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태양의 후예’ 13회분. 서대영(진구 분)이 자동주행 기능을 켜고 달리는 차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다.
KBS 2TV ‘태양의 후예’ 13회분. 서대영(진구 분)이 자동주행 기능을 켜고 달리는 차에서 입맞춤을 하고 있다.

데이트 중인 남자와 여자가 차로 이동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이 울리자 그는 자동운전 기능인 크루즈 버튼을 눌렀다. 차가 스스로 운전을 하고 있는 사이 남자의 상체는 완전히 여자 쪽을 향했다. 남자는 두손으로 여자의 얼굴을 감싼 채 여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지난 4월 14일 종영된 KBS 2TV 드라마 ‘태양의 후예’ 13회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특전사 하사관 서대영(진구 분)과 연인 윤명주(김지원 분)의 자동차 속 키스신은 1분 동안 35.2%라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이날 가장 높은 분당 시청률을 달성했다. 이 장면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면서 ‘운전 중 키스’를 가능케 한 자동운전 기능도 관심을 끌었다. 드라마 속에 등장한 이 기능은 현대차 제네시스 EQ900의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 일부 시청자들은 KBS 시청자 소감란에 “부럽다” “나도 저렇게 달리는 차 안에서 키스해 보고 싶다” 등의 의견을 남겼다.

2010년 방영된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거품키스’도 명장면으로 꼽힌다. 배경이 PPL인 카페베네였고 방송 이후 전국 매장의 매출이 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드라마 속 연출된 장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제품 등을 간접광고 하는 것을 PPL(Product Placement)이라고 한다. 지상파 간접광고 시장은 2010년 1월 방송통신위원회의 허용 조치가 이뤄지면서부터다. 허용조치 직후에는 제작비 지원 없이 드라마 소품 대여 개념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차츰 신장해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간접광고 매출액은 2010년 30억원에서 2011년 174억원, 2012년 262억원, 2013년 336억원, 2014년 415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지난 4월 11일부터는 그동안 금지돼 왔던 주류·대부업 등도 간접광고가 가능해져 PPL의 영역이 더욱 늘고 있는 추세다.

드라마를 통한 간접광고는 많은 부분 허용되는 추세지만 작품의 질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 전체 제품 로고를 방송시간의 5% 이내에서 노출시켜야 하고, 한 브랜드당 30초 이내로 노출시켜야 한다. 화면 전체를 덮는 브랜드 전면 노출도 해서는 안 된다.

PPL 전문 대행사만 50여개

드라마 PPL은 왜 필요할까. 드라마 제작사의 경우 작품성과 시청률을 최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제작비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일반 드라마의 경우 5억~6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다. 이 중 60~70%는 방송사가 부담한다. 나머지는 제작사가 자체 조달해야 하는데 드라마 제작비 조달의 가장 용이한 통로가 PPL이다.

PPL이 많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태양의 후예’의 경우를 보자. ‘태양의 후예’는 제작비만 총 130억원이 들었다. 16부작에 회당 8억원꼴이다. 통상적인 드라마 제작비가 5억~6억원임을 감안하면 방송사에서 받는 금액을 제하고서도 PPL로 충당해야 할 제작비가 수십억원에 이른다. 이런 제작비 문제를 협찬사를 통해 해결하는 게 PPL 대행사의 역할이다. 때문에 PPL은 협찬의 개념을 넘어서 드라마 제작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PPL은 통상적으로 1개의 제작사와 다수의 협찬사, 그리고 그 협찬사들과 계약한 대행사들이 함께 일한다. 제작사와의 계약을 대행사가 협찬사 대신 맺는다. 제작비는 협찬사에서 제작사로, 일부(통상적으로 15%)가 PPL 대행사로 들어간다. 일단 PPL을 주도하는 것은 PPL 대행사다. 현재 국내에는 50개 정도의 PPL 전문 대행사가 활동하고 있는데, 국내에 전문 PPL 대행사가 자리 잡기 시작한 지는 5~6년에 불과하다. 마케팅 컨설팅을 하면서 PPL 대행까지 하는 중소업체를 포함하면 국내 PPL 대행사는 200개가 넘는다.

