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기술은 뛰어난 품질, 혁신적 기술, 높은 신뢰도로 세계적으로 평가를 받는다. 물론 최대한의 완벽성과 우월성을 갖추려는 엔지니어의 노력 때문에 가끔씩은 시장에서 기회를 스스로 놓쳐 버리기도 했다. 수백 개 기업들로 구성된 독일의 시계산업은 섬세한 기술이란 완벽성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디자인과 스스로 발전시킨 쿼츠 기술 개발을 게을리한 바 있다.

독일 기업 지멘스는 팩스 기술에서 큰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팩스의 잠재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일본 기업들이 팩스의 혁신을 낚아챘다. 이후 일본 기업들은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팩스 제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정복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중소기업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고 싶어한다. 오디오 제작 전문기업인 젠하이저(Sennheiser)는 ‘완벽한 소리를 추구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젠하이저는 자동응답기 제품에 대한 특허권도 가지고 있다. 최고의 소리를 추구하는 사람도 때로는 자동응답기의 잠재성을 알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젠하이저는 이 시장에서 경쟁자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왜 많은 독일의 중소기업들이 영역 다양화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의 장점에만 집중하는지 젠하이저는 분명히 보여준다.

젠하이저의 본사는 독일 중부 니더작센주에 있는 베네보스텔(Wennebostel)에 있다. 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아카데미상(영화), 그래미상(음악), 에미상(TV) 등을 싹쓸이한 세계적 기업이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젠하이저는 최고로 까다로운 고객들이 요구하는 최상의 소리를 취급해 왔다. 이를 통해 완벽한 소리를 추구하는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회사로 발전해 왔다. 이 기업에서는 엔지니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고객들과의 소통을 최우선한다. 엔지니어나 생산기술자는 전체 직원 2500명 가운데 50% 이하에 불과하다.

젠하이저의 공동 최고경영자인 안드레아스와 다니엘 젠하이저는 소통을 위해 임원 집무실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열린 공간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이는 젠하이저의 상징이기도 하다. 새로 지은 혁신 캠퍼스 빌딩에는 직원 개개인이 아닌 프로젝트팀이 입주했다. 그곳에서는 독일어가 아닌 세계에 있는 다른 기업들처럼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젠하이저처럼 중소기업이면서 세계 최고 지위를 유지하려면 최고가 되기 위한 열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최고의 품질을 제공하는 것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젠하이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요구가 극도로 까다로운 고객들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핑크, 실, 스팅 같은 유명 스타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회사 관리자들이 자체 밴드를 조직해서 연주했다. 당연히 유명 스타들은 이에 대한 놀라움과 호감을 표시했다.

또 젠하이저는 전문적인 고객들, 즉 스튜디오 기술자와 음악가들의 요구와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실제 핑크 같은 월드스타가 공연 도중 공중그네를 타면서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 전달은 젠하이저가 담당했다. 서울시의 오케스트라(서울시향)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프로듀서인 마이클 파인이 첫 번째 앨범을 녹음할 때 디지털 마이크를 조율하며 “소리의 선명감이 너무나도 대단하고 숨을 멈추게 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드레아스 젠하이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전문 고객들은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대신 그들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에둘러 말합니다. 그러나 현재 쓸 수 있는 기술로는 그 꿈을 만족시켜 줄 수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이들의 말은 우리에게 고객들의 요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또 우리에게 이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주죠.”

또 이를 위해 젠하이저는 지난 26년간 독자적으로 유로비전 콘서트나 그래미상 등 초대형 이벤트들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이를 통해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TV 방송이나 공연장에서 끊기지 않는 최고 수준의 소리를 제공해 왔다. 이런 경험이 젠하이저의 이미지를 가꿔 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세계화를 통해 최종 고객들의 또 다른 기대들을 이해하면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이다. 대개 미국 고객들은 디자인을, 일본 고객들은 제품의 마무리를, 독일의 음악 애호가들은 기술적인 완벽함을 우선적으로 본다. 그에 비해 인도에서는 2004년까지만 해도 ‘프리미엄 헤드폰’이란 상품 자체가 아예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처럼 고객들의 기대와 요구는 다양하고 차별화돼 있다. 때문에 고전적인 영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연구개발(R&D), 제작, 마케팅, 판매 및 서비스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다니엘 젠하이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상호간의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냈습니다. 우리 회사의 고위 경영진 중 한 명은 반 년 동안 미국에, 다른 한 명은 싱가포르로, 그리고 미국 실리콘밸리팀의 한 명은 취리히로, 그리고 또 나머지 한 명은 덴마크에서 호주로 보냈어요. 이는 순전히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뽑는다는 원칙에 의해 정해졌어요. 세계화는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더 많은 영향력을 만들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현지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더욱 더 많은 것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란 사실이 안드레아스와 다니엘 젠하이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변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서로를 대하고, 어떻게 업무를 수행하는지에 대한 행동과 문화입니다. 우리 회사의 경우, 기업 소유자가 100% 가족 구성원으로 돼 있습니다. 이들이 회사를 이끌어갑니다. 그것은 우리와 고객들에게도 큰 플러스 요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상호 간의 교류와 장기적인 관점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방송 엔지니어 출신인 프리츠 젠하이저는 1945년에 회사를 창업해서 국내 시장에 치중했다. 그의 아들인 외르그는 1980년 이후 국제화에 발맞춰 뛰어난 수출전략을 통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그의 손자 세대는 다국적 전략을 통해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

이들은 “우리에겐 부채비율 대신 높은 자기자본비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목표 대상을 분기별로 자꾸 바꾸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위험요소를 회피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철학은 그러한 위험을 다루지만 그 위험이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거나 목을 부러뜨리는 일을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70년의 역사 동안 우리는 이 전략을 통해 회사를 잘 이끌어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 회사는 2009년 경제위기 때 단 1%의 매출 감소가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습니다.”

빈프리트 베버

56세.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과 교수. 만하임대 실용경영조사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글로벌가족경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세계적 경영석학인 톰 피터스가 이끄는 경영컨설팅회사 ‘톰 피터스 그룹’에서 근무했다. 중소기업 경영자와 오너들에게 기업이슈와 경영전략에 대해 컨설팅해주고 있다. 독일 미텔슈탄트 성공모델 분석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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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프리트 베버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과 교수 / 번역 김산 미국 조지타운대 졸업ㆍ독일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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