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사 ⓒphoto 연합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사 ⓒphoto 연합

산업은행 어느 지방 지점장 얘기다. 지난해 5월 화물업체 대표에게 시설자금 명목으로 114억원을 대출해주고, 그 대가로 두 자녀의 해외 어학연수비 명목으로 5700만원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이 소식을 접한 일반인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산업은행은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곳이다. 동종업계 최고의 연봉과 각종 혜택은 물론 퇴직 후 관련 회사 취업 보장 등 일반 직장인들에겐 꿈 같은 얘기들이 현실로 일어나는 직장이다.

지난 9월 금융소비자원이 금융공기업의 실태를 밝힌 보고서를 보자. 산업은행의 경영 실태를 분석한 결과 지방 근무자에게 1인당 평균 82㎡(25평) 규모의 아파트를 임차해 주고 보증금으로 1억1000여만원의 비용을 지급하고 있으며, 해외 유학자에게는 1인당 평균 1억4000여만원을 지원해주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해외 근무자에게도 교육비 명목으로 1억2000만원을 지급해 왔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특히 직원의 어학연수 명목 등으로 수십억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국내 학술연수 명목으로도 1인당 7000만원을 지출하는 등 교육을 빙자해 엄청난 비용을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소비자원은 일반 기업에서는 거의 사라진 유학 등의 제도를 국가의 세금으로도 볼 수 있는 비용을 들여가며 굳이 실시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주거래 기업의 고위직으로 재취업

지난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더 가관이다. 산업은행의 퇴직자 중 3분의 2가 주거래 기업의 고위직으로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분석한 결과, 2011년부터 현재까지 산업은행 출신으로 재취업한 퇴직자 47명 중 31명이 주거래 기업의 대표이사, 상임이사 등으로 보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31명 중 대표이사(CEO)로는 4명, 재무담당이사(CFO)로는 5명이 취업했다. 감사가 1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부사장 3명, 사장·고문·이사·상무 등의 직위로 6명이 재취업했다.

재취업 사유를 살펴보면 20명이 ‘PF사업 운영투명성 확보’였고, ‘구조조정업체 경영관리·가치제고’(2명), ‘투자회사의 경영 효율·투명성 확보’(3명) 등의 사유를 들었다. ‘회사 추천 요청’ 사유는 31건 중 3건에 불과했다. 결국 31명 중 28명이 낙하산이라는 얘기다.

산업은행 출신 인사의 낙하산 관행은 2013년 발생한 이른바 ‘동양 사태’를 비롯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산업은행의 전 총재 및 임원들 중,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 동안 주거래 기업인 동양그룹의 계열사에 부회장, 고문, 감사, 사외이사 등 고위직으로 13명이 재취업·겸임한 바 있다. 주거래은행으로서 감시와 경영투명성 확보에 목적을 두고 인사를 파견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부실을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러한 산업은행이 또 ‘사고’를 치려 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사실상 관리·운영해온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지난 10월 29일 신규출자 및 신규대출 방식으로 4조2000억원을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국책은행 자금을 대거 투입한다는 것은 세금를 퍼붓는 것과 같은 의미다. 대우조선해양은 경영 부실로 올 들어 3분기까지 3조788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파산 직전 상태다.

이를 두고 일반 국민들과 재계에선 ‘생선을 먹어치운 고양이에게 다시 생선을 맡기려는 작태’라며 산업은행의 행태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될 때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2조9000억원의 혈세가 들어간 회사다. 이때부터 이 회사를 산업은행이 관리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규모 적자를 본 다른 조선사와 달리 흑자를 봤다고 산업은행이 선전했던 회사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경쟁 조선사보다 더 많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올해 3월 산업은행을 퇴직한 김열중 전 부행장은 퇴직과 동시에 대우조선해양 재무관리최고책임자(CFO)로 재취업했지만 재무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선임 후 2개월 동안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대우조선해양이 이렇게 엉망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 경영계에선 구조적인 문제를 거론한다. 대우조선해양은 거대한 일반 기업이 아니다. 거대한 공기업, 즉 주인이 없는 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측은 전리품으로 여긴다. 결국 이들의 ‘놀이터’로 전락하고 마는 셈이다. 기업을 정상화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려는 마음보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들의 보은 창구로 활용했던 것이다. 정권과 산업은행이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인사들은 자기 사람 심기와 이속 챙기기에 급급했다.

실제로 2008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임명된 사외이사는 18명으로 교수 3명, 금융권 인사 2명, 대우그룹 출신 1명, 관피아 2명, 정피아 10명이 다녀갔다. 이 중 이명박 정부 시절 총 11명의 사외이사가 낙하산 인사로 분류됐다. 당시 사외이사는 안세영 뉴라이트 정책위원장, 김영 대선 선거대책본부 고문, 장득상 힘찬개발 대표, 김영일 글로벌포럼 사무총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다.

