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한판토스의 대주주인 구본호씨. ⓒphoto 조선일보 DB
범한판토스의 대주주인 구본호씨. ⓒphoto 조선일보 DB

LG그룹 계열사인 LG상사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친척이 대주주로 있는 범한판토스 인수를 결정한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범한판토스는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동생 고(故) 구정회씨 일가가 1977년부터 40년 가까이 운영해온 물류회사다. 매출의 대부분을 LG그룹과의 거래를 통해서 올리고 있다. 현재는 구정회씨 3남인 고(故) 구자현씨의 부인 조원희 회장과 아들 구본호씨가 각각 50.9%와 46.1%의 지분을 갖고 있다. LG상사는 현재 범한판토스에 대해 ‘실사’를 진행 중이며 곧 이사회를 열어 인수를 공식화할 예정이다. 인수 가격은 6000억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상사의 인수 추진에 대해 범한판토스의 대주주인 조원희 회장과 구본호씨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지분 매각에 반대했지만, 조 회장은 지분 매각 쪽으로 입장을 바꿨고, 구본호씨는 계속 반대하고 있다. 조 회장의 입장이 바뀐 배경에는 LG 측에서 지분 매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차츰 LG 측 물량을 줄이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범한판토스 사정에 밝은 한 재계 관계자는 “범한판토스를 인수하겠다는 것은 대주주 지분을 내놓으라는 것인데, 갑작스러운 통보에 두 사람이 크게 당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범한판토스는 여행사인 ‘레드캡투어’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다. 범한판토스가 LG상사로 넘어갈 경우 구본호씨는 여행업계 7위인 레드캡투어의 경영권마저 잃을 가능성이 높다.

범한판토스는 지난해 매출 2조400억원에 영업이익 592억원으로 물류 업계의 ‘알짜 기업’으로 통한다. 2조원 매출 중 LG전자 등 LG그룹 계열사 비중이 60%를 차지한다. 미국·중국·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40개국에 진출해 있다. 범한판토스에서 LG그룹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친척 관계 때문이다. 여기에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오촌동생 격인 구본호씨를 각별히 생각했던 것도 작용했다.

이번 인수계획 역시 구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됐다는 것이 LG그룹 안팎의 분위기다. 현재 LG 측에서 범한판토스 인수건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LG의 조준호 대표이사다. 그는 현재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오른팔로서 지주회사 대표로 있으면서 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조 대표이사는 범한판토스 인수와 관련해서도 직접 조 회장에게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본호씨는 LG상사의 인수 제의를 거부해 LG그룹과의 거래가 끊길 경우 매출 격감을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구본호씨는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범한판토스 측에서 먼저 매각 의사를 타진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LG 측이 인수 의사를 밝혀왔다고 한다. LG 측은 범한판토스 인수가 사업적 측면에서 결정된 것이지 다른 고려는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LG상사의 관계자는 “자원 개발 및 무역업과의 시너지가 크고 수익성이 높은 신사업을 발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이번 인수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전자부품을 중국 완제품 회사에 직접 파는 단순 트레이딩은 부가가치가 낮은 사양산업인 반면, 공장이 밀집한 중국 공단 근처에 창고를 짓고 완제품 업체의 재고 현황을 파악해 적정량의 부품을 가져다 두고 적기에 공급하는 사업은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이번 인수가 그룹 안팎의 주목을 받는 것은 LG그룹은 오너 일가의 일과 관련해 내부의 잡음이 밖으로 흘러나온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 LG상사의 범한판토스 인수는 그룹 내부에서조차 디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LG관계자는 “구씨 일가가 연관된 회사가 이처럼 한쪽의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거래가 오고갔던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내부에서도 다소 의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키워드

#뉴스 인 뉴스
박혁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