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photo 김연정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 ⓒphoto 김연정

지난 9월 7일 한국 M&A(기업인수 합병)시장에 하나의 기록이 수립됐다. MBK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가 국내 유통계의 거물인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 7조2000억원은 국내 M&A시장에서 역대 최고가.

재계와 일반인이 이같은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킨 MBK파트너스의 행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만 한 거금을 움직일 수 있는 사모펀드가 국내에 있다는 것조차 사람들은 몰랐다. 여기서 주목받는 이가 MBK파트너스의 실질적인 사주인 김병주(53) 회장이다. 김 회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국무총리와 포스코 회장으로 일했던 박태준씨(2011년 사망)의 막내 사위라는 것 외에는 베일에 싸여 있다.

박태준씨는 딸 4명을 내로라하는 인사에게 결혼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철저하게 능력을 검증, 결혼을 성사시켜 ‘정략 결혼’의 표본이라고 재계에 회자될 정도였다. 박씨의 첫째 사위가 윤영각 전 삼정KPMG 회장이다. 윤영각씨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로 회계 업계에선 정평이 나 있다. 윤영각씨도 최근 사모펀드의 지분을 인수, 그쪽 분야에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 사위가 고시 3관왕으로 유명한 고승덕 변호사다. 고 변호사는 결혼 생활 20년이 안 돼 이혼했다. 지난해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한창일 때 그의 딸이 SNS에 올린 글로 파문이 일었다. 글을 올린 딸이 박 회장의 외손녀다. 결국 고씨는 교육감 선거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그 당시 고 변호사는 재벌가의 사위가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간접 피력한 적이 있다. 셋째 사위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다. 전 대통령 재임시절 결혼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들 부부도 오래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재용씨는 그후 탤런트 박상아씨와 재혼, 화제를 불러왔다. 재용씨와 결혼했던 3녀는 동일벨트 집안의 김형수씨와 재혼했다.

막내딸이 이번에 이슈가 된 김병주 회장의 부인이다. 김병주 회장은 1963년 경남 진해 출생이라고 얘기된다. 그는 10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명문 하버포드칼리지 영문학과를 나왔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획득했다. 집안 내력이나 10살 때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갔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월 발간한 ‘1조원의 승부사들’이라는 책에 김 회장에 대해 잠시 얘기가 나온다. 그 내용을 인용해 보면 그는 10세에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연히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말씀하시더군요. 무조건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요.” 그때부터 소년 김병주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러면서 문학도의 꿈을 꾸게 됐다. 평소에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책읽기’라고 말할 정도로 독서광이 됐다. ‘키 작은 동양의 아이’라고 놀림받고 소외되는 것이 싫어 운동도 열심히 했다. 중학교 시절엔 야구부에서 활약했고, 대학 농구팀에선 포인트가드를 맡았다. 한때는 영화감독과 야구 구단주를 꿈꾸기도 했다.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대인 하버포드칼리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작가의 꿈을 꾸었지만 이루지는 못했다. 이 책에는 10살 때 왜 미국으로 혼자 갔는지가 나와 있지 않다. 단 사립 명문대학을 갈 정도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으로 봐 평범한 집안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 졸업 이후의 행보는 뚜렷해진다. 하버포드칼리지 졸업 후 첫 직장은 월가의 골드만삭스였다. 김병주 회장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시절을 “밤새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다”라고 회상했다. “코피 흘린 것 외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죽도록 고생해 다시는 월가에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결심까지 했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힘들긴 했지만 20대의 그가 골드만삭스에서 얻은 경험들은 훗날 엄청난 자산이 됐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적대적 M&A의 방어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는 M&A 광풍의 현장에서 2년 정도 경험을 쌓은 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더 큰 도전을 위해 하버드대 MBA 과정을 밟았다.

하버드 MBA를 마친 김 회장은 월가로 돌아왔다. 그것도 골드만삭스라는 친정으로의 복귀였다. 그 이후 뉴욕 본사와 홍콩 지사를 거치며 자리를 굳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 반을 더 일한 뒤, 33세이던 1996년 살로먼브라더스로 직장을 옮겼다. 살로먼에서의 생활도 3년을 넘지 못했다. 1999년 당시 최고의 사모펀드 운용사로 명성을 날리던 칼라일그룹에 입사했다. 칼라일그룹 입사 후 그는 날개를 달았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에 놓여 있던 시기라 많은 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이 외국계 사모펀드의 먹잇감으로 나와 있었다. 김 회장이 주목받은 것은 2000년 한미은행 인수를 주도한 일이었다. 당시 나이 37세였고, 그의 장인인 박태준씨는 정부 주도의 기업 간 빅딜을 총책임지고 있었다. 박씨는 나중에는 국무총리가 된다.

