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부터). ⓒphoto AP·뉴시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프랑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부터). ⓒphoto AP·뉴시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보베라이트(Wowereit) 시장은 최근 “베를린을 유럽의 ‘창업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적극적인 창업 지원을 통해 베를린에 2020년까지 약 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베를린을 새로운 ‘미래도시’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핵심 내용으로 행복한 도시, 친환경 도시, 지속발전 가능한 도시, 그리고 세계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창업의 도시를 내걸었다.

베를린공대는 유럽에서 ‘창업대학’으로 불린다. 이 대학의 크리스티안 톰젠 총장은 지난 10월 2일 서울 한 호텔에서 개최된 한·독 컨퍼런스에서 “매년 20개 이상의 스타트업(벤처창업회사)이 베를린공대에서 창업되고 현재도 68개의 스타트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베를린공대와 연관된 창업을 통해 생겨난 일자리가 1만6000개가 넘었고 이들 기업의 총 매출액이 11억유로였다”고 설명했다. 창업을 통해 수많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사례다.

컨설팅 전문업체인 맥킨지는 “베를린이 창업도시로 성공하기 위해서 ‘5대 이니셔티브’를 취해야 한다”고 베를린 시장에게 제안했다. 먼저 시장이 ‘새로운 베를린’을 내걸고 창업 열기를 확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구체적 방안으로 ‘원 스톱 에이전시’를 설립해서 관료주의의 폐해를 막으면서 창업자를 직접 지원하고, 창업단지인 ‘창업 캠퍼스’를 조성하고, 창업기금 1억유로(약 1300억원)를 확보해서 지원하고, 마지막으로 창업자·기업가·투자자들이 만나는 창업네트워크를 만들라는 것이다. 베를린 시장은 이를 수용한다고 발표했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국정슬로건을 ‘창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로 내걸고 청년 창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 경제기술부는 청년 창업을 위해서만 6700만유로(약 871억원)를 투자했다. 내건 이름이 청년 ‘엑시스트(Exist·Existenzgr ndungen aus der Wissenschaft) 창업투자’ 프로그램이다. 정부가 청년들에게 취업보다는 창업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독일에서 창업 열풍이 불고 있다. 총리가 선두에 나섰고, 베를린 시장이 진두지휘하고, 대학이 뒷받침하면서 실적을 내고 있다. 통일 이후 유럽 정치·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베를린에는 2500여개의 스타트업이 모여들어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요람’으로 떠올랐다. 베를린뿐 아니라 남부의 뮌헨, 북부의 함부르크 등 주요 도시들도 창업 붐을 일으키면서 독일 젊은이들이 창업 열풍에 뛰어들고 있다. 그 결과 독일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청년실업률이 가장 낮다고 얘기된다. 영국이 21.1%, 프랑스가 25.5%의 청년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반면 독일은 7.7%에 불과하다. 독일은 창업을 통해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

독일의 창업 붐은 유럽에서 낯선 모습이 아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11년 11월 런던 북동부의 슬럼가를 창업의 요람으로 탈바꿈시키는 ‘테크시티’ 프로젝트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캐머런 총리는 “벤처기업 창업을 통해 수십억달러를 벌어들이는 세상으로 바뀌었다”며 “새로운 일자리와 창업 기회가 있는 테크시티는 경제성장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창업을 통해 제2 대영제국을 꿈꾸자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눈을 돌리면, 핀란드의 헬싱키가 가장 눈에 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키아의 몰락이라는 위기를 창업국가로 변신하는 기회로 만들었다. 노키아에서 해고된 약 4만명의 직원들이 창업에 나서 3년 만에 핀란드의 성장동력을 만들어낸 것이다. 클래시오브클랜 등 인기 모바일 게임 개발업체 수퍼셀(Supercell)은 대표적인 핀란드 스타트업 기업이다. 창업에 대한 육성 의지가 강한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헬싱키에서 우수 인력의 창업이 계속 늘고 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도 올해 2월 신생 기업을 설립할 때 최대 2만5000유로(약 3600만원)까지 지원하는 창업자금 지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영국의 캐머런 총리,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 등 유럽의 주요 국가 정치지도자들이 창업 열풍에 목매는 이유가 무엇일까?

요약하면, 신성장동력 발굴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때문이다. 기존의 산업구조, 특히 대기업에 의존해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의 경우 삼성그룹도 지난 11월 26일 화학과 방위산업 분야를 한화그룹에 넘기며 소프트웨어산업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기존의 대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구조조정을 통해 일자리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독일의 벤츠 등 세계 각국의 대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일자리 축소에 진입했다. 성장동력이 떨어진 채 큰 몸집으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속속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핀란드의 노키아, 일본의 소니 등이 대표적 사례다.

또한 ‘제2의 기계혁명’으로 불리는 기계자동화와 로봇화로 대기업에서 대량 실업이 시작되고 있다. 제1기계혁명이 중산층 형성에 일등 공신이었다면, 제2기계혁명은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 박사는 이를 “인간과 기계와의 전쟁”으로 표현할 정도다. 기계의 진화로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 중소기업들의 혁신과 창업밖에 길이 없다. 최근 발표한 미국의 한 조사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최근 일자리의 70%를 5년 이내에 창업한 신생 기업들이 창출했다. 따라서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창업 열풍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이들 국가는 우수한 인재들이 편안한 대기업 취직보다는 리스크가 있는 창업에 눈을 돌리도록 만들고 있는가. 또 어떻게 세계 인재들을 창업을 위해 자국의 도시로 진출하도록 유혹하고 있는가.

