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디즈니랜드호텔
중국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디즈니랜드호텔

지난 6월 16일 중국 상하이 디즈니랜드가 정식 개장했다. 미·중 합작으로 51억달러(약 5조8000억원)가 투입돼 아시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로 태어난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핵심 시설은 다름 아닌 호텔이다. 상하이 디즈니랜드에는 디즈니랜드호텔과 토이스토리호텔 등 2곳의 대형 고급호텔이 들어섰다. 디즈니랜드를 방문하는 가족 단위 여행객들을 겨냥한 테마파크 내 호텔이다. 디즈니랜드호텔은 붉은색 지붕의 유럽풍 호텔처럼 꾸며졌고, 세계 최초로 선보인 토이스토리호텔은 ‘완구 총동원 호텔’이란 중국식 이름처럼 디즈니 캐릭터를 총동원해 호텔을 꾸민 것이 특징이다. 디즈니랜드호텔은 420실, 토이스토리호텔은 800실로, 두 호텔의 객실 수를 합하면 1200여실이 넘는다.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개장으로 직접 경쟁 관계에 있는 국내 테마파크에는 비상이 걸렸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경기도 용인의 에버랜드다. 중국 관광객들이 한 번쯤은 방문하는 국내 대표 관광지다. 2013년 아시아 최초로 누적 입장객 2억명을 돌파한 아시아 최대 토종 테마파크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버랜드 내 숙박시설은 ‘캐빈호스텔’이라고 불리는 통나무집 122실(본관 48실, 신관 74실)과 81실의 힐사이드호스텔에 불과하다. 모두 합쳐도 203개 객실로,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6분의 1 규모다.

지난해 국내외 관광객 880만명이 찾은 아시아 최대 테마파크란 덩치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숙박시설 규모다. 게다가 캐빈호스텔과 힐사이드호스텔은 유스호스텔로 등록돼 청소년과 학생 예약을 우선 처리한다. 일반 관광객을 겨냥하는 호텔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에버랜드 내 숙박시설이 태부족하다 보니 돈 많은 중국 관광객들로서도 에버랜드에 오래 체류하며 돈을 쓰고 싶어도 마땅히 머물 곳이 없는 셈이다. 고부가가치 장기체류형 휴양리조트를 목표로 1200실이 넘는 호텔 객실을 미리 확보한 상하이 디즈니랜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에버랜드 커뮤니케이션팀의 박형근 부장은 “경제성 탓에 그간 호텔 건립을 못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각종 규제도 다른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에버랜드는 1976년 자연농원으로 출범한 직후부터 단지 내 숙박시설 건립을 타진해왔다. 반면 이중삼중의 수도권 규제에 걸려 번번이 실패해 왔다. 에버랜드와 약 1㎞ 남짓 떨어진 곳으로는 남한강의 지류인 경안천이 흐른다. 이로 인해 에버랜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약칭 ‘수정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서 각종 개발행위에 크고작은 제한을 받아왔다. ‘자연보전권역’은 한강 수계의 수질과 녹지 등 자연환경을 보전할 필요가 있는 지역을 일컫는데, 3만㎡ 이상의 관광단지 조성에는 여러 가지 제약을 두어왔다.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것은 1976년으로 1982년 수정법이 제정되기 전이다.

토이스토리호텔 객실
토이스토리호텔 객실

골든타임 놓친 에버랜드

사실 오폐수 배출을 염려한 이 같은 사전규제는 철지난 규제가 된 지 오래다. 오폐수 처리기술의 발달로 하수처리시설만 완벽하게 갖추면 ‘상수원 보호’라는 원래 법안 제정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다. 반대로 오폐수 배출과는 직접 상관없는 ‘부지면적’을 기준으로 규제를 가해온 탓에 소규모 영세 관광시설만 난립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사전 입지규제’는 ‘사후 배출규제’로 전환하는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았다.

숙박시설 설립 규제는 어느 정도 완화됐으나, 3만㎡ 이상 관광지 개발의 경우 여전히 수도권 정비위원회 심의를 거치게 하는 등 개발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용인시 도시개발과의 한 관계자는 “에버랜드 일대는 여전히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있고 관광단지 개발은 심의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관내 국회의원들이 수도권정비계획법상의 자연보전구역을 풀려고 노력해왔으나 잘 안 됐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에버랜드는 적시에 관광 숙박시설을 건립할 ‘골든타임’을 놓쳐왔다. 2003년에는 400실 규모의 콘도를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환경단체 등의 반발로 심의보류됐다. 2008년에는 600실 규모의 콘도를 짓는 계획을 제출하고 조건부 심의에 통과했으나,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와 겹치는 바람에 실기했다. 지난해에도 에버랜드 인근 호암미술관 앞 호암호수변에 300실 규모의 ‘에버랜드 캐슬리조트 호텔(가칭)’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사실상 또 무산됐다.

에버랜드의 자체 숙박시설 건립이 차일피일 지연되던 사이 소규모 분양형 호텔들이 틈새를 치고 들면서다. 분양형 호텔들은 덩치가 작아서 개발행위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에버랜드 커뮤니케이션팀의 정태진 차장은 “주변에 800실 정도의 호텔 신규 공급이 이뤄지고 있었다”며 “올해 경영계획을 세우면서 호텔 사업을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4월에는 더숨포레스트란 83실 규모의 호텔이 들어섰고, 용인경전철 에버랜드역과 가까운 포곡읍 전대리에는 라마다호텔, 골든튤립호텔 같은 분양형 호텔이 건립되고 있다. 각각 399실, 294실 규모의 분양형 호텔이다.

하지만 이들 분양형 호텔은 단순 객실 공급만 늘릴 수 있을 뿐 고부가가치 호텔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테마파크와 제대로 연계가 이뤄지지 않아 캐릭터 상품을 활용한 객실 인테리어나 상품 판매도 불가하다. 외관이나 시설규모 면에서 상하이 디즈니랜드 내에 있는 호텔에 비해 한참 못 미친다. 용인시 문화관광과의 한 관계자는 “분양형 호텔은 일반 숙박시설로, 엄밀히 말해 관광진흥법상의 관광호텔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나마 분양형 호텔의 객실 공급 역시 2017년에서 2018년경에 이루어진다.

에버랜드가 각종 규제에 묶여 시간을 허비한 사이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테마파크와 호텔을 연계해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디즈니랜드호텔과 토이스토리호텔의 하룻밤 객실료는 각각 최저 1650위안(약 29만원), 850위안(약 15만원)으로 적지 않은 가격에 형성됐지만 이미 객실이 동이 났다고 한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는 호텔 4곳을 추가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제대로 된 호텔조차 하나 없는 에버랜드와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다.

에버랜드에 몰려오던 중국 관광객들의 일부가 상하이 디즈니랜드로 발길을 돌리는 것도 불가피해졌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19년 중국 내 테마파크 방문객은 2억8200만명으로 추산된다. ‘삼성에버랜드 50년 통사(通史)’에 따르면, 1996년 자연농원이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꾼 그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에버랜드를 직접 찾았다. 그 자리에서 이 회장은 “디즈니랜드보다 에버랜드가 더 낫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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