한미은행의 인수는 칼라일그룹 역사상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거래였고, 칼라일그룹 최초의 금융회사 투자이기도 했다. 입사 1년 만에 김 회장이 성사시킨 거래였다. 3억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해 7000억원을 벌어들여 원금 대비 2.3배의 수익을 칼라일그룹에 안겨줬다. 칼라일그룹 설립 이래 거둔 가장 큰 규모의 수익이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9월 8일 서울 역삼동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홈플러스 노조원들이 영국 테스코가 MBK파트너스에 홈플러스를 매각한 것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 9월 8일 서울 역삼동 홈플러스 본사 앞에서 홈플러스 노조원들이 영국 테스코가 MBK파트너스에 홈플러스를 매각한 것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photo 연합

칼라일그룹에서 제대로 공부한 그는 독립을 결심했다. 2005년 3월 1일이다. 하버드 동문인 윤종하 현 MBK파트너스 부회장을 비롯해 김병주 회장과 인척간인 부재훈 대표와 홍콩 헤드였던 케이시 쿵, 일본 헤드였던 겐스케 시즈나카 등 6명의 칼라일그룹 멤버들과 함께 아시아 지역 펀드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15억달러짜리 ‘MBK 1호 펀드’를 만들어 사모펀드 시장에 데뷔했다. ‘MBK’란 이름은 김 회장의 영문명(Micheal Byungju Kim)에서 앞 글자를 따 지은 것이다. MBK사모펀드가 만들어질 때 재계나 금융권에선 그 막대한 자금이 어디서 나왔는가에 의문을 표시한 적도 있었다. 칼라일그룹에서 엄청난 연봉을 받았다고 하지만 재벌그룹 후손이 아닌 그가 40대 초반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박태준씨의 보이지 않은 후원 얘기가 그래서 당시 금융권에서 회자됐었다. 실제로 박태준씨는 작고할 때까지 MBK파트너스 사무실이 있는 서울 태평로 파이낸스빌딩 사무실에 개인 사무실이 있었다.

김 회장의 가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돌았다. 유력 정치인의 자제라는 ‘뜬소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문들은 그야말로 소문일 뿐 확인되지는 않았다. 가족 관련해서는 김 회장이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다.

지금까지 MBK파트너스가 인수한 기업들의 자산규모는 2013년 기준 32조원에 이르는데, 이 같은 규모는 단순 계산으로 재계 11위권에 해당하기도 한다. MBK파트너스는 한·중·일의 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키거나 가치를 높인 후 이를 되파는 방식으로 규모를 키워 왔다. 특히 최근 성장세가 도드라졌다. 2012년 당시 이곳의 자산규모가 4조원가량으로 알려졌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 3년 새 두 배 이상 자산규모를 성장시켰다. 여기에 홈플러스 자산 5조6000억원을 합치면 13조9000억원 규모로 성장하게 된다. 이는 공정위 대기업 순위 20위인 동부(14조6270억원)보다는 낮고 21위인 현대(12조5660억원)보다 높은 수치다.

MBK는 현재 1호, 2호, 3호 펀드를 운영 중이다. 1호 펀드를 통해 베이징보웨이공항지원, 루예제약(이상 중국), 한미캐피탈, HK저축은행, C&M(이상 한국), 야요이, 다사키(이상 일본),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 갈라TV(이상 대만)를 사들였다.

2호펀드로 사들인 기업은 두산테크팩, 영화엔지니어링, 금호렌탈, 웅진코웨이(이상 한국), GSEI, 뉴차이나생명(이상 중국),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 인보이스(이상 일본)이다. 3호펀드는 한국의 네파를 2013년에 사들였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몇 년간 차이나네트워크시스템즈(15억1400만달러 인수, 25억7100만달러 매각), 한미캐피탈(1억7320만달러 인수, 5억6010만달러 매각), 금호렌탈(2억3670만달러 인수, 4억1840만달러 매각), 루예제약(2억7800만달러 인수, 5억4600만달러 매각), 갈라TV(8390만달러 인수, 2억120만달러 매각) 등을 인수 후 매각했다. 이들의 투자 대비 자본회수율은 각각 290.8%, 453.4%, 183.0%, 183.7%, 310.4%였다.

이러한 수치만 보면 김병주 회장은 M&A의 귀재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햇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기 마련이다. 사모펀드사들은 어떻게 비싸게 되팔까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엄청난 금액으로 판 홈플러스 역시 영국계 대주주에게는 천문학적인 투자 수익을 안겨준 것은 사실이다. 물론 MBK파트너스는 향후 2년간 홈플러스에 1조원을 투자하는 한편 임직원 전원의 고용승계를 실시,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모펀드는 인수한 기업의 투자가치를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과 같은 생산성 향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때문에 MBK가 또 얼마의 이문을 남기고 되팔지 현재로선 장담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손해보고 팔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외국계 대주주의 ‘먹튀’를 도와주고 토종 기업들이 비싸게 사는 그런 그림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김병주 회장의 MBK파트너스가 단순한 기업 사냥꾼의 행보를 보일지, 아니면 토종사모펀드란 이름에 걸맞게 국가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김 회장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추

재벌평론가 한국도시정책학회 이사장·전 서울신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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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추 재벌평론가 한국도시정책학회 이사장·전 서울신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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