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롯데정책본부 이일민 비서실장. 롯데카드 채정병 사장. 롯데손해보험 김현수 대표. 롯데자산개발 김창권 대표. 롯데지배구조개선 TF 이봉철 부사장. ⓒphoto 뉴시스·조선일보
(왼쪽부터) 롯데정책본부 이일민 비서실장. 롯데카드 채정병 사장. 롯데손해보험 김현수 대표. 롯데자산개발 김창권 대표. 롯데지배구조개선 TF 이봉철 부사장. ⓒphoto 뉴시스·조선일보

쑥대밭!

현재 롯데그룹의 상황이다. 신격호 총괄회장부터 신동빈 회장과 누나 신영자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까지, 롯데 신씨 오너일가의 사법처리까지 거론되고 있다. 칼을 뽑은 검찰이 롯데와 신씨 오너들을 맹렬히 쫓는 판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며 점점 부각되는 이들이 있다. 롯데그룹 내 재무통으로 불리는 자금 책임자들과 신격호·신동빈씨의 돈을 관리해온 이른바 ‘금고지기’들이다. 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롯데와 신씨 오너가의 위법 행위에 가담했거나 동원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재 상황이다.

수사 초기 검찰은 계열사 간 부당거래와 계열사-신씨 오너일가 간 부적절한 부동산 거래, 롯데와 신씨 오너들의 비자금 조성 등 증거자료 확보에 열을 올렸다. 그러던 검찰이 6월 중순부터 롯데와 신씨들의 핵심 금고지기로 지목된 이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롯데그룹은 그룹의 핵심인 정책본부와 카드·보험 등 금융 계열사, 또 주요 계열사 재무팀에 신씨 일가의 측근을 자금관리인으로 포진시키고 있다. 롯데 신씨 일가들은 특히 일본 롯데그룹에서 건너온 일본인 금고지기까지 한국 롯데 계열사의 CEO로 앉혀 놓을 만큼 한·일을 아우르는 금고지기 진용을 만들어 놓았다.

롯데와 신씨 일가의 금고지기들은 소위 4인방으로 불리는 롯데그룹 이인원 정책본부 부회장과 소진세 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롯데쇼핑 총괄사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롯데물산 노병용 사장(구속)과는 또 다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인원·소진세·황각규·노병용씨는 ‘신격호의 남자’ 혹은 ‘신동빈의 오른팔’로 불리며 사실상 한국 롯데그룹 내 2~3인자를 두고 경쟁하는 인물이다.

신격호 금고까지 장악한 비서실 실세

검찰이 지목하고 있는 롯데와 신씨 오너들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롯데그룹 실세로 불리는 이들 4인방이 각종 위법 행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이런 혐의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상당수 금고지기들 역시 위법·편법 행위로 마련된 자금을 은닉(隱匿)하거나 관리하는 데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롯데그룹과 신씨 오너들의 위법 행위와 관련된 금고지기들 중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단연 롯데그룹 이일민(57) 정책본부 비서실장(전무)과 류제돈(56) 정책본부 비서담당 전무다. 또 이일민 전무의 전임자 김성회(73) 정책본부 전 비서실장 역시 검찰이 주목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롯데그룹 정책본부의 실세는 황각규 사장이 장악한 그룹 운영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책본부 비서실은 ‘신격호·신동빈씨 등 신씨 오너일가의 개인 자금을 관리하는 곳’으로 지목될 만큼 운영실과는 별개로 독자적 행보를 해온 조직이다. 이일민 전무는 전형적인 자금·재무통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전무는 ‘핵심 금고지기’란 의혹이 짙다. 신격호·신동빈 회장의 개인 자금을 관리한 유력 인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신격호·신동빈 부자의 개인 금고지기 역할을 해왔다는 증거와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6월 13일 검찰이 이례적인 곳에 들이닥쳤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이일민 전무의 처제 집이었다. 검찰은 이 전무 처제의 집에서 30억원이 넘는 현금과 금전출납부로 보이는 장부, 문건을 찾아냈다. 일반 가정집에서 발견되기 힘든 것들이 이곳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일민씨가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 비밀금고에서 빼낸 돈과 장부, 자료일 가능성이 매우 짙다.

