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레이저 공작기계 ⓒphoto 트럼프
트럼프의 레이저 공작기계 ⓒphoto 트럼프

세계 시장을 제패한 독일의 미텔슈탄트(중소기업)들은 최신 경영 풍조를 따라가는가? 혹은 반대로 새로운 경영 방식을 만들어 정착시켰는가?

독일의 히든챔피언들은 사람들이 의식할 정도로 가치 있고 지속적인 리더십 모델로 생존하고 있다. 이들은 유행하는 경영 방식이나 전략 변화에는 그리 민감하지 않다. 독일 히든챔피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유행하는 경영 방식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모습도 보인다.

수년 전 필자는 독일 경영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경영 풍조와 전략적 모델이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경영전문가나 컨설턴트와 함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를 물었다. 오늘날 경영 자문을 받지 않거나 경영학 컨설턴트가 쓴 책을 한 번도 펴보지 않고 직업의 세계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정부기구와 정부 관료들도 컨설팅을 주문한다. 실제 컨설팅 시장의 리더인 맥킨지에 여섯 번째로 중요한 고객도 비정부기구였다.

왜 오늘날 기업경영자들은 컨설턴트에게 자문 업무를 맡길까. 사회학자인 루돌프 헬름스테터(Rudolf Helmstetter)는 “현대사회에서 컨설팅 서적이 유행하는 것은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안전장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행동할 수 있는 선택권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결정을 하는 데는 더 많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오늘날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자문을 따라야 할 것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어떤 조언을 따라야 할 것인가이다.

여기서 명백한 것은 미텔슈탄트들은 대형 컨설팅 회사들의 주요 고객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중소기업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은 오히려 기업컨설팅 시장에서 대표성이 덜하다. 또 히든챔피언 기업은 자신의 전략, 세계 시장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자신의 유일한 지식을 컨설턴트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을 두려워한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경영학 서적들도 대개 중소기업에는 회의적 입장을 취한다. 중소기업 경영자들 역시 연구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실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부 최고경영자들은 “소위 ‘경영학 구루(Guru)’로부터 별 영향을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힌다. 이들은 “미국에서 유행하는 최신 경영학이 낫다”는 말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미국 기업의 성공 역사는 뛰어난 경영 방식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식 경영 방식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단지 엄청나게 큰 자국 시장이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심지어 이들은 “글로벌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식 경영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고까지 생각한다.

여기자인 우르슬라 바이덴펠트는 경영학 서적의 유행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는 “경영학 책들을 읽어서는 자신의 희망사항과 선호도를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영학 서적과 관련해서 이 세상에서 풀리지 않는 하나의 수수께끼가 있다. 경영학 서적의 발행 부수는 늘어나지만 이를 제대로 읽는 독자 수는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요즘 진지하게 자문을 구하는 사람은 경영학 서적을 구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해야 할 것을 찾는 사람은 ‘세븐시그마와는 다른’과 같은 제목의 책들을 구입한다. 그 다음에는 소파 뒤에 있는 선반에 책을 꽂아 놓고 “나는 내가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중소기업의 경영 전략과 리더십 방식은 건강한 인간 이성과 실용성에 기반한다. 시간의 범위를 장기간으로 보는 사람은 적합하게 행동하고, 많은 고민을 한다. 레이저 공작기계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트럼프(Trumpf GmbH & Co KG)의 베르톨드 라이빙거 회장은 “가족이 경영하는 중소기업이야말로 지구상에 있는 최고의 기업 형태”라고 말한다. 전략적으로 본다면, 당장 자본의 이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는 경제를 선호한다. 혁신적으로 미래를 통달하면서도 독자성을 잃지 않을 길을 추구하는 것이다.

경영전문가, 비즈니스스쿨과 컨설팅에 기반해 글로벌 매니지먼트와 경제미디어들을 분석하면, 중소기업 리더십 모델은 별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반면 1부 리그에 속하는 경제국가들과 한국의 경영인, 정치인, 학자, 협회와 미디어는 이 같은 중소기업 특유의 경영 모델에 대해 관심이 높은 편이다. 중국에서도 제한적이지만 관심이 있는 편이다. 또한 유럽, 남미, 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의 신흥국가들도 이 같은 리더십 모델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중소기업의 리더십 모델은 그 잠재력이 크다. 견고하고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기업들에는 균형 잡힌 경제가 항상 중요하다. 중소기업만으로는 이 모델을 이끌어갈 수 없다. 대기업도 이같은 모델을 지향하고 나섰다. 이 같은 예로 독일의 보쉬(Bosch)그룹을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강하고 가치지향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 또 아주 책임감이 충만한 고용주가 있어 장기적인 기업의 성공을 줄곧 지향해 왔다. 보쉬는 단기적인 ‘핫머니(투기자본)’에도 의존하지 않았다. 덕분에 보쉬에서 얻는 직장은 독일에서 가장 안전한 일자리가 되었다.

또 보쉬가 성공한 데는 충성심이 있고 적극적인 직원들과 최고경영층의 지속성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실제 보쉬의 최고경영자(CEO)였던 프란츠 페런바흐(Franz Fehrenbach)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1년간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었다. 현재 회사 감독위원회 이사장인 프란츠 페런바흐는 “보쉬에서 최고경영자 자리를 맡는 것은, 인생을 건 결정”이라고 말한다.

요즘 경영학 풍조는 “통 크게 생각하자”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들의 시선은 ‘인터넷 사업의 빅5’라고 불리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또 성공적으로 기업공개(IPO)를 단행한 기업과 자본시장에 의존한 기업도 이들의 관심 대상이다.

이들 옆에 있는 가족경영 방식으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수천 개의 중소기업은 그리 큰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비록 최고의 비즈니스 스쿨과 경제미디어들이 이들을 다루지 않아도, 취업 시장의 인턴들은 여기에 발을 맞추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독일 중소기업에서 운영하는 ‘이원적 교육’에 지원하는 차세대 리더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원적 대학’이라는 교육 혁신은 거의 한국에 알려져 있지 않을 것으로 필자는 짐작한다. 이 같이 실습에 중점을 두는 독일 대학들은 세계적으로 상위대학 리스트에 올라 있지 않아서다.

이원적 교육은 대학과 기업에서 직업훈련 혹은 직업실습을 하나로 묶어준다. 즉 대학과 기업 2곳의 학습장소에서 직업훈련과 훈련에 대한 보상(임금)은 이론과 실천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독일에서 말하는 ‘이원적 교육 모델’이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이원적 교육’을 통해 그들에게 적합한 젊은 인재들을 확보하고, 내일의 재능을 키우게 된다.

빈프리트 베버

56세.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과 교수. 만하임대 실용경영조사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글로벌가족경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세계적 경영석학인 톰 피터스가 이끄는 경영컨설팅회사 ‘톰 피터스 그룹’에서 근무했다. 중소기업 경영자와 오너들에게 기업이슈와 경영전략에 대해 컨설팅해주고 있다. 독일 미텔슈탄트 성공모델 분석의 세계적 권위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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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프리트 베버 독일 만하임대 경영학과 교수 / 번역 김산 미국 조지타운대 졸업ㆍ독일 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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