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일 미국 오리건주 애슐랜드의 한 가게에서 남부오리건대 학생이 마리화나 냄새를 맡아보고 있다. 오리건주 마리화나 취급 상점들은 이날 처음으로 일반인 상대로 기호용(嗜好用) 마리화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photo 연합
지난해 10월 1일 미국 오리건주 애슐랜드의 한 가게에서 남부오리건대 학생이 마리화나 냄새를 맡아보고 있다. 오리건주 마리화나 취급 상점들은 이날 처음으로 일반인 상대로 기호용(嗜好用) 마리화나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photo 연합

올해부터 미국 뉴욕주에서도 의료용 마리화나를 살 수 있게 됐다. 뉴욕주 보건국은 최근 마리화나 구매를 원하는 환자들의 신청을 받아 허가를 내주겠다고 발표했다. 암·에이즈·간질·ALS(루게릭병)·파킨슨병·헌팅턴병·척추신경섬유손상 마비 등 난치병 환자로 한정되고 처방도 주 보건국 승인을 받은 의사만 할 수 있게 제한되지만 인구 2000만명의 뉴욕주에서도 마리화나가 실제 거래된 것은 의미가 크다.

미국에서는 1996년 캘리포니아를 필두로 지금까지 24개 주에서 의료용(medical) 마리화나가 합법화됐고, 그중 콜로라도·워싱턴·오리건·알래스카 등 4개 주와 수도 워싱턴DC는 오락용(recreational) 마리화나까지 허용됐다. 마리화나 반대론자들이 의료용 합법화조차 오락용으로 가기 위한 눈가림이라고 주장하며 반대하는 것을 역으로 해석해 보면 미국 전역에서 마리화나에 대한 빗장이 풀릴 날이 머지않았다고 볼 수도 있다.

눈치 빠른 기업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미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고 많은 기업들이 물밑에서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치밀한 전략을 짜고 있다. 경제구조가 고도화돼 기존 산업의 성장이 거의 멈춘 미국에서 마리화나는 산업적 측면으로 보자면 미개척 신사업이자 고수익·고성장 산업이기 때문이다.

이미 3조원 시장… 연평균 30% 성장 예상

마리화나산업은 이미 고속성장하고 있다. 2012년 10억달러 정도였던 미국 내 마리화나 관련 산업 매출이 2015년은 35억 달러(약 4조8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주(州)가 늘어나면서 2014년에는 전년에 비해 70% 넘게 신장하기도 했다. 시장조사기관 IBIS월드는 마리화나산업이 매년 30% 내외 성장해 2020년쯤이면 2015년의 네 배에 가까운 134억달러(약 14조4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리화나는 다양한 영역에서 상품화된 제품이 나오고 있다. 보통 마리화나라고 하면 담배처럼 피우는 마약이나 기껏해야 마약 성분의 진통제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제품군이 크게 다섯 가지에 달할 만큼 다양하다. 우선 의약품의 경우 실제 대마초에서 추출된 성분으로 만든 제품과 대마에서 추출하지 않고 인공적으로 합성해 실제 대마 추출품과 화학적으로 같은 성분으로 만든 의약품으로 나뉜다. 전통적으로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훈증하는 데 사용하는 ‘버즈(buds)’ 제품이 자연 그대로의 마리화나에 가장 가깝다. 마리화나를 약쑥덩어리처럼 뭉쳐 놓은 제품이 출시돼 있다. 또 하나 제품군은 마리화나 오일, 연고, 드링크처럼 마리화나의 자연 성분이나 향을 이용한 제품이다. 나머지 한 가지 제품군은 캔디, 브라우니쿠키, 껌처럼 마리화나 성분을 기호성 식품에 첨가한 제품이다.

제품뿐 아니라 마리화나 관련 서비스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마리화나를 주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앞다퉈 제작되고 앱을 통한 주문, 고객상담, 배달 서비스 등이 이뤄지면서 이 영역에서 창업의 기회도 늘어나고 신규 고용창출도 이뤄지고 있다. 주문, 배달, 상담 일자리가 늘어나면서 마리화나 관련 일자리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위드하이어(Weedhire)’ 같은 웹사이트까지 성업 중이다.

