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8일 고객들의 모습을 찾기 힘든 인사동 SM면세점.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8일 고객들의 모습을 찾기 힘든 인사동 SM면세점.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새롭게 문을 연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여의도 63빌딩에 문을 연 갤러리아면세점63과 삼성그룹과 현대산업개발그룹이 합작한 HDC신라면세점 등 대기업 계열 신규 면세점은 물론, 하나투어가 종로구 인사동에 차려 놓은 SM면세점 등이 시작부터 모두 적자에 빠져든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또는 ‘땅 짚고 헤엄치는 사업’으로 불렸다. 그동안 서울시내 면세점은 매장을 열기만 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 통했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관세청이 실시한 면세점 세 곳의 신규 특허권 입찰과, 잠실롯데월드면세점·SK워커힐면세점의 특허 만료에 따른 두 곳의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입찰은 기업 전쟁에 비유됐을 만큼 치열했다. 결국 당시 벌어진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 전쟁에서 승자는 삼성(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 신세계, 두산, 한화, 하나투어였다. 이들이 기존 면세점 업계의 강자인 롯데와 SK를 밀어내고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거머쥔 것이다.

당시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땄다’는 이유만으로 이들 신규 면세점 운영 기업의 주가가 폭등했을 정도로 면세점은 기업들 사이에서 돈 되는 사업으로 통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들 역시 투자자들에게 매수를 추천하는 등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기도 했다.

신규 면세점 모두 적자

하지만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들이 실제 영업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면세점 신규 개점 과정에서 국내외 고객들의 구매 선호도가 높은 브랜드들을 제대로 유치하지 못했다.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 등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해외 주요 유명 고가 브랜드들이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자를 외면했다. 현재 이들 주요 해외 유명 고가 브랜드들은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에 입점하지 않고 있다. 또 중국인 관광객들의 구매 선호도가 큰 일부 화장품 브랜드 등 한국의 유명 브랜드들조차 제대로 입점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들을 심각한 동반 부진의 늪에 빠뜨렸다. 현재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모두가 적자 영업 상태다. 한화그룹의 면세점 계열사인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한화갤러리아면세점63’을 열어 영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올 1분기(1~3월) 실적이 엉망이다. 3개월 매출 437억4165만원에 무려 86억9777만원에 이르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삼성과 현대산업개발이 합작해 용산역에 만든 HDC신라면세점 상황도 초라하긴 마찬가지다. 영업을 시작한 후 약 50억원대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월 31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직전 사업연도 말을 기준으로 HDC신라면세점은 영업적자 35억400만원에 당기순손실이 22억5400만원이나 됐다. 올 2월 인사동에 문을 연 하나투어의 SM면세점 상황도 심각하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1분기 성적표는 190억5700만원대 매출에 영업적자가 67억690만원대에 이르고 있다. 증권사들이 예상했던 50억원대 영업적자보다 실제 실적이 20%나 더 추락한 것이다.

이들 외에도 올해 5월 명동과 동대문에 각각 문을 연 신세계면세점과 두산면세점 역시 현재 실적 악화에 신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의 적자 상황은 빠르게 해소될 수 있을까. 업계 관계자와 시장 전문가 대부분 “쉽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취재에 응한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면세점을 개점할 때조차 입점시키지 못한 루이비통·에르메스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 유치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그나마 HDC신라면세점이 최근 루이비통 하나를 유치했을 뿐, 샤넬이나 에르메스 등 유명 브랜드를 하나라도 유치한 신규 시내 면세점이 한 곳도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기업들이 면세점 사업에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붓기에는 투자여력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했다.

더구나 ‘올해 서울시내 면세점을 지금보다 4곳 더 늘리겠다’는 정부 정책은 신규 면세점 사업자들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지난 5월 사업을 시작한 신세계와 두산을 포함해 서울시내 면세점은 현재 총 9개다. 여기에 4개가 추가되면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시내 면세점은 13개가 된다.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6개에 불과하던 서울시내 면세점이, 1년 만에 두 배가 넘는 13개로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내 면세점이 늘어나는 것보다 신규 사업자들이 더 고민스러워 하는 부분이 있다. 올해 추가될 4곳의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자 후보 중 롯데와 SK가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면세점시장에서 롯데와 SK는 강자 중 강자로 꼽히는 곳이다. 롯데는 명동과 잠실(6월 30일 폐점 예정), 삼성동에 대형 시내 면세점을 운영해온 업계 1위 사업자다. SK 역시 1992년부터 올해 5월까지 24년 동안 워커힐면세점(5월 폐점)을 운영하며, 지난해에만 3060억원대에 이르는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롯데는 특허가 만료되는 잠실롯데월드면세점 특허권을 신세계에 뺏겼고, SK 역시 당시 특허가 만료되는 워커힐면세점의 특허권을 두산에 뺏겼다. 롯데와 SK, 두 기업은 올해 추가될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를 반드시 따내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용산역 HDC신라면세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용산역 HDC신라면세점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몇 년 후 실패한 면세점 등장할 수도

만일 롯데와 SK가 각각 잠실과 워커힐 면세점 사업권을 다시 확보하면 시장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루이비통과 샤넬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과 오랫동안 관계 맺고 있어, 이들 브랜드의 면세점 입점에 큰 무리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이미 탄탄한 영업망을 갖고 있다. 중국 관광객 유치에서 지난해 말 이후 면세점 영업을 시작한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들을 압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규모 투자에 나설 가능성 또한 크다.

가뜩이나 고객 유치와 영업 부진, 실적 악화와 해외 유명 브랜드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규 면세점들에 더 힘든 시장 상황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최근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들의 상황만 보면, 몇 년 후 실패하는 곳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적자 등 현재의 열악한 실적보다, 앞으로 예상되고 있는 경쟁력 약화가 이들을 더 괴롭힐 것”으로 지적했다.

지난 6월 7일, 기자는 서울 용산역 HDC신라면세점을 찾았다. 이곳은 최근 문을 연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중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곳으로 꼽힌다. 기자는 11시30분부터 약 1시간을 이곳에 머물렀다. 영업을 시작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됐지만, 입점할 업체가 유치되지 않아 면세점 곳곳이 여전히 비어 있었다. 거의 모든 층에서 고객보다 직원이 많아 보일 정도로 한산했다.

같은 날 오후 1시, 인사동 SM면세점을 찾았다. 이곳은 HDC신라면세점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시각 럭셔리 부티크와 명품 시계 매장으로 구성했다는 지하 1층에는 고객이 채 7~8명도 안 됐다. 또 놀랍게도 기자가 20분 가까이 지켜본 면세점 3층 선글라스 매장에서는, 그 시간 동안 물건을 사거나 고르는 고객이 한 명도 없었다. 면세점 내 모든 층에서 물건을 사러온 고객보다 매장을 지키는 직원들이 훨씬 많았다. 면세점이 한산하다 못해 고요했다. 초라한 이 두 면세점의 상황이 최근 문을 연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들의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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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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