윤형 대변인(대령·공사 34기)은 “KF-X의 엔진 단발, 쌍발 문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단발·쌍발 엔진 여부에 대해 관련 기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사업추진 기본전략과 체계개발 계획을 종합해 방추위에 3월 중에 상정할 것”이라며 “각 기관의 의견이 상충됐기 때문에 3자 시각에서 볼 전문가를 섭외해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방사청의 이런 주장과 달리 업계 관계자들은 방사청이 지금까지도 공청회를 요식행위로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방사청은 KF-X사업 공청회에 전문성이 떨어지는 시민단체 S씨 등을 섭외했고, KAI는 기무사령관 출신 K모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에서 세미나를 열었다”며 “방사청과 KAI가 입을 맞춘 것처럼 KAI 모델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KAI의 한 관계자는 “방사청과 기획재정부가 1월 중으로 총사업비 관리지침에 따라 KF-X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KF-X의 형상모델을 단발 또는 쌍발엔진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KF-X 개발에는 인도네시아도 참여하고 있다. 2012년 인도네시아는 개발 비용의 20%에 해당하는 12억달러를 투자하며 KF-X사업에 뛰어들었다. 인도네시아는 KF-X사업의 모델 가운데 ADD의 쌍발엔진 모델인 C-103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방사청이 KAI의 C-501 모델을 선택할 경우, 인도네시아 측과 계약 문제를 다시 협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KF-X사업 역시 우여곡절을 겪은 F-X사업처럼 사용자인 공군이나 합참이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생산업체에 끌려가는 형국으로 전개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즉 이번 KF-X사업도 공군이 원하는 방향과는 달리 정치적 고려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공군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 “공군은 F-X사업에서 초기에 방사청의 제안에 따라 ‘스텔스 성능’이란 ROC를 양보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공군이 원하는 F-35를 도입하게 됐다”며 “KF-X사업도 공군이 쌍발엔진을 토대로 한 ADD의 모델을 원한다는 분명한 의사를 나타내지 않으면, F-X사업처럼 혼선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제작업체는 아무래도 이윤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려 하기 때문에 낮은 제작비로 높은 가격을 추구할 것”이라며 “공군참모총장(성일환 대장)의 2월 교체설이 나도는 등 공군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이용해 방사청이 KF-X사업을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매듭지으려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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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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