각 주(州)들도 마리화나 관련 산업을 세수로 연결하기 위해 개방하는 적정선이 어디까지인지 면밀한 검토를 계속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연방법은 마리화나에 대해 좀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만 각 주들은 마리화나 관련 세수를 의식해 다소 유연한 쪽으로 바뀌고 있다. 마리화나산업에 가장 적극적인 콜로라도의 경우 덴버시에서 마리화나 일자리 박람회를 열 정도로 적극적이다. 콜로라도는 2014년 1월부터 오락용 마리화나 판매를 미국 최초로 시작한 후 마리화나 판매 대금의 15%를 특별판매세로 거둬들여 첫 달에만 200만달러가 넘는 세수(稅收)를 올렸다. 마리화나 판매 라이선스 발급 등 각종 수수료, 2000년부터 합법화된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 세금까지 합치면 한 달에 350만달러가 넘는다. 미 전역 여행사들이 콜로라도 마리화나 관광상품을 만드는 등 관광수입까지 늘어났다. 콜로라도에서는 마리화나 관련 새로운 업종도 생겼다. 마리화나 가게 매니저, 종업원, 고객서비스 등 일반적인 일자리는 물론 술을 따라주는 바텐더처럼 여러 종류의 대마초를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버드텐더(budtender)라는 신종 직업까지 생겼다. 덴버시의 마리화나 마케팅은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연구 케이스가 되기도 한다.

FDA 승인 놓고 경쟁 치열

각 주별로 합법화가 될 때마다 주 외 제품 반출 금지, 다른 주(州)에서 생산된 원료 사용 금지 등 독특한 제한이 붙기 때문에 이를 연구하고 사전에 준비하면서 사업 기회를 노리는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해부터 영업이 가능해진 뉴욕주의 경우 블룸필드인더스트리, 컬럼비아케어 등 5개 업체가 뉴욕주 정부로부터 의료용 마리화나 제조 및 판매 인가를 신청해 인가를 받았다. 과감한 시설 투자도 이어진다. 블룸필드인더스트리는 뉴욕시 퀸스 지역에 1만1000㎡(약 6500평) 5층 규모의 실내 마리화나 재배 농장까지 만들어 놓고 새로 열리는 시장에 대비하고 있다.

마리화나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은 대부분 ‘멀쩡한’ 곳이다. 인공합성 마리화나 의약품 제조업에는 1960년 캐나다에서 설립된 밸리언트제약(Valeant Pharmaceuticals), 1888년에 시카고에서 설립된 애보트(Abbott) 등 세계적인 제약·헬스케어 회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암·에이즈·신경각화증 환자에 사용되는 ‘마리놀’이라는 의약품은 1999년 FDA(미국 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으며 미국의 마리화나 전문 제약회사인 유니메드제약(Unimed Pharmaceuticals)이 생산한다. 밸리언트가 만드는 세서메트(Cesamet)라는 의약품은 암 환자에 쓰이며 2006년 FDA 승인을 받았다.

문제는 합성성분 의약품 이외에는 아직 FDA 승인을 받은 의약품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부분의 발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 식물에서 마리화나를 추출하는 제약업에는 세계 최초로 마리화나에서 생약을 추출해 상품화한 영국 제약회사 GW제약(GW Pharmaceuticals)과 칸나생명과학(Kanna Life Science) 등 마리화나 생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신생기업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미국에서 마리화나 식물로부터 직접 추출해 FDA의 승인을 최초로 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마리화나 관련 산업의 또 하나의 영역은 마리화나 재배업이다.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주들도 대부분 다른 주에서 재배된 마라화나가 유입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각 주 법을 지키는 재배업자가 필요하다. 뉴저지와 캘리포니아에 거점을 두고 있는 테라테크(Terra Tech)라는 회사는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마리화나 재배 기술을 연구하고 캐나다 등 해외 재배와 자회사를 통한 미국 내 재배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하버사이드헬스센터’라는 회사처럼 재배업자로부터 마리화나를 사들여 다양한 마리화나 관련 기업들과 유통매장에 공급하는 전문 마리화나 유통업도 태동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무라연구소아메리카의 한상훈 부사장은 “다양한 영역에서 마리화나 관련 산업의 기회와 리스크를 분석해 사업화하려는 기업이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도 무조건 거부감을 보일 게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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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한 조선일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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