독일의 메르켈 정부가 내놓은 것은 실용적인 창업 지원책이다. 독일 정부는 창업 한 건당 최대 1만유로, 팀 창업엔 1만7000유로, 그리고 창업을 자문하는 코치에게 5000유로를 지원한다. 창업하는 대학생들에게 월 800유로, 졸업생에게는 월 2000유로, 박사에게는 월 2500유로를 3년간 지원한다. 창업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창업자들에게 월급을 주는 개념이다. 청년들에게 창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공대의 경우 68개 팀이 연방정부 경제에너지부로부터 창업 지원프로그램인 엑시스트 지원을 받았다. 지난해 베를린공대는 첨단기술 위주의 20개 창업 기업이 성공적으로 출범했고 창업센터에서 현재 17개 창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창업 성공률이 70% 이상을 자랑하고 있다. 창업을 지원하는 독일연방정부인 경제기술부의 스테판 드로이스 박사는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이 창업해도 동일하게 지원한다”고 밝혔다. 해외 우수 인력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독일에선 기업과 연구소들 역시 창업 지원에 적극적이다. 대표적 사례가 유럽의 최대 실용연구기관인 프라운호퍼(Fraunhofer)를 들 수 있다. 사내 연구원이 개발한 기술이 ‘스핀 오프’에 적합하면 사업 아이디어 개발을 포함해서 마케팅까지 지원한다. 한 프로젝트당 지원 규모는 15만유로까지이며 프로젝트 지원 기간은 1년까지다. 사내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재정 지원을 넘어 창업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먼저 대학에 창업지원센터를 만들어서 창업 커리큘럼 개발과 창업 전담인력을 배치했다. 베를린공대는 창업생태계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원 스톱 숍(one stop shop)’을 설립했다. 창업 지원을 전담하는 기구다. 창업학생뿐 아니라 베를린공대 출신의 졸업생을 포함해서 다른 창업자, 교수, 기술자, 비즈니스 엔젤(angel) 및 투자자들이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또 독일은 다양한 창업 이벤트를 개최한다. 대표적 사례가 ‘스타트업 데이(Start-up Days)’ 행사다. 프라운호퍼뿐 아니라 막스 프랑크 연구소, 헬름홀츠, 라이프니츠 등 독일의 대표 4대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이벤트를 주관한다. 창업에 관련된 정보와 테마들을 다루고, 창업에 성공한 기업인과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창업 준비생에게 비즈니스 플랜, 기업 설립, 창업 매니지먼트 등에 관련된 자문을 해준다. 대학의 이론과 현장과의 괴리를 없애기 위함이다.

영국 정부 역시 ‘테크시티’ 관리를 전담하는 테크시티 투자기관 ‘TCIO(Tech City Investment Organization)’를 신설해 지원하고 있다. 외국의 우수한 IT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관련 기술이 있으면 외국인이라도 런던에서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비자제도를 개선했다. 또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쓰는 여러 물자는 스타트업의 창업 기업이 만든 것을 우선 쓰도록 했다. 창업에 투자하는 엔젤 투자자에겐 세제혜택을 줬다. 또 1인 창업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우편 사서함 하나만 있으면 법인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또 ‘디지털 비즈니스 아카데미’를 세워 지역 내 필요한 IT 인력을 직접 양성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같은 창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힘입어 테크시티에 현재 약 2000개가 넘는 창업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핀란드의 헬싱키는 아예 화끈하게 청년 창업자에게 1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창업지원을 통해 가장 성공한 나라가 싱가포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에서 단연 싱가포르가 앞서가고 있다. 싱가포르는 개인소득 5만달러로 한국 2만5000달러의 2배를 넘어섰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10년 전에 외국의 우수인력들이 싱가포르에서 창업을 하면 10억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시작했다. 이 결과 세계의 수많은 우수 인력이 싱가포르에 몰려들었고 수많은 창업자가 성공했다.

그럼 미래 먹거리와 성장동력으로 어떤 산업 및 기술 분야에서 창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가. 독일에서는 첨단기술 기계(전자), 클린 환경 및 에너지, 디지털, 물류와 유통, 바이오와 건강, 농업, 서비스 등 7개 분야에서다. 최근 베를린에서 성공한 창업 기업으로 ‘마인 페른부스(MFB·Mein Fernbus)’를 들 수 있다. 공공 철도와 개인 자동차 문화가 발달한 독일에서 민영 버스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한 사례다. 틈새시장을 개척해서 새로운 블루오션을 만들었다. 독일에서는 미국같이 IT 소프트웨어에 올인하지 않고 오히려 제조업에 기반한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창업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독일은 창업 성공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독일 자유 베를린대 교수이자 창업을 해서 성공을 거둔 군터 팔틴(Gunter Faltin)씨는 “국제 분업 및 인터넷의 발전으로 오늘날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창업이야말로 진정한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인도의 다르질링 차를 유럽에 수입해서 성공한 사업가로 현재 베를린에서 창업재단을 만들어 ‘창업의 대부’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벤처 창업 붐을 이끌어가고 있는 한국엔젤투자협회 고영하 회장은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장기 불황의 초입에 들어섰다”면서 “진짜 문제는 정치인과 경제주체들이 한국 경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기득권에 안주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창업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에이펙스(AFEX)의 천재원 대표는 “한국에서 소수 재벌기업의 경제 집중력이 창의와 도전을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비판한다.

결국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새판을 짜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고 진단한다. 창업 생태계를 강화해서 끊임없는 혁신만이 그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창업을 통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택환

경기대 교수·독일 본대학 언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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