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중국 위안화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최근 다니던 직장을 은퇴한 60대 초 이모씨는 지난 6월 9일 한국은행의 금리인하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퇴직금을 비롯해 그간 차곡차곡 모아둔 정기예금 이자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데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25%로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것. 세금을 떼고 나면 사실상 남는 게 없는 ‘제로금리’다. 그렇다고 부동산을 매입할 목돈은 없고, 구조조정 소식이 쏟아지는데 주식은 투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마땅한 대책을 곰곰이 궁리하다가 발견한 것은 한국에 진출한 중국계 은행의 정기예금이다. 평소 거래하던 한국계 시중은행보다 거의 1%포인트 가까이 높은 정기예금 금리를 보장하고 있다는 소식에 솔깃했다. 게다가 시중은행과 같이 5000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도 해준다고 하니 금상첨화였다. 시중은행보다 은행지점이 거의 없는 것을 제외하면 불편할 것도 없었다. 이씨는 “어차피 은행 정기예금은 1년에 한 번만 찾아가면 되니 지점이 많이 없다고 해서 별로 불편할 것도 없다”며 “1%라도 더 얹어 준다는데 돈에 국적이 어디 있냐”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전격 금리인하에 은퇴자 생활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9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를 개최해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25%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메르스(MERS) 사태가 터졌던 지난해 6월 이후 1년 만에 이뤄진 기준금리 인하로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들 역시 일제히 여수신 금리인하에 착수했다. 이자생활자 입장에서는 세금 떼면 남는 게 없는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가 열린 셈이다.

‘제로금리’ 시대를 헤쳐나갈 대안으로 중국 위안(元)화 예금이 부상하고 있다. 말 그대로 한국 원화 대신 중국 위안화로 저축하는 예금이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6월 13일 기준 국내 4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대략 1.1%(KEB하나)에서 최대 1.5%(KB국민)에 머물고 있다. 이보다 긴 3년 만기 정기예금 역시 1.45%(우리)에서 1.6%(신한)에 그친다.

5000만원까지 예금 보호

반면 국내 진출 중국계 은행에서 취급하는 위안화 정기예금은 국내 시중은행보다 거의 2배 이상에 금리가 형성돼 있다. 중국 최대 중국공상(工商)은행의 위안화 1년 만기 정기예금은 2.7%, 중국 최대 외환거래 은행인 중국은행의 위안화 1년 만기 정기예금은 2.5%에 금리가 형성돼 있다.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높은 정기예금 금리를 고시하고 있는 KB국민은행(1.5%)보다 대략 1%포인트 이상의 금리를 내걸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국계 은행들은 한국과 중국의 금리 차를 겨냥해 한국 개인 고객들을 대상으로 고금리 상품을 내걸고 판촉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중국공상은행은 지난 4월 10일부터 오는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금리우대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3만위안(약 530만원) 이상을 위안화 현찰로 예치하는 고객에 한해 1년 만기 정기예금에 3.3%에 달하는 고금리 혜택을 주고 있다. 6개월 만기상품의 금리 역시 2.8%로 한국계 시중은행에 비해 월등한 고금리다.

중국은행도 지난 4월 1일부터 고금리 정기예금 상품을 출시하고 알음알음 한국계 시중은행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중국은행의 경우 위안화 5만위안(약 890만원) 이상을 1년간 예치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최대 3.3%의 우대이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은행의 1년 만기 공시이율인 2.5%보다 무려 0.8%포인트나 높은 이율을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고금리 상품을 내걸고 중국계 은행은 한국인 대상 영업도 강화하고 있다. 은행 창구에 대개 한국인 직원이나 조선족 직원이 앉아 있기 때문에 상품상담을 하는 데 있어서도 언어적인 불편함이 없다. 지난해 한·중 FTA체결과 함께 중국계 은행들의 공격적인 지점 개설로 국내 지점망은 이미 전 세계 어느 도시보다 많다. 중국 4대 국유은행인 중국공상은행,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중국은행이 모두 국내에 지점을 개설하고 있다. 이 밖에 업계 5위로 위안화 청산결제은행으로 지정된 중국교통(交通)은행도 국내에 지점을 열고 있고, 최근에는 10위권 밖의 중국광대(光大)은행까지도 국내에 지점을 열었다.

이들 은행은 대부분 기업금융 및 송금 업무를 주로 처리하지만, 중국공상은행과 중국은행은 개인을 상대로 국내 시중은행과 똑같은 영업을 하고 있다. 주로 중국계 근로자 및 조선족의 예금·송금 업무 등을 처리하는 터라 전국 주요 지점에 지점을 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공상은행의 경우 서울 태평로를 비롯해 대림동, 건대입구, 부산에 지점을 내고 있다. 중국은행은 종로구 서린동 영풍빌딩을 비롯해 구로동, 경기도 안산, 대구 등지에 지점을 두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최대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똑같다. 예금보험공사가 최대 5000만원 한도까지 예금자보호를 해주고 있다. 중국공상은행은 중국 최대 은행이자,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은행이다. 중국은행은 중국 최대 외환거래은행이자, 홍콩달러를 찍어내는 홍콩의 3대 발권은행 중 하나다. 중국공상은행과 중국은행은 지난 5월 기준 3조2000억달러(약 3756조원)의 세계 최대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 정부가 최대 주주다.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사실상 망할 염려가 없는 은행들이다. 중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한국계 시중은행들과 마찬가지로 5000만원 한도까지 똑같은 예금자보호가 적용된다”고 말했다.

위안화 환율 변동은 변수다. 원화 소지자의 경우 위안화로 바꿔서 예치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전수수료 등을 감안해야 한다. 또 만기 시 위안화 환율이 급락할 경우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가령 만기 시 5만위안을 찾는다고 치자. 위안화 환율이 1위안당 대략 180원인 현 수준에서 유지되면 약 900만원을 찾을 수 있지만, 반대로 환율이 급락해 1위안당 160위안에 형성되면 실제 수중에 쥐는 돈은 800만원에 불과하다.

물론 그 반대로 위안화 환율이 1위안당 180원에서 200원대로 오르면 수중에 쥘 수 있는 원화는 1000만원이 된다. 국내 시중은행 대비 1%포인트 이상의 고금리 혜택은 물론 환율 상승에 따른 짭짤한 환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실제 10년 전인 2006년 1위안당 117원하던 위안화는 10년 후인 2016년 현재 180위안대까지 치솟았다. 20년 전인 1996년에는 위안화 환율이 1위안당 96원으로, 지금의 딱 절반이었다. 결국 선택은 투자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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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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