현 정부에서도 5명의 낙하산 사외이사가 존재했다. 신광식 국민행복캠프경제민주화추진위원, 고상곤 자유총연맹이사는 임기 종료됐으나 이종구 전 국회의원(17·18대), 조전혁 전 국회의원(18대), 이영배 인천시장 보좌관 등 3명은 현재 재임 중이다.

2000년대 초중반 세계를 호령했던 이 회사는 이처럼 낙하산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성 없는 사람들이 임원이나 고문 자리를 꿰차면서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고 그 결과 경쟁력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 및 자회사의 자문과 고문 60명에게 억대 연봉과 각종 비용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2004년부터 대우조선해양과 자회사에 자문·고문·상담역 등으로 취임한 사람은 총 60명으로 이들은 평균 88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전경 ⓒphoto 연합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전경 ⓒphoto 연합

60명이 8800만원의 연봉 받아

이 중 최고 연봉은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 2억5700만원에 이른다. 또 대우조선해양은 남 전 사장에게 2년 동안 서울 중구에 있는 사무실 임대료 2억 3000만원(월세 970만원)과 고급차량 및 운용비 등을 지원한 것으로 밝혀졌다.

자문역 중에는 산업은행 4명, 수출입은행 2명, 국정원 2명, 방위사업청 1명, 해군 장성 출신 3명도 있었다. 김유현 전 산업은행 재무관리본부장은 자문역으로 1억5200만원, 사무실 임대료 7800만원, 고급차량과 운용비 18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윤우 전 산업은행 부총재 역시 연봉 1억3800만원, 김갑중 전 부행장은 연봉 5100만원, 허종옥 전 이사는 연봉 4800만원을 받았다. 자문료 명목의 이같은 고액 연봉 지급에 대해 2013년 감사원 지적이 있었지만 산업은행의 전관예우는 끈끈했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대우조선해양에 빨대를 꽂아놓고 단물만 뽑아먹은 꼴이다.

이러한 작태는 산업은행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공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코와 KT, 은행권, 공공기관 등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현 정권 들어 ‘정피아’(정치권 출신과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들이 대거 공기업이나 유관 기관에 집중 투입되고 있어 문제다. ‘세월호’사건 전에는 ‘관피아’(관료 출신과 마피아의 합성어)가 주류를 이루다 최근에는 정피아로 자리 바꿈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태생적으로 갑질문화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 차단만이 ‘고양이에 생선을 맡기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권 3년차를 맞아 낙하산을 가득 채운 비행기가 다시 이륙 중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대통령 임기 초 임명한 공공기관장들의 임기가 끝나고 있는가 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들의 활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형 공기업 자리를 놓고 실력자 간 경쟁이 치열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계 관계자는 “5년 단임제가 정착되면서 정권 창출에 기여한 후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거나, 현직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좋은 곳으로 옮겨 가기 위해 여기저기 줄을 대고 있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정권 후반기에 낙하산 인사 문제는 더욱 심화된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은행은 1954년 정부 출자로 산업자금의 공급과 관리를 위해 세워진 정부출자 은행이다. 정부는 1953년 제정된 한국산업은행법을 기초로 당시 자본금 4000만원으로 회사를 세웠다. 설립 이후 한국산업은행은 정책 금융과 기업 대출 등을 담당하는 국책은행의 역할을 맡았다.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에 따라 사회간접자본이나 중화학공업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때문에 태생적으로 ‘갑질문화’가 자리 잡았던 곳이다.

산업은행이 특히 비대해진 것은 IMF 당시 굵직한 기업들이 무너지면서부터다. 정부는 공적자금이라는 명분으로 무너진 기업들에 ‘혈세’를 쏟아부었고, 그 관리를 산업은행에 맡겼다. 대형 그룹들이 무너지면서 산업은행이 대신 거대한 ‘재벌’이 돼버린 것이다. 이러한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2008년 6월 한국산업은행의 민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기초로 산은법이 개정됐고 이듬해인 2009년 정책금융 업무를 ‘한국정책금융공사’로 넘겼다. 같은 해 상업금융 부문만을 떼어내 민간 금융그룹인 산은금융그룹이 출범했다. 산은금융지주가 그룹 지주회사 역할을 맡았고 KDB산업은행은 KDB캐피탈, KDB대우증권, KDB자산운용, KDB인프라 등과 함께 산은금융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2010년 12월 개인대출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했고, 2011년 11월 우즈베키스탄 RBSUs를 인수했다. 현 정부 들어선 2015년 1월 KDB산업은행, 산은금융지주, 한국정책금융공사가 통합하여 현재의 통합산업은행이 출범했다. 2014년 12월 기준으로 총자산은 167조7247억원이다. 국내 5대 재벌에 맞먹는 규모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금융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 미래 성장동력 발굴, 사회간접자본 확충 등 상업금융기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장경제 보완과 시장 선도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립 취지와 무색하게 혈세를 투입한 회사에 정치권 보은 인사를 내려보내는 창구 역할이나 하고 회사를 자신들의 ‘놀이터’로 인식하는 한 제2, 제3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언제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홍성추

한국재벌정책연구원장·전 서울신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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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추 한국재벌정책연구원장·전 서울신문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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