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연초부터 한국 주식시장이 혼돈에 빠졌다. 2015년 12월 30일 1961.31포인트로 폐장한 코스피지수가 1월 27일 1897.87포인트까지 주저앉았다. 18일(개장일 기준) 만에 63.44포인트가 내려앉았다. 더구나 1월 21일에는 1840.53포인트까지 떨어지면서 긴장감을 높이기도 했다. 올해 초 중국 경제성장률 추락 쇼크와 미국 금리인상 여파까지 겹치며,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시장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도 그 여파로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주식시장을 조금 넓게 보면 지난 수년간 사실상 박스권에 갇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1년 코스피가 2230포인트를 찍은 이후 약 5년간 대략 1800~2200포인트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방향성을 찾지 못했다. 같은 기간 미국 S&P500 지수가 50% 올랐고, 일본 니케이 225지수는 무려 65%나 오른 것과 비교해 한국 증시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왕따 시장으로 분류된다. 이처럼 한국 증시가 게걸음질하며 오도 가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경기 부진과 그에 따른 기업실적 둔화로 진단할 수 있다. 이 같은 외부환경이 주식시장에서 수급 상황으로 수년째 나타나고 있다. 개인의 펀드 환매가 강해짐에 따라 국내 기관들의 매수 여력이 계속 위축됐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사자와 팔자를 거듭하며 결국 박스권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가 언제까지 이처럼 답답한 행보를 하게 될까. 어떤 계기가 있어야, 또 언제쯤 이러한 횡보장세를 끝낼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지난 수년간 박스권에 갇힌 한국 증시가 단순히 일시적인 수급 요인에 억눌려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내외 경제 여건과 기업 상황상 당연한 주가 부진을 겪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한국 시장 저평가?

결론부터 보면, 적어도 지금의 한국 주식시장이 무조건 저평가된 상태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증거들이 더 많아 보인다. 최근 몇 년간 기업들의 이익이 빠르게 둔화되고 있는 추세가 바로 그 증거다.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들의 합산 영업이익이 정점은 2010년이다. 당시 131조3000억원 정도였는데, 지난해 이 금액은 103조원 정도로 내려앉았다. 상장기업들의 현재 이익규모가 2007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두 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상장기업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이보다 더 낮다는 점이다. 이 두 회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업들의 이익규모는 사실상 2004년 수준으로 추락했다. 잘나가는 몇 개 기업을 빼곤 대다수 기업의 이익이 10년 전으로 후퇴해 있다는 의미다. 이익의 절대규모만이 아니다. 기업의 수익성도 함께 추락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한국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은 2010년 평균 6.7%에서 5%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이처럼 어떤 지표로 보든 지금 한국 기업들의 현실이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상황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한국 증시가 박스권을 오르내리며 버텨 준 것은 현저하게 낮아진 금리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현재 한국 증시의 주가수익비율, 즉 PER는 10배다. 이를 기준으로 본 주식의 평균 기대수익률은 10% 정도이다. 만약 금리(가장 안전한 국고채 10년물 기준)가 10%였다면 사람들이 굳이 주식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금리가 낮아져 2%(만기 10년의 국고채 금리 1.99%)가 되면 그 차이는 무려 8%포인트나 벌어지게 된다.

이른바 무위험자산 수익률보다 주식 기대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기업이익이 완전히 거꾸로 가는 것만 아니라면’ 그래도 주식을 살 만한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 대목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바로 ‘기업이익이 거꾸로 가지만 않는다’는 전제이다. 따라서 우리 주식시장의 체질이 좀 더 강해지고, 앞으로 주가가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익이 좋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들을 둘러싼 ‘경기 개선 여부’도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가령 기업이익이 늘게 되면 ‘금리’나 ‘유가’가 조금 오르는 것 정도는 투자자들이 감내할 수 있다. 사실 경기가 좋고 세상일이 이래저래 잘 풀릴 때에는 금리가 조금 튀는 게 정상이다. 돈이 잘 돌고 경제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그 같은 상황이 바로 전개될 것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즉 경기가 좀 더 확장되고, 또 기업이익이 증가세로 돌아서고 인플레이션도 조금씩 일어나는, 바로 그러한 환경이 조성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유는 많다. 우선 우리의 수출을 가장 많이 받아주는 중국이 올해도 여전히 성장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실물경기가 아직 그런 대로 괜찮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신흥국 위기 때문에 앞으로도 안심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경기순환주기로 볼 때 지금 미국은 경기가 바닥을 딛고 일어선 지 벌써 7년째가 된다. 순환구조상 더 이상의 경기 확장이 부담스러운 시점을 향해 가고 있다.

경기순환주기 약세, 시장도 녹록지 않아

한국 증시가 이런 고비를 넘어 다시 힘차게 일어서려면 결국 ‘경기’와 ‘기업이익’이라는 ‘기본 재료’가 뒷받침돼야 한다. 올해 들어 주식시장을 강타하고 있는 단기 충격 요소들은 ‘산유국들의 통화가치 하락’과 ‘달러 강세’, 또 ‘유가 하락’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 원인은 경기부진 때문이다. 위안화 약세와 중국을 둘러싼 모든 이슈들도 따지고 보면 세계 경기가 구조적이든 순환적이든 약세에 접어들면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2016년 한국 증시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적은 미국의 금리인상만은 아니다. 추가 금리인상조차 머뭇거려야 할 정도로 미국과 세계경제가 어려움에 빠져든 디플레이션(저물가 경기부진) 환경이다. 유가와 금리가 조금 올라도 올해 기업이익이 개선된다면 주식시장에는 희망이 있다. 아무튼 올해는 코스피 6년의 긴 박스권 탈출 여부를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해야 한다. 지난 2007년은 한국과 세계경제의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여전히 내리막길 선상에 있다면 올해도 한국 주식시장 상황은 분명 녹록하지 않다.

그렇다면, 그래도 지금의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 기회라는 게 존재할까. 분명한 건 ‘올해 환율과 유가가 수차례 요동치며 투자자들을 더욱 헷갈리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장에 풀려 있는 돈들이 환율과 원유시장의 작은 변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 선물시장에서 유가가 바닥점에서 20~30%씩 급등락할 때마다 이와 연동해, 주가 역시 기술적 변동성이 커질 것이다. 국제 원유시장과 한국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급변하는 국면 때마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시장에 대처한다면, 야구로 치면 홈런이자 2루타 같은 장타는 안 돼도 내야안타 정도를 칠 수 있는 상황은 만들 수 있다.

한국 증시의 근본 추세는 2016년이 됐다 해도, 여전히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주변국 경제가 한결같이 구조적 문제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희미한 빛조차 찾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쟁터에서와 같이 투자 세계에서도 창과 방패를 사용할 때가 각각 다른 것처럼, 올해 주식시장 역시 공세적일 때와 방어적일 때가 뚜렷할 것으로 보인다. 굳이 우세를 점치자면 가능한 상처를 적게 입는 방어적 전략이 투자자에게 더 유익해 보인다. 투자 기회를 놓치는 한이 있어도 위험을 적게 떠안는 게 속은 편한 시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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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진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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