PPL 대행사의 역할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들은 대본을 미리 읽는 등 최초 기획부터 각색, 촬영, 연출 등 드라마 제작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의 작품성도 살리고 기업의 목적도 만족시킬 수 있는 간접광고 장면을 만들 수 있도록 중재자 역할을 한다. ‘태양의 후예’ 후속작으로 방영될 예정인 ‘국수의 신’의 PPL을 담당하고 있는 프리랜서 마케팅 PD 임종민씨는 “드라마는 확실히 히트를 친다는 보장이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흥행이 예상돼도 쉽게 큰 액수를 투자하기 어렵다”고 했다. “누가 봐도 잘될 작품에는 협찬사가 몰리는 반면 그렇지 않은 작품은 협찬사를 구하러 다녀야 하는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드라마를 위해서는 협찬사가 참여하기 쉽도록 일종의 기대수익을 전략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이런 구조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PPL 대행사의 역할입니다.”

협찬사의 요구를 드라마에 얼마큼 잘 녹이는가도 성공적 PPL을 위한 필수 과제다. 제작비가 중요하다 보니 드라마 스토리의 부분부분이 협찬사의 요청에 따라 수정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에서 차량을 협찬해준 현대차의 경우를 보자. 자동차 PPL의 경우 드라마 한 편당 한 협찬사가 3억원을 넘게 제작비를 부담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태양의 후예’ 협찬에는 현대차가 3억원이 훨씬 웃도는 금액을 지원했다고 한다. 현대차나 드라마 제작사인 ‘뉴’ 측은 ‘태양의 후예’에 현대차가 구체적으로 얼마의 제작비를 부담했는지에 대해 “계약 위반 사항”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태양의 후예’ 전체로는 약 10개의 협찬사가 3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작비 지원이 클 경우 일반적으로 협찬사의 요구사항도 커진다. KBS 촬영 관계자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태양의 후예’ 자동주행 기능 장면에 대해서도 제작사와 협찬사 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제작사 측에서는 키스신은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PPL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는 입장이었지만, 현대차 측에서는 자동주행 기능이 부각되는 PPL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제작사는 협찬사의 요구를 수용하고 ‘자동운전 키스신’을 절묘하게 연출해냈다.

요즘 들어 국내 기업들은 PPL을 단순한 구매욕 자극뿐 아니라 홍보수단으로도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태양의 후예’의 경우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면서 협찬사 입장에서는 해외 홍보에서도 큰 효과를 봤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간접광고 효과로 인해 드라마 속 한국 물건을 찾는 해외 소비자층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극중 유시진 대위 역을 맡은 송중기의 차로 알려진 투싼의 판매량은 드라마 방영 중이던 지난 3월 기준 전년 대비 약 20%가 늘었다. 송혜교가 극중 발랐던 아모레퍼시픽 ‘라네즈 투톤 립바’의 매출 역시 지난 3월 기준 전월 대비 556%가 증가했다.

PPL 가격은 상황마다 천차만별

협찬사와 제작사 간의 제작 지원비 협상은 PPL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에서 정한 기준에 따르면, ‘상품 로고가 노출되는 한 컷에 2500만원(레벨2 기준)’이 PPL 최소 금액이다. 여기서 레벨2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정해놓은 간접광고의 수준을 말한다. ‘상품을 레벨2로 간접광고한다’는 것은 드라마 등장인물이 상품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의미이며, 레벨1은 상품이 배경으로만 배치돼 노출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준은 기준일 뿐이고 드라마 작가와 출연배우의 인지도나 시청률, 방송시간 등에 따라 PPL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주말에 방영하는 미니시리즈의 경우 1회 노출 가격이 최하 2500만원인 반면 아침과 저녁에 방송하는 일일드라마는 주2회 노출 가격이 최하 1500만원이다. PPL 대행사들은 드라마를 ‘미니·주말·저녁일일·아침일일’ 등 모두 4종류로 분류해 각각의 PPL 기대 효과를 제시해 놓고 있다. PPL 대행사 관계자들은 이런 드라마 분류표를 갖고 다니며 계약서 등을 쓸 때 활용한다.

