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프로이덴베르크
ⓒphoto 프로이덴베르크

세계 시장을 이끌어가는 것과 중소기업은 모순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가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적으로 가능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히든챔피언들이 세계 시장에서 오랫동안 최정상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끼리(대기업)들이 노는 곳에서 함께 춤추지 않기’ 때문이다. 히든챔피언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혁신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집중하게 되면 시장이 작아지는 위험이 있다. 그럼 어떻게 히든챔피언이 작은 시장에서도 신뢰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세계화란, 대기업들이 엄청난 재정적 자원을 가지고 세계적인 영업구조를 구축함으로써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을 말한다. 그러나 히든챔피언의 역사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이정표가 될 정도로 날씬하지만 영리한 방식으로 세계화에 성공한 히든챔피언도 있다. 이를 통해 히든챔피언들은 자신의 작은 시장을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경영학 구루인 피터 드러커가 “비록 수공업이고 지역이나 지방에서 상품을 판매할지라도 모든 비즈니스는 세계적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전략을 잘 보여준 사례가 바로 독일의 프로이덴베르크(Freudenberg)이다. 프로이덴베르크는 가죽을 다루는 작은 제혁(製革)사업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콘체른(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약 4만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지난해 66억유로(약 9조60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00% 가족기업으로 8대째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320명의 가족주주들이 활동하고 있다.

프로이덴베르크는 지속적으로 국제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들어간 역할모델을 보여준다. 전폭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국제적인 사업파트너들을 구축한 것. 프로이덴베르크는 이같이 독특한 ‘노하우(knowhow)’를 발전시켜 성공을 거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히든챔피언 중 하나다.

이미 19세기에 프로이덴베르크는 유럽, 미국, 아시아 각국에 품질이 뛰어난 화학 제품인 ‘크롬가죽’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또 1929년 이 회사는 쓰고 남은 가죽 조각들을 자동차의 밀폐부품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새로운 제품들과 혁신적인 서비스를 창출한 것. 이를 ‘시머링(Simmering)’이라고도 부르는데, 당시 이를 개발한 기술자 ‘발터 시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즉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간 것이다.

프로이덴베르크의 창업자였던 한스 에리히 프로이덴베르크는 이미 자동차 방수 기술을 확보했다. 또 아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일찍부터 간파했다. 이미 1950년대부터 그는 일본과의 비즈니스를 타진했다. “향후 일본 기업들이 독일 승용차 시장의 10% 이상을 차지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나름대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60년 일본의 자동차 부품소재 기업인 ‘NOK’(일본 오일실 회사)의 쇼구 쓰루 회장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프로이덴베르크는 일본 회사에 처음으로 기술적 노하우를 전수했다. 파트너인 NOK는 이후 일본 신생 자동차 업계의 다른 파트너 기업들을 연결해 줬다. 나중에 차량 자동화 생산방식의 일종인 ‘린 제작(Lean Production)’ 노하우를 제공하기도 했다. 재고를 최소화하는 식으로 작업공정을 혁신하는 ‘린 제작’은 이후 도요타 생산방식으로 유명해졌다.

둘다 가족기업인 이들 회사는 지금까지도 탄탄한 신뢰관계를 갖고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이덴베르크가 소유한 NOK의 지분은 20%에 불과하지만, 두 회사는 상호 리더십에 도움을 주면서 성장하는 관계를 구축했다. NOK는 일본 고객들에게 프로이덴베르크 제품들을 제공했고, 반대로 프로이덴베르크는 유럽의 고객들을 NOK와 공동 관리했다. 두 회사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도 공동 진출했다. 미국에서는 프로이덴베르크가, 중국에서는 NOK가 시장을 선도 중이다. 국제적인 고객들에게는 공동으로 제품을 제공했다.

“중국에 진출한 NOK-프로이덴베르크 그룹은 크게 성장하는 중국 시장에서 자동차 방수 및 진동 기술에 기반한 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동시에 프로이덴베르크와 NOK의 네트워크는 다른 지역에서도 성공요인으로 작동했죠. 기술적인 선도 역량과 품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스 에리히 프로이덴베르크의 설명이다. 이 사례는 독일과 일본 두 개의 중소기업이 공동의 시장에서 함께 경쟁력을 만들어가고 함께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두 기업의 합작은 모회사와 자회사의 영업과정보다도 훨씬 더 많은 소통을 요구한다. 항상 대화를 해야만 파트너십이 작동할 수 있어서다. 실제 프로이덴베르크와 NOK는 상호 대화하면서 수십 년 전부터 눈에 띄는 기업문화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화는 후대 경영자들의 직무순환을 통해서도 계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이를 통해 신용, 신뢰, 그리고 책임감을 키울 수 있었다. 즉 이들 기업의 아주 신뢰할 만한 협업은 단순히 과거의 한스 에리히 프로이덴베르크와 쇼구 쓰루의 악수로만 성사된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덴베르크는 이와 유사한 파트너 관계를 다른 나라에서도 구축해왔다. 또 이 관계를 수십 년간 유지해 왔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이탈리아의 코르코스 산업지역에 있는 루도비코 코소추(Ludovico Cossozu)를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가족회사로서 1959년부터 프로이덴베르크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프로이덴베르크의 제품들을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들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토리노 인근 피네롤로시에 있는 공장은 프로이덴베르크의 자회사 중 밸브스템 밀폐부품 생산의 선두 센터로 자리 잡았다. 향후 가족기업으로 후계자를 찾지 못한 루도비코 코소추는 2008년 프로이덴베르크의 100% 자회사로 통합됐다.

이 같은 성공 사례도 있었지만 프로이덴베르크가 파트너 구축에서 실패한 사례도 있다. 1970년대 말 프로이덴베르크는 일본의 파트너와 함께 한국에 있는 한 섬유회사에 접근했다. 하지만 이 세 회사의 파트너십에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의사소통 문제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탓이었다. 결국 파트너 관계는 무산됐다. 그래서 프로이덴베르크는 자체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프로이덴베르크의 수십 년 경험은 자본이 별로 없는 중소기업이 국제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길을 잘 보여준다. 파트너 간의 역할을 상세하게 정의하고 정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해 나간다. 물론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서로 배우고 상호 간의 대화를 계속 추진하는 것이다. 프로이덴베르크의 감사위원인 마틴 스타크 박사는 프로이덴베르크 파트너십의 비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했다. “우리의 분명한 목표는 파트너들과 신용관계를 구축하고, 또 서로 간 이익 균형을 찾는 것이다.”

빈프리트 베버

56세.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과 교수. 만하임대 실용경영조사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글로벌가족경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세계적 경영석학인 톰 피터스가 이끄는 경영컨설팅회사 ‘톰 피터스 그룹’에서 근무했다. 중소기업 경영자와 오너들에게 기업이슈와 경영전략에 대해 컨설팅해주고 있다. 독일 미텔슈탄트 성공모델 분석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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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프리트 베버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과 교수 / 번역 김산 미국 조지타운대 졸업ㆍ독일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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