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쥔 한넝그룹 회장
리허쥔 한넝그룹 회장

“마윈(馬雲)이 아니라고?” 지난 2월 3일 중국의 부호 연구기관인 ‘후룬(胡潤)리포트’가 내놓은 ‘2015 중국 부호 리스트’를 본 중국인들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난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기업공개(IPO)로 일약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마윈 회장의 입지가 고작 1년여 만에 무너진 것에 놀랐다. 또 그 자리를 대신한 인물이 이름조차 생소한 리허쥔(李河君·48) 한넝(漢能)그룹 회장이라는 것에 어리둥절했다.

‘신(新)에너지 대왕’으로 통하는 리 회장은 홍콩증시에 상장된 한넝그룹의 지분 800억위안(약 14조원)과 태양광 등 비상장기업 몇 곳을 소유하고 있다. 한넝그룹은 중국 10개 성(省)과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에 자회사를 둔 중국 최대의 민영 에너지발전 기업이다.

한넝그룹을 이끄는 리 회장의 올해 총 자산은 1600억위안(약 28조원). 지난해보다 3배나 급증했다. 2위는 왕젠린(王健林) 완다(萬達)그룹 회장으로 1550억위안(약 27조원)을 기록했다. 최근 자사 온라인쇼핑몰 내 ‘짝퉁’ 논란으로 중국 정부의 질타를 받고 있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주가 폭락으로 3위로 밀려났다.

중국 재계에서 리허쥔 회장은 이렇다 할 활동이 없는 ‘뉴 페이스’로 통한다. 후룬리포트 1위에 오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리허쥔이 마윈을 누르고 최고 부호 자리를 차지했다는 소식에 중국 매체들이 “마윈을 누른 ‘흑마(黑馬·다크호스)’가 등장했다” “도대체 어디서 온 인물이냐”며 어리둥절해 했을 정도다. 그의 성장배경을 들여다보면 고향 항저우(杭州)에서 영어가이드로 시작해 거부가 된 마윈 못지않은 경영 철학이 숨어 있다.

리허쥔은 1967년 중국 남부 광동(廣東)성 허위안(河源)에서 태어났다. 객가(客家)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엄한 가정에서 자랐다. 리허쥔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좌판에서 판 물건의 이익금을 3 대 7로 나눴을 정도로 경제관념이 투철했다고 한다.

어른이 된 리허쥔은 북방교통대학(베이징교통대학)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곧바로 장사에 뛰어들었다. 가정형편이 줄곧 여의치 않아서다. 리허쥔은 1994년 베이징 중관촌(中關村)에서 전자제품을 팔아 ‘대박’이 났다. 이후 벌어들인 종잣돈 모두를 당시 유망 분야였던 광산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당시는 민간기업들이 발전소에 투자를 활발히 벌이던 시절이어서 광산에 대한 그의 관심은 곧 발전소로 옮겨 갔다.

내친김에 칭하이(靑海)와 저장성에 발전소를 지어 에너지로 최고가 되어 보자는 꿈을 꾸게 됐다. “당시 발전소를 보면 꼭 돈 찍어 내는 인쇄기처럼 유망해 보였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2002년 때마침 당 중앙 통일전선공작부(통전부)와 전국 공상(工商)연합회가 ‘광차이(光彩)사업’이라는 것을 실시하면서 민간기업인들과 서남부를 시찰했다. 중앙 정부에서 서남부 윈난성에 1억㎾급 발전소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밝혔고, 윈난성 정부가 민간 자본 투자 유치에 나선 것. 리허쥔은 곧바로 가진 돈 전부를 진안차오(金安橋) 수력발전소 건설에 투자하기로 했다. 물살이 빠른 진사강(金沙江) 중 유역에 모두 8개의 100만㎾급 수력발전소를 만들어 발전용량 2000만㎾ 이상의 발전벨트로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리허쥔이 어떤 민영기업도 손대지 못했던 대규모 수력발전소 투자에 나서자 주위의 반응은 싸늘했다. 민간기업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웃기지 말아라, 허풍 떨지 마라”는 식이었다. “당신은 못 버틴다. 웃돈을 줄 테니 발전소 유치권을 넘겨라”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를 최고 부호 자리에 올려 놓은 프로젝트가 바로 이때의 수력발전소다. 2011년 3월 진안차오 발전소는 240만㎾ 발전을 시작했다. 리 회장의 예견처럼 진안차오에선 지금도 해마다 현금 수십억위안이 흐르고 있으며, 그의 재산은 지난 1년 새 18조원이 증가했다.

리허쥔은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수수방관의 리더십’에 답이 있다”고 했다. 리허쥔이 지난 2월 4일 소후차이징(搜狐財經)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평소 직원들에게 일을 맡기면 직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든 지켜보자는 게 내 철학이다. 9년 전 진안차오 수력발전소 건설에 200억위안(약 3조5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하고 지금까지 겨우 6차례 방문한 것이 그렇다. 이 중 2차례는 지도부가 방문하는 것이었으니, 4번쯤 간 것이다. 무조건 직원들을 믿자는 거다. 또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내 방식이다.”

기업가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는 ‘버텨내는 것’을 뜻하는 ‘견지(堅持)’를 꼽았다. 버텨내지 못하는 기업가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의미다. “‘19법칙’이라는 게 있다. 기업이 90%의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베팅하면 10%의 성과를 얻지만, 마지막 고비인 10%를 버텨내면 90%의 성과를 올린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90%의 늪에 빠져 10%도 되지 않는 성과를 올린다. 하지만 나는 항상 최후의 10%까지 밀어붙였다.”

빠른 결정과 추진력 때문에 리허쥔은 ‘도박꾼일 것’이라는 의혹을 받는다고도 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리허쥔이 마카오 도박장에 줄곧 드나든다’는 루머가 도는 것을 봤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마카오에 가본 적이 없다. 기업가는 물론 도박성이 있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이런 점을 ‘모험정신’으로 표출하는 게 옳지 않겠느냐”고 했다.

리허쥔의 다음 투자지도는 태양광·풍력발전 등 청정에너지 분야다. 그는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고 도와줄 수 있는 큰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청정에너지와 태양전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10월 태양열 자동차 출시를 시작으로 자동차, 소비자 가전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후룬리포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10억달러(약 1조857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억만장자는 모두 2089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41명의 억만장자가 새로 탄생하고 95명이 억만장자 타이틀을 내주면서 222명이 순증했다. IT(정보기술) 업계에서 새로운 억만장자가 많이 나왔다. 후룬은 68개국 2089명의 부호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으며, 결과는 지난 1월 17일까지를 기준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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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디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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