롯데그룹 경영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신격호·신동주 측과 신동빈씨 측 모두에게 이일민 전무는 ‘폭탄’ 또는 ‘판도라 상자’ 같은 존재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검찰 수사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지난해 10월 신격호·신동주 측은 비서실장인 이일민씨를 해임했다. ‘신동빈의 명령을 받는 사람’이란 이유 때문이다. 당시 신격호·신동주 측이 신동빈 회장과 이일민 전무에게 “신격호 회장 집무실 금고 속 내용물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신격호·신동주 측의 이 금고 반환 요구를 신동빈 회장이 막았다는 게 정설이다. 검찰 역시 이일민 전무가 신씨 오너가의 개인 자금을 관리한 금고지기로 판단한다. 이 전무를 소환 조사했다. 이때 ‘롯데호텔 33층 별도의 공간에 기밀자료들이 보관돼 있다는 정보’를 이 전무가 검찰에 발설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일민 전무와 함께 류제돈 비서실 전무(롯데쇼핑 소속) 역시 의혹을 키우는 인물이다. 류 전무도 신격호·신동빈 등 신씨 오너들의 개인 자금 관리에 연루됐을 것이란 의심을 받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일민 전무와 류제돈 전무가 사돈 관계다.

또 한 명, 이들의 전임자 김성회 전 비서실장 역시 의혹을 키우고 있다. 김성회씨는 지난해 ‘신격호·신동주 vs 신동빈’ 간 경영권 다툼 당시 건강을 이유로 신격호 총괄회장 비서실장을 갑자기 그만뒀다. 이때까지 그는 무려 24년 동안 신 총괄회장의 비서로, 그룹 안에서 ‘신격호의 그림자’로 통했다. 신격호 총괄회장 대신 종종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들에게 지시를 전달하는 등 실세로도 불렸다. 신씨 오너들의 개인 돈과 그들의 개인적 사업에 대해 김씨만큼 알고 있는 이가 드물다는 게 세간의 평이다.

오래전부터 ‘설’로 떠돌던 신격호 회장 등 신씨 일가의 비자금 규모와 실체 규명의 키를 김성회씨가 쥐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든 이유다. 김씨 역시 6월 15일 검찰에 소환됐다. 이들 ‘비서실 3인방’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롯데와 신씨 오너들에 대한 수사 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일 양국 롯데 돈줄 쥔 ‘고바야시 마사모토’ 특히 주목

일본 롯데그룹의 실세이자 한국 롯데에서도 활동하는 일본인 금고지기를 특히 주목해야 한다. 롯데캐피탈 고바야시 마사모토(67·小林正元) 대표 이야기다. 고바야시 마사모토는 한·일 양국 롯데그룹의 실세 중 실세다. 고바야시 마사모토는 현재 신동빈 회장과 한·일 양국 롯데그룹의 지주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쓰쿠다 다카유키 CEO와 함께 사실상 한·일 양국의 롯데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3인 중 하나다.

고바야시 마사모토는 롯데캐피탈의 대표는 물론이고, 현재 일본 롯데홀딩스 CFO(최고재무책임자) 자리까지 꿰차고 있다. 신동빈 회장과 함께 한·일 양국 롯데그룹의 모든 자금과 재무처리 결정권을 쥐고 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 경영권 장악에 기반이 된 롯데홀딩스의 대주주로 드러난 ‘일본 종업원 지주회·일본 임직원 지주회의’의 최고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신격호·신동주 측이, 신동빈 회장의 한·일 롯데그룹 경영권 장악을 고바야시 마사모토가 기획한 것으로 지목할 정도다. 한국과 일본 양국 롯데그룹의 자금흐름과 재무상태를 고바야시 마사모토씨만큼 세세히 파악하고 있는 이를 찾기란 힘들다.