PPL의 종류는 직접적인 상품이나 로고 노출 이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제작 지원을 한 협찬사 이름을 노출시키는 것은 일반적이다. 흥미로운 PPL 종류로 ‘직업군 투입’도 있다. 이는 드라마 주인공이 협찬사의 직원으로 등장하는 경우다. 이런 PPL의 단가는 로고 노출보다도 높은 편이다. 대본 자체가 협찬사를 배경으로 하는 등 협찬사 중심으로 가기 때문이다. 미니시리즈와 주말연속극의 경우 한 편당 4억~8억원을 받는다. KBS 주말연속극의 경우는 편당 8억~10억원 수준이다. 일일저녁드라마는 1억5000만~3억원, 일일아침드라마는 1억~1억5000만원 선이다.

현대차 홍보팀 권용준 부장은 “협찬사 입장에서 PPL은 철저한 투자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에 투자금액에 대해서 예민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 제작비 지원금액은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제작비 지원금액에 따른 상품 노출빈도수·연출방법 등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데 협찬사와 제작사가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많고 복잡한 사안이 많다 보니 PPL 전문 대행사 없이는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 국내 PPL 대행 1호 ‘어지니스’ 최충훈 대표

“3D업무… 제작현장서 쪽잠으로 날 새기도”

“드라마 제작사와 협찬사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협찬사는 제품 노출을 많이 하고 싶어하고 제작사는 작품성과 방송심의에도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죠.”

PPL 대행사인 ‘어지니스’ 최충훈 대표는 “제작사와 협찬사 사이의 ‘얇은 선’에 들어가서 조율을 해내는 게 우리 PPL 대행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2008년 설립된 ‘어지니스’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PPL 전문 대행사로 그동안 ‘꽃보다 남자’ ‘왔다 장보리’ ‘각시탈’ ‘왕가네 식구들’ 등 60여개 드라마의 PPL을 맡아 왔다. 최 대표는 PPL 대행 업무를 ‘3D’라고 표현했다. 방송 현장에 늘 붙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행사 직원들은 쪽잠으로 날을 새는 경우도 많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일도 허다하다. 정해진 틀만 따르면 되는 일반 광고 촬영과 달리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순발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PPL 대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 대표는 2010년 PPL 규제가 풀리기 전인 1998년부터 PPL사업을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소품 보조, 카메라 보조 등으로 일하다 미국 할리우드의 PPL 사례를 본 게 계기가 됐다. 그는 PPL이 무엇인지 드라마 제작사와 기업을 찾아다니며 프레젠테이션부터 했고, PPL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대행사를 차려 많은 PPL을 만들어냈다. 스스로 PPL 대행 1호를 자처하는 최 대표는 성공적인 PPL에 대해 “작품과 상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라고 했다. 협찬사와 제작사 사이에 매끄러운 조력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는 변수가 많다”며 “PPL의 경우 대본에 있는 아이디어와 당초 협찬사가 낸 아이디어, 그리고 실제 촬영에 적용되는 아이디어가 다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화제가 됐던 ‘태양의 후예’ 자동자 운전 키스 장면과 관련해 “제작사 입장에서는 두 가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운전하면서 키스하는 장면을 넣는 것은 사실 안전이라는 문제가 걸립니다. 그리고 감정몰입이 필요한 키스 장면에 PPL을 넣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웠겠죠. 하지만 협찬사의 입장도 중요합니다. 결국 억지로 푸느냐 자연스럽게 푸느냐의 차이죠.” 그는 “두손을 놓고 달리는 차에서 키스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로맨틱한 요소인데 만약 키스로 접근하지 않고 다른 장면에 자동운전이 들어갔다면 억지스러웠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광고주의 니즈(needs)도 충족하면서 로맨틱한 장면까지 뽑아냈으니 이것이 바로 좋은 PPL의 정석”이라고 했다.

키워드

#포커스
김정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