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삥메이스카페이(冰美式咖啡·아이스 아메리카노), 자농(加濃·샷 추가요)!”
2008 베이징올림픽을 반년 앞둔 겨울, 베이징에 몇 안 되는 스타벅스 점원들을 가장 경악게 한 고객들의 커피 주문법은 이랬다. 그렇잖아도 사약(死藥) 같은 ‘미제(美製)’ 커피에 에스프레소 추가라니. 주문을 재차 확인하는 점원의 얼굴에 ‘너 제정신이니?’란 표정이 읽힐 정도였다. 단순히 쓴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여름에도 맥주를 상온(常溫)으로 마시는데, 쓴 음료에 얼음까지 넣어달라는 외국인들의 요구가 이들 기준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중국 소비자들에게도 당시의 스타벅스는 ‘대략 난감한’ 곳이었다. 유리창 너머 세련된 실내장식에 반해 들어간 중국인 고객들은 커피의 쓴맛에 놀라고, 그보다 더 사악한 커피값에 두 번 놀랐다. 당시 아메리카노 한 잔은 4000원쯤 됐는데, 중국 대학 내 식당 밥값이 1인 1000원꼴일 때였다. 열이면 여덟이 메뉴를 쓱 보곤 돌아 나왔다.
그러던 ‘차(茶)의 나라’ 중국이 이제 커피 맛에 빠져들고 있다. 중국에선 식사 때도 물 대신 차를 마실 정도로 차 음료가 일상화된 곳이어서 커피전문점이 진출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시장이라는 우려도 옛말이 됐다. 외국에서 유학한 중국인들이 귀국 후에도 커피를 찾고 있고, 소통의 창구 같은 커피 체인점들의 분위기에 매료된 중국인들이 점점 이 쌉싸래한 맛에 길들여지면서 커피는 점점 차(茶)가 차지해 온 자리를 파고들고 있다.
코트라 베이징무역관에 따르면 2014년 중국의 커피 소비자는 2억5000만명이다. 소비자 규모만 놓고 보면 세계 1위 커피 소비국인 미국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2020년이면 중국의 커피 소비량이 지금보다 10배 이상 증가해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는 2014~2019년 중국의 커피소비량이 매년 18% 이상 증가할 것이란 예측을 내놓으면서,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의 예상 소비증가율(0.9%)보다 20배나 높은 수치라고 덧붙였다.
스타벅스 작년에 매장 1500개 돌파
2007년 1만5898개에 불과했던 커피 직영점 및 가맹점들도 앞다퉈 점포 늘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지금껏 외국인 밀집지와 대도시에 근무하는 화이트칼라 계층을 겨냥해온 스타벅스가 가장 과감한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매년 500개 신규 매장을 중국 곳곳에 오픈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타벅스는 1999년 중국에 1호점을 냈을 때 “(수천 년간 형성된 차 문화로) 스타벅스는 결국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힐난했던 미국 외신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첫 개점 16년 만인 2015년 중국 매장 수 1500개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커피 체인인 코스타커피도 현재 350여개에 달하는 중국 매장 수를 2020년까지 900개로 늘린다는 목표로 유동인구가 많은 쇼핑센터 등 상업시설 내 점포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커피 브랜드 ‘주커피(ZOO COFFEE)’가 중국 최대의 부동산 기업인 완다그룹의 백화점들과 손잡고 중국 내 직영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 편의점, 제과업체 등도 잇따라 저가 커피를 출시, 틈새 시장 공략에 뛰어들고 있다.
수요량이 늘자 대륙 내 커피 원두 생산에도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푸얼(普洱)차 집산지로 유명한 중국의 윈난(雲南)성에선 몇 해 전부터 수백 년 된 차 나무를 뽑고, 이 자리에 커피 나무를 심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커피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차 소비가 자연스럽게 줄었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집계된 푸얼시의 커피 재배 면적이 9만ha에 이른다. 현재 윈난성에선 중국 전체 생산량의 98%에 달하는 원두가 생산되고 있으며, 연간 생산량은 10만t에 달한다. 스타벅스는 2012년 이 지역에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자체적으로 아라비카 원두 등을 생산·가공해 세계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푸얼시 지역 농민들에게 원두 생산을 교육하고, 이를 명목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네슬레사는 지난해 이 지역 대학생 38명을 대상으로 1인당 장학금 5000위안(100만원)씩을 지급하는 ‘네슬레 장학금’을 설립했다. 네슬레는 이 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최대 4년간 지속적인 후원을 통해 학생들이 졸업 후 커피산업의 발전에 공헌하도록 독려할 전망이다. 커피 원두 재배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교육을 통해 자체적인 생산 기준화에도 나서고 있다.
중국에서는 커피 소비가 불러오는 ‘감성적 가치’가 증가하고 있어 커피 수요는 당분간 꾸준히 늘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커피교역센터는 “중국에 향후 10년 안에 1조위안(약 200조원)에 달하는 커피 소비시장이 형성되고, 2030년 내에 시장 규모가 2조~3조위안으로 확대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물론 중국 커피시장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의 커피 소비자가 2억명에 육박하지만, 커피 소비량은 1인 평균 4잔(1년)에 불과해 미국과 영국 등 주요 커피 소비국 평균엔 크게 못 미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커피 수요자들이 전국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점포마다 고수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또 ‘충성 고객’을 다량 보유하고 있지 않은 브랜드가 섣불리 진출했다가 브랜드 파워 부재와 높은 임대료 때문에 경영난에 시달리게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진 커피 수요량이 많은 고소득층이 몰려 있는 대도시 등에 커피체인점을 내는 것이 안전하다”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가격을 대폭 낮춘 저가형 테이크아웃 커피숍이 미래 진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