일본 산와은행 행원 출신으로 UFJ비즈니스파이낸셜에 근무하던 그를 2003년 신동빈 회장이 직접 데려왔다. 신 회장은 그를 영입하며 바로 한국 롯데그룹의 작지만 알찬 돈줄인 롯데캐피탈의 임원 자리에 앉혔다. 또 1년 만인 2004년에는 대표이사 자리까지 내줬다. 그는 현재도 롯데캐피탈 대표다. 그러니 신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일본인 은행원 출신 인사가 무려 14년이나 한국의 금융사 대표직을 꿰차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검찰은 한국 롯데의 자금이 일본 롯데로 흘러간 내용을 면밀히 보고 있다. 국부 유출과 비자금 조성 등 한·일 양국 롯데그룹에서 벌어진 비정상적 자금 거래 의혹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고바야시 마사모토가 어떤 형태로든 깊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 검찰은 고바야시 마사모토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지난 6월 17일 고바야시 마사모토가 돌연 일본으로 출국했다. 한국 검찰의 수사망을 피해 한국을 떠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검찰이 고바야시 마사모토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면 한·일 양국 롯데그룹 간 불·편법 자금 거래를 밝히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의혹 속 재무통 CEO 채정병·김현수·김창권·이봉철

롯데카드 채정병(66) 사장과 롯데손해보험 김현수(60) 사장 역시, 롯데 비자금 등 불법 자금 조성과 관련해 검찰과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롯데그룹 내 핵심 재무통이다. 신격호·신동빈 회장 등 신씨 오너가 직접 관리하는 정책본부 속 ‘신씨들의 가신’으로 통한다. 채정병 사장은 10여년 전부터 정책본부에 몸담으며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과 함께 롯데그룹이 추진한 M&A에 깊이 개입한 인물이다. 신격호·신동빈 부자를 가운데 두고 ‘우(右)각규, 좌(左)정병’이라는 말이 떠돌았을 정도였다. 채 사장은 소주 ‘처음처럼’으로 알려진 롯데주류와 하이마트 등 적게는 5000억원대에서 많게는 1조3000억원대에 이르는 수십여 건의 M&A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손해보험 김현수 사장 역시 검찰이 주목하고 있다. 김 사장은 원래 롯데쇼핑과 정책본부 재무담당자로 입사한 후 줄곧 돈을 관리한 금고지기다. 그런 그가 2014년 롯데의 금융 계열사인 롯데손해보험 사장이 됐다. 계열사 사장 중 가장 적극적으로 신동빈의 사람임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롯데 신씨 일가 간 경영권 전쟁에서 한국 롯데 계열사 사장들 중 가장 먼저 신동빈 지지 선언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런데 김 사장에 대한 시장의 평은 그리 좋지 못하다. 김 사장은 예전부터 자산매각, 해외 M&A, 자금조달 등과 관련해 투명성에서 좋은 평을 받지 못한 재무책임자라는 게 전반적인 평이다. 오랫동안 신 회장 측근 재무통이긴 했지만 리스크 관리 능력 역시 떨어진다는 평도 많다.

혼자 18개 계열사 감사 꿰찬 이상한 금고지기

현재 롯데그룹 내 신동빈 회장의 최측근 재무통으로 떠올라 있는 이봉철(58) 부사장도 의혹을 키우는 인물이다. 현재 롯데그룹 내 재무통들 중 최고 실세 재무통으로 불린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최근 10년간 비자금 및 불법 자금 유출 창구 의혹을 받고 있는 롯데쇼핑과 롯데호텔, 롯데손해보험, 그룹 정책본부의 돈 관리와 경영을 맡았다. 더구나 지난해 8월부터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팀 팀장’을 맡고 있다. 이 조직은 신격호 총괄회장으로부터 신동빈 회장이 한·일 롯데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신동빈 롯데 지배체제’의 핵심이 돼 준 곳이다.

롯데그룹과 신격호씨 일가의 부동산 개발과 투자, 관리를 해 온 곳이라는 의혹이 큰 롯데자산개발의 김창권 대표와 롯데쇼핑 장호주 전무 역시 주목받고 있다. 김창권씨는 롯데의 부동산 개발사업과 관련된 국내외 특수목적회사 11곳의 대표를 겸직하는 등 비상식적 행보를 해온 인물이다. 장호주 전무 역시 2012년 이후 18개 롯데 계열사의 감사를 독점해온 비상식적 행보들이 최근 드러났다. 특히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롯데 계열사와 M&A 이슈가 불거진 계열사의 감사와 대표를 집중적으로 맡았다. 장 전무의 역할에 의혹이 커지는 부분이다. ‘장 전무가 짧은 기간에 이렇게 많은 롯데계열사의 감사를 맡은 이유와 그의 역할이 무엇이었냐’도 롯데 사태의 중요한 키 중 하나다. 신씨 오너일가의 금고지기들과 롯데 계열사 재무책임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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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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